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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Mar 13. 2022

취향과 존중에 대하여

모래에 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고양이와 강아지가 비교 선상에 놓일 때가 있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사항은 바로 배변 교육의 유무다. 내가 다니는 사무실은 반려동물 동반 출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종종 강아지들이 회사에 오곤 한다. 배변 교육은 견주의 몫이겠으나, 간혹 어떤 강아지들은 바닥에 깔아 둔 배변 패드에서 벗어난 범위에 소변을 누곤 한다. 배변 교육이 안 되어 있느냐 물으면 집에서는 잘한다고 한다. 그만큼 강아지들의 배변이란 아리송하다. 또한 실외 배변을 하는 아이들을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으로 나가는 견주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그에 반해 고양이는 스스로 배변을 해결한다. 화장실을 두고 모래를 부어놓으면 알아서 싸고(?) 알아서 묻고 나온다. 본능이다. 적들에게 자신의 냄새를 들키지 않으려는 야생의 본능으로 자신의 흔적을 깔끔하게 치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몇몇 견주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고양이는 키우기 편하겠어요~ 하며 부러워들 하지만, 나름의 고충이 있다. 먼저 고양이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인 만큼 그들의 취향을 정확히 캐치해야 한다. 모래의 종류는 생각보다 많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벤토나이트를 비롯해 두부모래, 우드펠렛, 크리스탈 등이 있으며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한다. 벤토는 흔히 놀이터에 깔린 모래를 생각하면 쉽다. 고양이들이 소변을 누게 되면 입자가 모양대로 녹으면서 뭉쳐진다. 벤토를 약 5년간 사용해본 결과 고양이들의 기호에는 상당히 적합하다 자부할 수 있다. 인간들 기호에는 부적합하다. 집안이 사방팔방 모래밭이 된다. 발 딛는 곳마다 모래다. 고양이 발가락 사이에 끼여있거나 붙어있던 모래 알갱이들이 거실까지 후두둑 딸려 나오는 경우가 다수여서, 실내가 야외가 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풀의 경우 기분이 좋을 때면 모래 위에서 뒹굴고 나서는 신나게 깡총깡총 뛰어 침대로, 혹은 소파로 올라오기도 한다. 그렇다. 우리는 모래 위에서 잠을 자는 거나 마찬가지다. 최근 입자 고운 카사바(옥수수로 만든 모래)로 교체했더니 풀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래 위에서 밤새도록 뒹굴고 거실을 내달린 덕분에 아침부터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까지 해야만 했다. 카사바 모래 제품은 천연 재료를 사용해 먼지가 덜하고 아이들에게도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탈취력이 약해 화장실을 치울 때마다 숨을 참아야 한다는, 고된 단점이 있다. 전에 숨 한 번 쉬었다가 토할 뻔했다. –원래 비위가 약한 것도 있다.-


취향을 맞춰야 하는 것은 비단 모래뿐만이 아니다. 사료와 간식도 마찬가지다. 고양이들의 ‘끼니’에 사료만 있는 게 아니다. 보통 건식, 습식, 생식으로 나눌 수 있다. 건식은 사료. 사료가 맛있는 볶음밥이라면 생식은 잡곡밥+샐러드라고 비유를 해야 옳을까. 습식은 주로 캔을, 생소할 수도 있는 생식은 육식 동물인 고양이에 맞춰 오로지 생육을 갈아 만든 음식이다. 우리도 생식을 주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시도해본 적이 있다. 장렬히 실패했지만. 왜 맛있는 사료를 두고 생식을 먹이려 했는가? 이유는 많다. 대체적으로 아이들이 알아서 물을 마시지만 고양이가 체내에 채워야 하는 수분량에 비하면 훨씬 적다고 한다. 촉촉한 주식이나 생식을 먹으면 알아서 마시는 것 외의 수분을 채워줄 수 있다. 그리고 건식 사료는 고양이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조미료 역할의 재료들을 첨가하므로 쌓이고 쌓이면 살이 찔 수도. 인간이 다이어트할 때 왜 샐러드에 간 안 된 닭가슴 살을 먹겠는가. –고양이의 다이어트에 있어 사냥 놀이도 큰 비율을 차지한다.- 또한 나중에 아이들이 노쇠하여 매일 약을 먹여야 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맛있는 사료는 그때를 위한 히든카드로 남겨두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약 이 년 전부터 짜 먹는 간식을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짜 먹는 간식을 먹을 때는 오로지 발톱을 깎거나 양치질을 완료했을 때뿐. 싫어하는 행위를 인내했을 때 보상으로 간식을 내어주자 고양이들이 참는 시간이 늘었다. 비슷한 맥락이다. 생식이 의무이거나 필수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장점이 많은 식품이니 한 번쯤 시도를 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사료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생식을 처음 접했을 때 입에도 대지 않았다. 주인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생식에 간식을 섞어 준다던가, 사료를 가루로 만들어 토핑처럼 뿌려 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생식의 맛에 익숙해지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해당 방법들을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 최후의 수단은 굶기기. 강경책이다. 기간은 삼 일을 넘겨선 안 된다. 보통 그 안에 생식을 먹는다고들 하던데 고집 센 솔과 풀은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우린 이튿날 저녁에 백기를 들었다. 먹는 것에 대한 취향과 권리를 침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때론 그들의 건강을 위하여 선을 넘어야 할 때도 있다. 마치 내가 어릴 적, 엄마가 내가 먹기 싫다던 냉이 무침을 밥 위에 올려 주었던 것처럼. (물론 지금의 나는 냉이가 없어서 못 먹는 성인이 되었지만, 고양이들은 성인이 되지 않는다. 영원한 아기다.)  


