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와이자카, 스가타미자카 , 토키와자카
네 번째는 사이와이자카 (幸坂 행복 언덕), 해안을 매립한 뒤 생겨난 마을이 사이와이초幸町 이었기 때문에 마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만만치 않은 아름다움이 있다.
(사이와이자카의 봄, 벚꽃이 가득 피어 있다)
사이와이자카의 가을
1875년, 언덕 아래의 만을 매립한 장소를 사이와이초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이 언덕에도 사이와이마치라고 부르게 되었다.
경사가 심한 길이지만 다 올라가면 야마노우에 신궁山上大神宮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사이와이자카는 하코다테 산기슭으로 난 언덕 중에서도 1,2등을 다툴 정도로 길고 경사가 있는 언덕이다. 벤텐관(구 하코다테신용금고 벤텐지점) 앞에서 시작하는 길이 약 620m의 언덕으로 이어진다. 언덕의 막다른 곳에 우뚝 솟은 야마노우에 대신궁은, 원래는 현재 위치보다 아래쪽에 위치해, 1879 년까지 신메이샤라고 불렀기 때문에 언덕 자체도 신메이자카라고 부르기도 했다.
언덕길 끝에 있는 야마노우에 대신궁 山上大神宮, 상당한 체력이 있어야 이곳까지 올라올 수 있다.
이 경사진 사이와이자카를 끙끙 거리며 올라간 것은 이곳에 있던 구 러시아영사관을 보기 위해서였다.
외벽을 덮는 붉은 벽돌, 그리고 2층 부분의 가장자리 창틀, 전체적으로 붉은색과 흰색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던 구 러시아 영사관은 일본과 서양 건축이 혼합된 화양풍으로 지어졌다. 구 잉글랜드 영사관이 모토마치 지역에 있고 개방되어서 여행자들이 많이 찾지만 구 러시아 영사관은 조금 더 서쪽에 있는 데다, 외부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찾는 이가 별로 없었다. 일본과 러시아 간에 1854년에 화친 조약이 체결된 지 4년 후에 하코다테 주재 초대 영사로 고시케비치가 부임했다. 처음에는 현재의 야요이 초등학교부근에 있었던 소묘지 내에 임시 영사관을 개설했다. 1860년, 정교회의 부지 내에 정식 영사관을 두지만 1866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한때는 민가 등에서 업무를 이어갔다.
1903년 현재의 위치에서 시작된 신축 공사는 이듬해 러일 전쟁으로 중단되면서 완공한 것은 1906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907년에 대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하코다테의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빠지지 않은 것이 그 수많은 화재들이다. 아무튼 1907년 대화재 직후부터 진행된 재건 공사로 1908년에 완성된 건물이 현재의 건물이다. 러시아 혁명 후 소련 영사관이 되지만 태평양 전쟁이 마지막으로 치닫던 1944년에 마지막 영사가 본국으로 철수한 후 폐관되어 버렸다. 그 뒤 이 건물을 관할하고 있던 외무성으로부터 1964년에 건물을 구입한 하코다테시는 그 이듬해부터 1996년까지 청소년 숙박 연수 시설로 사용했지만 이후에는 외부관람만 가능했다. 그것은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하코다테 시는 이 건물을 나고야의 민간 회사에 매각했고 이 회사는 카페, 바, 가든 카페, 호텔로 사용하기 위해 공사를 했고 2025년 7월에 그랜드 오픈했다.
역사가 새겨진 건축물들을 관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 구 러시아 영사관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까지 겨우 세 블록 정도 이동했지만 언덕길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잠시 쉬어야 했다. 구 러시아 영사관 앞에서 계속 구시렁대다가 다시 다음 언덕길로 향했다.
이번 언덕은 스가타미자카 姿見坂(거울 언덕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한때 이곳에 에도의 요시하라를 본뜬 유곽이 있었고 이 일대를 차야마치라고 해서 유곽 기생들의 요염한 자태를 볼 수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코다테항의 서부두에서 곧장 하코다테야마로 뻗은 언덕으로 언덕 위쪽에서 항구를 향해 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이 언덕의 꼭대기에는 유곽의 문이 있었고 지금의 야요이초(구 타비고초, 텐진초)는, 그 당시 산노우에초라고 불리며 1871 년의 대화재까지 유곽 구역으로서 번창했다. 이 언덕을 내려가서 전차거리를 넘어가자마자 '페리 회견소 터의 설명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에도 시대 페리 제독과 마쓰마에 번과의 회견 장소가 된 유력 상인의 집 야마다야山田屋가 있었다.
