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나에게 해줘야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멈추고 소파에서 일어나 침착하지 못한 모습으로 책상으로 다가갔다. 스토너는 갑작스레 감정을 터뜨린 그녀의 모습에 당황해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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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RHK. 김승욱 옮김.
연말 내내 길고 좁은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새해가 되어도 달라질 게 없어서 쉽사리 잠 못들지 못한 밤 동안 생각으로 그 긴 길을 걸어나가는 롤플레잉 같은 걸 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같은 방법으로 또 다른 방법으로 빛이 가득한 큰 바닷가로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새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두려움이나 무력함, 무의미한 것까지 꼭 끌어안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을만큼, 딱 그만큼의 용기면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