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의 긴 연휴 끝에 평상시엔 거들 떠 보지도 않던 포털사이트 뉴스 기사들을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제목들을위에서부터 훑으며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은 터치해 읽고 내용은 대강 쓰윽 지나간다.(책이나 브런치 글은 정독하는데 뉴스 기사는 궁금하거나 필요한 부분만 보기 때문에, 이래서 브런치 글도 제목이 참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 쭈욱 내려가고 있는데, 어느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자폐증 10대,말다툼하던 어머니 흉기로 살해'였다.
워낙 흉흉하고 끔찍한 사건, 사고가 많아서 뉴스를 보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아 한동안 보지 않으려고 일부로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 이 동네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아닌가.
" 어휴, 여긴 사건이 왜 이렇게 많이 일어나.."
유독 이 지역에서 요즘 사건이 많은 것만 같아 혼잣말을 하며 내용을 자세히 읽어 내려갔다.
명절 연휴를 보내고 있는 어느 아파트 가정집에서 15살 아들이 단지 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시끄러우니 조용히 좀 시켜달라고 엄마에게 요구했다.
그러자 엄마는 명절인데,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와 노는 것이 당연하다며 아들 보고 참으라고 꾸짖었단다.
그런데, 평소 불만이 있던 아들은 엄마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달아나고, 쓰러져있던 엄마를 외출했다 돌아온 아빠가 발견하고, 신고하고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사망했다.
아들은 자폐증을 앓고 있었고, 위로 거동이 불편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누나가 있는데, 엄마가 누나만 챙기고 돌본다고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기사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러했다.
그래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
이 끔찍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이 사건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이 마주하고 있는데,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카톡 친구로 등록되어있는 아는 엄마, 카카오톡을 열어 그 엄마의 프로필을 봤다. 집에서 키우고 있는 초록이들이다. 얼핏 봐도 사랑을 듬뿍 받아 고귀해 보였다. 배경은 아주 어렸을 때 찍은 것 같은 빛바랜 사진 속엔, 아이들이 바닷가에 서 있었다. 카톡 대화창을 열어보니 작년 초 서로 안부를 묻고 인사를 주고받은 글이 있다.
"어머, 나 미쳤나 봐, 지금 머 하는 거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지, 아니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내내 들고 있던 휴대폰을 끄고 내려놨다. 생각으로도 무고한 사람을 이렇게 죽이는구나. 아무리 우리 동네여도 이 사건과 이 엄마를 연결 짓는 내 자신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20여분이 지났을까.
메시지로 믿기지 않는 부고장이 날아왔다.
말도 안 되는 무서운 생각을 하고 나서 반성하고 있었는데, 아니, 생각이 났지만 얼른 머릿속에서 지웠는데, 아니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 엄마의 부고장이었다.막상 현실이 되니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 일이...
소름이 돋았고 사지가 후들거렸다. 입을 손으로 막고 미처 정리되지 않은 감정임에도 눈물이 떨어졌다.
소름이 너무 끼치면 눈물이 난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늘 그렇듯, 그 엄마의 장례식은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그리고, 그 아이는 구속 됐다고 했다.
매일 아침 해가 뜨고, 세상은 아무 일 없는 듯 시간은 흐르는데, 일사천리로 끝이 난 이 일이 과연 정말 끝이 난 걸까. 남겨진 가족들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이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건 6년 전, 교회에서였다.
나는 그때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를 하고 있었다.
곱고 단아한 모습이지만 얼굴이 그늘져있던 그 엄마는 내 또래 정도로 짐작이 갔다. 그 옆에 쭈뼛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아이.
왠지 지금 생각해도 이 두 사람이 교회 로비로 들어오는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를 교회에 보내보고 싶어 데리고 왔다고 소개하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 엄마는 돌아갔다.
아직도 똑똑히 기억이 난다. 분위기부터 심상치 않았던 그날을. 그 아이를 찬찬히 살피며 눈을 쳐다보는데, 불안과 분노로 가득 찬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 안녕!, 너 이름이 ㅇㅇ이구나. 반가워~.
