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서 하루 굶기

맛있는 피로기 앞에서 굶은 이유

by 호빵이

어느 날 마쿠스가 불쑥 물었다.

“호빵, 아이들이랑 다음 주에 폴란드 밥챠네 집에 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


폴란드는 내게 손에 잡히지 않는 나라였다. 마쿠스의 나라가 아니었다면 아마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과는 또 어떻게 다를까.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나는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밥챠네 집은 크라쿠프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카토비체 근처 작은 마을에 있었다. 8시간을 달려 도착했을 때, 적막한 풍경이 먼저 나를 맞았다. 이런 장거리 여행도 이제는 몸에 익어 있었다.


집은 독일의 Wohnung과 비슷한 3층짜리 빌라였다.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에 카펫이 깔려 있었다.

현관까지 마중 나온 밥챠는 두 팔을 벌려 반겨주었다. 낯선 나라에서 마주한 익숙한 얼굴이 그렇게 반가울 줄이야. 그녀가 무슨 말을 건네는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마음은 이미 충분히 전해졌다.


거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이었다. 한국 시골집에서 흔히 보던 조상님 사진처럼 벽에 걸려 있었다. 순간 낯설면서도 익숙한 기분이 스쳤다. 종교는 이 집의 공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듯했다.


밥챠는 나를 다락방으로 안내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머리 위의 문을 밀어 올려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 사진첩과 책이 쌓여 있고, 한쪽에는 이불이 깔려 있었다. 언젠가 꿈꿔왔던 바로 그 다락방이었다. 그 후로 폴란드에 올 때마다 그곳은 내 방이 되었다. 다락방에 앉아 있으면, 마치 어느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출처 : 구글 독일

점심상에는 폴란드식 만두 피에로기와 고기를 넣은 사우어크라우트 수프가 올랐다. 김치찌개와 만두를 닮은 맛. 나는 수프를 두 번이나 리필했고, 밥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폴란드 썰매장에서 마신 비트수프보르쉬도 어묵 국물을 떠올리게 했었다. 이상할 만큼, 폴란드 음식은 내 입맛에 꼭 맞았다.

한국에 돌아와 만든 보르쉬 스프

크리스마스 즈음, 다시 폴란드를 갔을 때 밥챠가 식탁에서 나를 보며 말했다.

“호빵, 너는 이것만 먹고 오늘 굶어야 해. 다 같이 굶는 게 전통이거든.”

마쿠스가 통역해 주는 순간,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며 온 폴란드에서 금식이라니. 아쉬움이 스쳤지만, 곧 거실의 교황님의 사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하루를 굶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폴란드 사람들에게 종교는 단순한 믿음이아닌 것 같았다. 나에게 ‘먹지 않는 일’이 큰 기억으로 남겨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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