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자카
토키와자카에서 다시 하코다테역 방향으로 한 블럭을 가면 야요이자카弥生坂가 나온다.
시영전차 「오마치」정류장에서 하차하면, 산허리를 향해 똑바로 뻗어 있는 것이 야요이자카이다. 그 길이는 약 720미터에 달하며 하코다테 산록에 있는 주요 언덕들중에서 가장 길다. 야요이자카는 원래 2개의 언덕이 있었다. 한쪽은 현재 야요이 초등학교 부지의 서쪽에 소묘지称名寺 가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쇼묘지자카称名寺坂」 「니시노자카西の坂」 또는 「테라마치노자카寺町の坂」라고 불렀고 다른 한쪽은 1871 년까지 언덕 위에 있던 유곽에서 돌아오는 사람을 놀려대는 카이신자카改心坂'라 불렸다고 한다. 또 위쪽 언덕은 하코다테산을 구성하는 각 정상으로 통하는 길을 따서 '야쿠시 고개' 또는 '시치멘 고개'라고 불렀다. 1879 년의 대화재 이후, 지금처럼 하나의 언덕길로 정비되었을 때, 지역의 번영·발전을 기원해, 봄을 의미하는 「야요이弥生」를 사용했다고 한다.
하코다테 임해 연구소
이 언덕길을 3분의 1 정도 걸어간 곳에서 돌아보면 이미 항구쪽의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리고 언덕을 내려가서 전차선 도로를 건너 항구쪽으로 가면 옛 하코다테니시 경찰서函館西警察署를 활용한 하코다테 임해 연구소函館市臨海研究所 가 있다. 이 건물은 1926년에 당시 하코다테 수상경찰서로 신축되었고 후에 하코다테니시경찰서로 1984년까지 사용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2007년 건축 초기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야요이자카 중간쯤에 있는 고풍스런 야요이 초등학교, 하코다테 역사에서 수많은 화재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인 1934년의 대화재 후 부흥 건축으로 지어진 학교 중 하나이다.
1938년에 완성된 교사는, 4층건물의 중후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중앙에 운동장을 둔 ㅁ자형인데, 대화재 발생 시 주민들의 피난처 역할도 할 수 있었다. 언덕의 거리 하코다테다운 경사를 가진 지형을 살린 디자인으로 '시경관 형성 지정 건축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하코다테시의 건축과장으로서 부흥 건축에 종사한 건축가·코미나미 부이치. 그가 설계한 건물은 대화재 이후 재건된 야요이 초등학교 외에도 하코다테 공원에 있는 옛 시립 하코다테 도서관 본관, 하코다테시 공민관, 대화조난기념위령당 등이 있다. 워낙 건물이 오래되어 2010년에 외벽의 일부를 제외하고 해체되어 2012 년에 신교사를 건축했다. 옛 교사의 북동쪽, 특징적인 곡면으로 마감한 정면 입구의 외벽을 보존하여, 도로에 접한 외관 디자인의 이미지를 계승하고 있다. 홋카이도에서 유명한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임시교사로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야요이자카 윗쪽에서 항구쪽을 내려다 본 풍경, 저 멀리 하코다테 임해 연구소가 보인다. 신록이 우거진 봄날 혹은 여름날에 이 언덕에 서서 항구쪽을 보면 뭔가 정겹게 느껴지곤 한다.
야요이초등학교
하코다테 임해 연구소.
하코다테 우체국이 있던 자리라는 표지석. 하코다테 우편역소(옛 이름)는 홋카이도 최초의 우편국이라는 내용이다.
이 언덕의 3분의 2 정도를 지날 무렵에 도로 폭은 갑자기 좁아지게 된다. 그 안쪽에는, 하코다테 전쟁 당시 하코다테항만에서 침몰한 신정부군 함선의 전사자 위령비와 코사이엔 터咬菜園跡 등이 있다. 코사이엔은 1868년 하코다테 전쟁 당시 막부군의 에노모토 다케아키가 6명의 간부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술잔을 나눴다는 곳이다.