우리 즐겁게 친하게 지내자.
10살이면 여기, 또래 친구들이야~."
그때 당시, 같은 3학년인 첫째 아이를 더 가리켰다.
아이는 대답이 없었고, 내 말소리만 허공에 공기를 가를 뿐이었다.
그렇게 매주 일요일마다 그 아이를 만났고, 데려다주던 그 엄마도 만났다. 그래도 웃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가까스로 한 억지웃음일지라도. 나중엔 교사인 나와 남편이 직접 데리러 가서 데려오기도 했었다. 가끔 예배를 빠지면 간식을 챙겨 집 앞에 가서 엄마 손에 건네주기도 하면서.
그러다 코로나가 오고, 잠시 교회를 쉬다가 나중에 다니겠다는 메시지로 통보를 받은 후 그 아이를 더 이상 보지 못했다.
드문드문 엄마와 카톡을 주고받았다. ㅇㅇ이가 잘 지내는지,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들어가는데 잘 적응하고 있는지, 힘들어하진 않는지, 내 아이를 살펴본 결과를 전문가인 양 줄줄이 나열했다. 아무래도 또래 아이를 키우는 같은 엄마 입장이어서 공감을 잘해준다고 건방을 떨었다. 어리석었다. 그런데 이게 마지막 주고받은 대화였다니. 이젠 어쭙잖은 조언조차 할 수 없다니.
아직도 이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카톡 프로필 사진 속 푸르른 식물들은 그대로인데.
슬픈 웃음을 짓던 그 엄마 얼굴이 떠올라 몇 날, 며칠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 엄마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하루라도 마음 편한 날이 있었을까. 조금이라도 내가 헤아릴 수나 있을까.
이제야 그 엄마의 표정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아들의 손에 찔려 쓰러지는 순간에도 자식들 걱정이었을 그 엄마.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자의 삶이 참 기구하다.
자식에 의해 부인을 잃은 그 아이의 아빠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힘을 얻을지.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중증 장애가 있는 누나가 있어 엄마가 누나를 보살피다 보니 자신에게 소홀한 게 늘 불만이어서 그런다고만 알고 있었다.
교회에서도 시끄럽다며 더 시끄럽게 소리 지르고 종종 분노를 표출하고 대답도 안 하거나 말투가 윽박지를 때 빼곤 어눌했다. 당연히 아이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그래도, 목사님, 사모님, 교회 어르신들과 교사들이 더 챙기고 더 다독였더니 좀 모나게 행동하는 것들이 나아지는 듯하기도 했다.
자폐를 앓고 있는 것은 정말 몰랐다. 자폐증 때문에 소리에 예민하다는 것을. 식구들과 그 엄마는 알았을까.
그 아이는 이제 살인자가 됐다. 존속살인.
촉법소년으로 처벌이 가벼울 수 있겠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15살 청소년이다.
내가 관심을 조금만 더 가졌으면 어땠을까. 아니 누구라도, 사랑이 고프고 외로웠을 그 아이에게 조금만 더 다가갔다면 순식간에 벌어진 이 일이 안 일어났을지도 모르는데.
후회해서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백만 번 후회하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 평온한 일상에 아직도 한쪽에서는 한 가정이 무너져 버리는 일어나지 말아야 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마치 고요하게 수면 위를 떠다니는 오리가 물 밑에서는 온 힘을 다해 빠르게 헤엄치는 것처럼 말이다. 국민을 이루는 최초의 집단은 가정이다. 가정이 행복해야 개인이 살아갈 힘을 얻고 그래야 나라가 행복하다.
아픈 아이가 한 명만 있어도 가정이 휘청거리는데, 장애가 있는 딸과 자폐를 앓고 있는 아들까지, 자라서 사회 구성원이 되도록 한가닥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을 거다.
사회적으로 물 밑을 더 살피고 아픈 가정이 무너지지 않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제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분명, 그 아이는 가해자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치료해 주고 관심과 사랑을 부어 주었다면 이런 끔찍한 일을 막았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괴물이 되어버린 이 가여운 아이는 피해자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