표지판에 있는 그림은 페리의 수행원 하이네가 회견 모습이다. 그림을 보면, 당시 유력 상인의 상가는 무사 계급 못지않게 격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하이네가 그린 하코다테의 거리풍경 그림은 하코다테 산의 형태로 미루어 보면 바로 이 스가타미자카라고 한다.
페리 제독과의 회견장면을 그린 그림
스가타미자카에서 내려다본 하코다테 항만의 풍경,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사소한 풍경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게 된다
회견소 터에서 전차거리 건너 조금 올라가다 왼쪽을 보면 하코다테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 '구 다이코쿠유大黒湯가 있었다. 1907년에 전 경영자로부터 양도받아 개업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목욕탕의 창업은 1907년 이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던 이 목욕탕은 개업 103년 만인 2010년에 폐업했고 지금은 공립하코다테 미래대학 디자인베스라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시 페리회견소자리에서 항구 쪽으로 내려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로만티코로만티카라는 카페가 있다.
로마로마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곳인데, 1916년에 건축된 오래된 건물을 리뉴얼해서 만든 카페이다, 고풍스러운 외관 안으로 들어가면 의외로 넓은 공간이 나온다. 아이스크림 파르페 이외에, 케이크 및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여행 중에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멋진 카페이다. 이제 다시 한 블록 또 이동해서 언덕길을 다시 올라가면 토키와자카常盤坂이다.
토키와자카의 풍경이 가장 예쁠 때는 단풍이 물드는 가을날이다. 에도 시대 후기, 상인이었던 오이시 다다지로大石忠次郎의 저택이 이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다. 인근에서 유명한 나무였던 '요시쓰네(義經) 걸터앉은 소나무'를 그 저택에 심어 놓았기 때문에 인연이 많은 '도키와의 소나무常盤の松'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미야모토노 요시쓰네의 생모인 도키와 고젠常盤御前을 뜻하는 것 같다.) 시바이마치노자카 芝居町の坂(언덕에 소극장이 있다고 해서) , 혹은 미카에리자카見返り坂(유곽에서 기생과 놀던 손님이 돌아가면서 아쉬워했다는 뜻에서)으로도 불렸던 곳이다.
지금은, 과거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완전히, 민가가 늘어선 한적한 주택가로 언덕의 시작점 앞에는 역사적인 건물이 드문드문 있다. 토키와자카에서 항구 쪽으로 쭈욱 내려오면 서양식과 일본식이 혼합된 화양풍의 건물을 볼 수 있다.
바로 타치카와가의 점포 주택太刀川家住宅店舗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오른쪽이 타치가와 점포 주택이고 왼편이 현재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타치가와 가문은 에도 시대 말기부터 미곡점, 어업, 회조업을 경영해서 재산을 모았다. 이 주택 겸 점포는, 1901년에 지어진 것이다. 벽돌로 쌓은 토장구조로 서양식 아치를 도입했고 좌우에 방화용 벽이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구조로 1907년의 대화재의 피해를 모면했다. 개항 시대의 건축 양식이 충실한 탓에 메이지 시대의 상가 건축으로서 1971년에 국가 지정 중요 문화재가 되었다. 카페&레스토랑으로 운영해 왔는데 유지 보수 공사를 위해 2018년 10월 문을 닫았다가 2019년 6월부터 회의, 파티, 전시회, 촬영 등을 대상으로 한 대여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옆의 양옥은 1915년에 응접 전용실로 증축된 것이다. 다이쇼 시대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화려한 디자인이 특징인데 하코다테 시 경관 형석 지정 건축물이 되었고 2019년부터 「타치가와가 양옥 게스트 하우스」로서, 숙박 이용(베드룸이나 리빙 다이닝등을 갖춘 1동 임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하코다테의 여행은 이렇게 언덕길을 오르내리면서 옛 건물들을 찾아가 그 건물들이 지닌 역사, 현재의 풍경들을 확인하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물론 여러 번 하코다테를 갔었기에 이런 여행이 가능했지만 언덕길을 걷다가 지치면 항구 쪽으로 이어지는 풍경들을 보았다. 그럴 때마다 힘을 얻었고,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하코다테는 이런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거리풍경, 그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 즐거운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