야요이자카 다음이 아즈마자카東坂이다. 하코다테의 언덕들중에 주변의 고층 건물이 없어 시야가 탁트인 까닭에 항구를 가장 잘 볼수 있다는 곳이다. 이 근처에 가장 오래된 사진관 구 고바야시 사진관과 중화회관이 있다.
아즈마자카 표지판
이 근처에 가장 오래된 사진관 구 고바야시 사진관과 중화회관이 있다. 현재는 1개의 언덕이지만 이 역시 이렇게 된 것은 1879 년에 일어난 대화재 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야요이 초등학교 부지의 동쪽에 히가시혼간지 하코다테 별원(당시는 죠겐지)가 있고, 그 아래에 2개의 언덕이 있었다고 한다. 한쪽이 '죠겐지 자카 浄玄寺坂, 다른 한쪽이 '히가시노 자카, 또는 옆에 사는 마을 노인의 이름에서 '시라토리 자카. 또 그 두 개의 위쪽에 1개의 언덕이 있었는 그곳의 신사 이름을 따라 '아타고자카愛宕坂'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없이 가면 그냥 지나칠수 있는 구 고바야시 사진관旧小林写真館 이다. 목조 2층, 서양식 건축으로 지어졌다. 사진관으로 사용되고 있던 건축물로는, 홋카이도 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관은, 코베에서 하코다테에 건너 온 사진가·고바야시 겐조가 1902 년에 개업했다. 1906년 8월의 대화재로 건물은 소실되었지만, 당시는 사진관의 대목이 설이기도 해 이 해의 연말에 재건되었다. 2층에는 약 50평방 미터의 스튜디오가 있고 천장과 벽의 일부에는 촬영시에 자연광을 받아들이는 채광창이 설치되어 있어 1962년까지 영업을 했다.
1988년에 개업 당시의 사진을 토대로 개축 .2009년 7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시내의 타니스기 사진관이 운영하는 사진관으로서 활용되었다. 세로로 긴 창문과 몸통 자바라(1, 2층 경계부), 페디먼트(맞배 벽)에 장식한 '현어풍 처장식' 등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시 경관 형성 지정 건축물이며 현재는 다른 용도로 사용할 예정이다.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가 가족 사진을 찾으러 왔다고도 한다.
아즈마자카는 최대 경사도 14.36도로 하코다테의 언덕중에서 경사가 심한 언덕이다. 힘겹게 이 언덕에 올라서면 하코다테항의 풍경은 정말 볼만 하다.
이 사진관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에 벽돌로 지어진 중화 회관函館中華会館이 있다.
1910년에 건축된 관제묘 형식의 집회장이다. 내부 조각과 장식 등 청조 말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일본에서도 유일한 순중국 양식의 건축물로 현재 내부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1854년 페리제독의 함대의 통역관으로 동행한 로센이라는 중국인이 하코다테를 밟은 최초의 중국인이다. 그 이후의 중국인들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는데 1880년 무렵에는 이 자리에 동덕당이라는 최초의 화교 회관을 세웠다. 그러나 1907년의 대화재로 건물이 전소되자 중국인 유지들이 모여 장사의 신 관우를 모시는 관제묘, 즉 지금의 중화회관을 짓기로 결정했다. 이 조그만 건물의 외관을 짓는데만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벽돌 구조의 밋밋한 외관이라 별로 일 것 같지만 목재를 정교하게 짜맞춘 내부는 붉은 색과 금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청나라 시대의 전통 양식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이 건물의 가장 독특한 점은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 건물 앞에 보이는 상자같은 것은 조명이다. 밤이 되면 저 조명이 켜져서 아름답게 보인다..
디저트 맛집으로 소문난 안젤리크 보야쥬, 안으로 들어가면 앉을 자리가 없는데 이곳의 크레페는 정말 맛있다. 도쿄의 하라주쿠에서 맛본 크레페와는 차원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