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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 Aug 14. 2024

코로나와 부부싸움

코로나의 재유행이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코를 찔러보니 뚜렷하게 두줄이 나왔다. 몸살 기운과 따끔따끔한 목. 보통의 감기와는 무언가 다른 오묘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재유행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워낙 약한 것이라 경미한 증세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겪는 나로서는 완전히 이게 코로나라는 것이 명확하게 느껴졌으니 모르고 지나갈 만한 증상은 아닌 게 분명하다.


아이들이 둘이 있는 우리 집에 병환이 찾아오면 한 명만 아파도 4명의 일상이 출렁인다.

아이가 아프면 간호하느라 덩달다 나까지 아파지는 일이 예사인 데다, 의, 식, 주 중에 의(차림새)와 식(먹는 것)을 책임지는 존재인 엄마가 아프면 집안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아픈 게 조금 나아질 무렵 우리 부부는 싸우기까지 했다. 이번 코로나가 아주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니 이번 코로나는 우리 집에는 실로 역대급 파워를 자랑했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 코로나 증세로 아팠던 것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첫날 하루 극심하게 아파하다가 다음날 마치 걸렸던 적이 없던 것처럼 증세가 말끔하게 나았다. 나에게 온 코로나는 증세가 조금 달랐다. 누워있어도 식은땀과 현기증이 났다.


사실 오래 누워있지도 못했다. 아이들의 과제나 식사가 걱정되어 마음이 제대로 쉬지 못했던 것이다.


너무 아프지만 일어나 아이들 아침을 차리기도 하고 저녁은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오랜만에 배달 어플을 시키기도 했다. 남편이 일도 하면서 아이 둘을 챙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최대한 아이들을 케어하려고 노력했었다. 어른된 도리이자 부모 된 도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나는 낮 시간 동안 아픈 내가 어느 정도 케어 했으니 저녁시간은 어느 정도 쿨(?)하게 잘 넘어갈 줄로 기대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배달시킨 음식을 차리고 치우는데 그는 이미 기가 다 빠져 보였다. 깜깜한 방안에 저녁도 못 먹고 들어와 있는데 왠지 모르게 계속 눈치가 보였다.


아이들을 대하는 말투, 먹고 난 그릇을 치우는데 우당탕탕 힘이 들어가 그릇끼리 부딪치는 소리.

그 가 상당히 짜증이 나 있다는 걸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악물고 해야 할 일의 난이도가 아닌데 그는 뭔가 화도 나있고 표정도 밝지 않았다.

어둡고 답답하고 짜증이 섞은 말투에 10살 딸아이는 방으로 와서 “아빠가 또 예민해졌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짧은 저녁시간. 누워있는 동안 아픔은 조금씩 나아졌을지 몰라도 화는 조금씩 쌓여갔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로 우리는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나의 불만은 “아픈 것조차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게 힘들다”라는 것이었고

그의 불만은 “태생적으로 참을성이 없는 내가 큰 화를 내지 않고 이 악물고 하는 태도로 바뀌었으니 많이 나아진 것이다”라는 것이다.



남편은 내가 이런 불만을 얘기하면 도리어 나를 나무란다.


자기가 자란 환경이 그랬고, 그도 나의 말을 듣고 고치려고 노력하는데 이렇게 또 못 참고 속얘기를 한다며 나도 얻는 게 뭐가 있냐는 것이다.


그렇다. 또 똑같은 대화로 우린 서로 얻는 게 없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나는 똑같은 결과를 얻더라도 또 이야기한다. 이틀을 아프면서 화도 났지만 내심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내가 꼴랑 48시간 아픈 것에도 이렇게 짜증이 나는데 내가 1년이라도 아픈 병에 걸렸다면?’과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럴 바에는 그냥 시원하게 절대 그럴 일은 없다 ’ 아니다 ‘라는 대답을 듣는 게  훨씬 나은 방법이었다.  

아니라면 차라리 ’ 내가 본디 이기적이다. 이런 나와 살아주어 고맙다.‘라는 고마움의 표시라도 하길 바랐다.


누구나 자신만이 아는 못나고 지질한 부분을 안고 살아간다. 나 자신은 알지라도 남에게는 들키지는 않았으면 하는 게 내 부족하고 못난 부분이다.


남편에게도 아마 이런 부분이 늘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아니 늘 고민이라고 말한다. 천성이 예민하고 방어기제에 날이 서있는 자신의 모습이 자신도 힘들다고 했다.


그런 부분을 오늘 내가 또 건드린 셈이다. 예상은 했지만 내가 원하는 답은 결코 듣지 못했다.

1. 미안하다거나

2. 고맙다거나

3. 아니면 절대 아니라거나. 세 개의 모범 답안이 있었지만 그는 아예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4. 자신이 공격당한 것에 역으로 공격하기


우리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열심히 목에 핏대를 올리며 싸움이 아닌 척(?) 싸워댔다.


그리고 아직 미해결 된 상태로 이 대화가 종료됐다. 그는 애써 복숭아를 사 오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거나 하는 것으로 상황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쓴다. 나의 대나무숲인 이곳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본다.


”임금님 우리 남편 진짜 나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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