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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May 22. 2024

돌아갈 곳

단풍이 눈처럼 내리는 가을날, 정처 없이 서울의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종로 1가부터 5가까지 골목마다 운치를 즐겼다.




발에 물집 잡힐 만큼 걸은 후 카페에서 멍 때렸다. 시계를 보니 저녁 7시 즈음, 해도 질 참이라 머무를 곳을 찾았다.


찾아보니 5만 원 정도의 게스트 하우스도 있었고 조금 더 내면 모텔이나 호텔에서 머무를 수 있었다. 최저가 중 옥석을 찾다 1시간 반 거리에 집이 있는데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쌓인 피로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앉아 생각했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건 참 따뜻하구나.'




오늘은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첫날이다. 2일 전부터 괜스레 마음이 불안하고 떨렸다. 10년을 다닌 회사지만 가끔 보는 친구처럼 낯설기도 하다.


전 날 밤 명상과 스트레칭을 하며 마음을 녹였다. 불멍 하듯 이불속에서 아침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보냈다. 신발끈을 고쳐 메며 속삭인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될 거야'


돌아온 회사는 여전하다. 자리를 유지한 사람들과 바삐 향하는 걸음들. 잔뜩 찡그린 얼굴의 출근길과 집으로 향하는 가벼운 얼굴의 전사들. 마치 전쟁을 마친듯한 그들은 언제나 고요하다.




역시 회사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다만 내가 불안했던 건 내 자리가 없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지 않았나 싶다. 이런 멍청한 생각도 없지.


돌아오니 따뜻하고 안락하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좋다. 영원하지 않을 시간과 공간이지만, 여행객일지라도 따뜻한 숙소는 언제나 기분 좋은 거니깐.


비움 속에서 채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언제나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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