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걸어다니는 바람

by 김혜련

걸어 다니는 바람


김혜련


걸어 다니는 바람을 본 적이 있는가

날아다니는 바람이 아닌

불어오는 바람이 아닌

천천히 걷는 바람을 본 적이 있는가


땅거미를 호주머니 가득 밀어 넣고

순천만국가정원을 걸어 나오는데

불어오는 바람이 아닌

걸어 다니는 바람과 부딪쳤네

하마터면 바람의 발등을 밟을 뻔 했네


이 나이 되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걸어 다니는 바람

눈앞에서 천천히 걷고 있는 바람

노안인 내 눈의 착각은 아닌가 싶어

애꿎은 볼살을 꼬집어보는데

눈앞에 걸어가던 바람

잠시 발을 멈추고 돌아보며

그렇게 이상한 시선으로 뒤따라오면

부끄러움 많은 자신은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얼굴 붉히며 도와달라고 하네


내친 감에 목도 마르니 저쪽 벤치에 앉아

물 한 모금 하자 하네

생수 한 병을 내미니

달게 마시며 사연 한 줌 풀어내네

한평생 남들과 비교 안 되는

최고 실적을 쌓기 위해

앞만 보고 날아다니고 불어대느라

심신이 탈진되었다며

이제 남은 생은 천천히 걸으며

욕심 없이 살고 싶다 하네


걸어 다니는 바람을 만난 적 있는가

공중곡예하며 겉멋 부리는 바람이 아닌

불어대는 바람이 아닌

맨발로 걷는 바람을 본 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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