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엄마 되기 참 힘들다.

큰 사람 되는 법보다 어려운 큰 엄마 되는 법.

by 이두니

바람 한 점 불지 않던 어느 늦은 여름밤. 아이를 재우고 나란히 앉아 분홍색 복숭아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남편이 물었다.

“오늘 감동이랑 뭐 하고 놀았어?”

“그냥… 집 앞 공원에서 킥보드 타고 놀았지 뭐…”

단조로울 만큼 담백한 대답을 하다 어처구니없게도 눈물이 나 목이 메어버렸다.

놀란 남편은 설마 내게 우는 거냐고 물으며 부지런하게 복숭아를 먹던 입을 멈추고 나를 쳐다본다.

남편의 눈을 마주하자 그간 애써 버텨왔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 장단에 맞추어 콧물도 쏟아졌다. 그날의 슬픔에는 흐른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킥보드를 타다 넘어진 자그마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그 모습이 떠올라 몸서리치게 미안했다. 아무 때나 어디서나 엉엉 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꼬맹이가 엄마란 사람의 눈치를 보고 어른인 척하는 모습에 마음이 무너졌다. 다 내 탓이었다.

넘어져서 까진 팔꿈치보다는 생채기 난 마음이 더 슬펐을 아이에게 괜찮냐는 일반적인 위로 대신 조심하지 않고 왜 넘어졌냐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은 나에게 사무치게 화가 났다. 너무나도 부족한 엄마임을 알고 있기에 주문처럼 늘 외우고 다니던 잘하고 있다는 어쭙잖은 한 줄짜리 자존감마저 바닥에 내려놓게 되었다.


아득한 유년 시절을 더듬더듬 떠올려보니 문득 내 모습에서 젊은 아빠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다치거나 넘어지면 들었던 아빠의 호통 소리. 그래서 보고 배운 것이 이것뿐이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 따위는 대고 싶지 않았다. 어렸던 내가 느낀 그때의 그 억울하고 차가웠던 공기를 내 아이도 오롯이 느꼈겠지. 그때의 아빠나 지금의 나나 속마음은 사랑이었지만 겉으로 나오는 걱정과 위로의 소리는 이렇게나 아픈 말이었다.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처절하게 바뀌어야만 했다. 세상에서 가장 따듯해야 할 엄마의 품을 되찾아야만 했다.

멈출 줄 모르고 줄줄 흐르는 눈물을 휴지로 닦아주며 어린애 달래듯 달래던 남편이 말한다.

“큰 엄마 되기 참 힘들다. 그렇지? 그래도 당신 참 잘하고 있어.”

빈 말이어도 그냥 인사치레 정도의 말이어도 참 고마웠다.

그래, 우리 감동이도 이런 위로를 받고 싶었겠지….

우리 꼬맹이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던 큰 사람 되는 법.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큰 엄마 되는 법이었다.


큰 엄마 되기 참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