서랍속 독일 오페어 이야기

노동비자로 떠난 독일에서의 첫날

by 호빵이

2006년 2월. 저녁 6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며 게이트를 빠져나오던 순간,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낯선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호빵?"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며 미소 지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얘져 한참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는 같이 나오던 대한항공 승무원들을 보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는 돈 없는 대학생인지라 대한항공은 꿈도 못 꾸고, 일본항공을 경유해 겨우 도착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녀는 내가 머물게 될 독일 가족의 가스트무터, 새미였다.새미는 전형적인 독일인은 아니었다. 독일인 어머니와 파키스탄계 영국인 아버지를 둔 그녀는 영국에서 살다 독일로 넘어와, 아이를 낳고 맞벌이를 하며 오페어를 들이게 된 것이었다.차를 타고 가며 외워온 독일어로 더듬더듬 말을 걸었다.
“아이들은 뭐 하고 있어요?”
“잘 먹는 음식은 뭐예요?”
“동양인 오페어는 처음인가요?”

새미는 웃으며 “독일어 잘한다”고 칭찬해 줬다.
‘어쩌지, 이제 외워온 문장은 다 써버렸는데…’
생각이 들 무렵, 차는 주택가의 한 단독주택 앞에 멈췄다.


그 집은 세모 지붕과 작은 정원이 있는, 전형적인 독일식 2층 주택이었다. 그러나 내부는 전혀 달랐다. 주황색 벽에 터키식 소품, 파란 화장실, 알록달록한 색이 뒤섞인 집 안에는 독일계 폴란드인 가스트파터 마쿠스와 네 살, 여섯 살 된 두 아들이 있었다.

두 녀석은 예상대로 낯을 가렸다. 숨어 있으면서도 나를 틈틈이 지켜봤다.
가스트파터인 마쿠스는 독일에서 공부한 폴란드인이었고, 독일어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동유럽 사람 특유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반가워.”
짧은 악수 한 번. 그리고 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마쿠스와 지내며 동유럽 사람에 대한 내 편견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절감했다. 그 이야기는 언젠가다시 하게 될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만나게 되었다.
파키스탄계 영국인과 독일인의 딸, 폴란드 출신의 독일거주자, 그리고 두 명의 아이들.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다국적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