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임대

by 김혜련

임대


김혜련


온종일 장마를 바느질하느라

허리가 휜 오후 다섯 시

퇴근을 한 남편이

학교에서 신을 실내화를 사러

중앙시장에 가보자고 노래를 부른다

눅눅한 방바닥에 이부자리를 펴는

우울한 마음을 걷어낼 속셈으로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선다


한때는 번화가였던 순천 중앙동

그리움을 아는 손가락으로 상호명을 새기니

이제는 상호명보다 더 많은 임대라는 붉은 글씨가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따라 나온다

현대소설 속 고향을 잃은 인물처럼

나도 모르게 어깨가 주저앉는다


아직 저녁도 안 되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을 찾기보다

기어 다니는 개미를 찾는 게 더 쉬워 보인다


추억이란 그물에 걸려 마음을 접질린 나는

노안 탓인지 접질린 마음 때문인지

눈가를 적시는 눈물을 못 본 체 외면한다

사람들이 어깨 부딪치며 걸어 다니던

그 시절을 호출하는데

트렌드의상실 상가 임대

성업부동산 061-777-1235

눈앞을 가로막으며 발길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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