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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Sep 20. 2024

먼 날의 내가

우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마음속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겁다. 그리고 차가워졌다고 느낄 즈음에는 재가 되어 흩날린다. 난 이 순간을 사랑한다.


더 깊이, 더 아래로. 늪에 빠진 사람처럼 흘러내린다. 상처가 덧날까 싶어,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약은 시간이고, 딱지는 다른 추억들로 새겨야 한다.


그 어떤 감정도 없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나와 마주한다. 가장 솔직한, 숨길 것이 없는 상태로 앉아 서로를 끌어안는다. 이내, 나라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행복하기만 하면 안 되는 걸까. 멍하니 하늘을 보다 땅을 봤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그 누가 관심 있을까.


서서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 즈음, 생각이 멈춘다. 이때 일어나도 되겠지만, 시간이 있다면 더 누워있는다. 무아의 상태로,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며.


많은 날들을 후회하며 살아왔지만, 이 순간만큼은 되돌아본 적이 없다. 어린 날의 추억은 기억나도, 그때의 감정과 생각을 돌이킬 수 없듯이. 가장 소중하게 흩어진다.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며, 어리광을 부리는 나를 달래주고 일어선다. 가야지, 이젠 가야지. 걸음을 옮기며 다시 흘러간다. 아득히 먼 날, 오늘을 또 추억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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