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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마담 Mar 02. 2022

좀비 사태 이후 우리는 그 아픔을 누구에게 돌려야 할까

호러 재판 시리즈 1. 좀비 장례식

CASE 1. 

 바로 눈앞에 좀비가 등장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도망칠까? 그냥 물려버릴까? 아니면 곧바로 머리를 조준해야 할까?(누구의 머리인지는 역시 본인의 선택이다.) 우리는 짧은 순간에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이 무엇이든 그 대가는 당신의 몫인 것도 잊지 말고. 

 예전 좀비들은 시체들의 환생이었다. 무덤에서 나와 느릿느릿 다가와서 물량 공세를 하는 공포의 존재. 시대가 지나면서 좀비들은 더욱 진화하였다. 바이러스성 좀비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션. 이 녀석들이 대세가 되면서 '전염'이라는 특성으로 효율적으로 대량화가 되었고 거기다 달리기 시작하면서 동족을 만들기 편해졌다. 예전과 지금 좀비의 공통점이라면 역시 '사람을 문다.' 그리고 '의지가 없다.' 나를 공격하지만 의지가 없기에 우리는 좀비를 죄책감 없이 죽일 수 있었다.

 좀비물의 클리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지인이 좀비가 되어 등장하면 죽일지 말지 고민하는 장면! 그들도 한때 우리의 가족이자 친구이자 인간이었다. 이 장면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내 상황에 대입했을 때 아주 극단적인 효과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마치 '밸런스 게임'처럼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지만 선뜻 고르지 못하는 선택지. 이성과 감정이 충돌하는 순간이다. 

 하나만 더 상상해보자. 백신이 개발되고 좀비들은 굶어 죽어서 사태가 마무리된 좀 더 먼 미래? 그때 우리는 좀비를 죽인 것에 대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간단히 '정당방위다.', '특수한 상황이다.'라고 변론할 수도 있겠지. 다만 그들 중에 불완전한 좀비가 있었을 수도 있지 않는가. 물렸다고 해도 알고 보니 면역자라던가. 그 상황을 이용해서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던가. 어차피 증거는 없다. 

 잘못을 일일이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그런 사람들은 이미 좀비가 되었다. 다만 우리 마음속에 기묘한 죄책감이 남아 있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오늘 나의 삶은 죄책감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은 좀비같이 항상 나를 괴롭히고 있으니까. 

 자, 그들을 위해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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