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도플갱어

by 김혜련

도플갱어


김혜련


재고처럼 쌓여 있는

기억의 개수個數를 헤아리다가

내가 아닌

그렇다고 타인도 아닌

나 같이 생긴

나와 똑 닮은 생물체를 목격하고

하마터면 한숲아파트 옥상을 무너뜨릴

비명을 쏟을 뻔했다


에구머니나 세상살이 아무리 힘들다고

이제 헛것을 다 보는구나

삶이 팍팍한 건 비단

나만 겪는 남루한 일상이 아닐 텐데

닳아진 연골 사이로 끼어든 슬픔이

시린 이를 드러내고 우는구나


묵정밭에 쌓여 있는

폐비닐 같은 기억을 더듬다가

나도 아닌

그렇다고 남도 아닌

나처럼 생긴

내 뒷모습을 빼닮은 괴물체를 마주하고

하마터면 한숲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붕괴시킬

비명을 발사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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