또한 말이 통하지 않는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화라도 통하면 붙잡아 앉혀 놓고 설득이라도 하겠는데, 그게 안 되니 자연스럽게 깨우칠 수 있도록 인간이 머리를 굴려야 한다. 그중에서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 그게 어렵다. 더 나아가 훈육을 위한 방편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도 제외다. 지금까지도 가장 뼈저리게 후회되는 일이 있다. 솔을 데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보다 먼저 고양이 두 마리를 반려하고 있던 회사 동기가 있었다. 어린 솔이 하도 깨물어서 조언을 구했더니 코를 때리거나 목덜미를 잡고 겁을 줘야 한다고 일렀다. 내 자취방에 와 몸소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배운 훈육 법을 행동으로 옮겨본 건 단 한 번. 코를 손가락으로 튕겼더니 되레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기에 효용이 없다고 판단했고, 더불어 내 입장에서도 기분이 나빴다. 찜찜했다. 폭력을 통하여 행동을 통제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작고 까만 코를 볼 때마다 현타가 찾아왔다. 그 뒤로 그 동기의 충고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집에 사는 고양이들은 그런 식으로 훈육을 당한다는 뜻이구나. 불현듯 탄식이 샌다. 지금은 잘 살고 있으려나. 시간이 지나고, 솔이 더 자라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행동도 고쳐졌다. 나의 무지함으로 폭력을, 고통을 낳은 일화다.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실수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기록해둔다. 어쩌면 양육이라는 건 완벽할 수 없는 평생의 과제일지도 모른다. 이해가 우선이요, 관용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간은 커서 독립을 한다지만 동물은 아니다. 적정 선을 찾는 건 우리의 몫일 터. 예뻐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공생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서로에게 적응할수록 퍼즐은 맞춰진다. 그러나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하루가 갈 때마다 배우고 또 배운다. 완벽하지 않아도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중년의 우리에게서 그들이 떠날 때, 우리의 청사진이 아름답게 기록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를 덧대어 본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고양이들의 성격만큼이나 그들의 배변 자세도 다양하다. 우리 집 고양이들 중 솔과 풀은 오줌 소리가 거세다. 얼마나 거센지 방에서 싸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릴 정도다.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자질구레한 소음을 뚫고 쪼르륵 소리가 크게 넘어와 나와 삼월 모두 배를 잡고 웃는다. 예부터 소변 줄기란 일종의 힘을 상징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우리 집에서 서열 1, 2위를 다투므로, 일리가 있는 말 같다. 고양이들의 세계는 모계사회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 걸까. (이미 넷 다 중성화까지 한 마당에 성별을 나누어선 안 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집 수컷들은 순하다. 오줌을 눌 때도 조용하다. 언젠가 망구가 화장실에 가만히 앉아 있길래 너 뭐하니? 물었던 적이 있다. 가만 보니 오줌을 싸고 있더라. 소리가 없어서 몰랐다. 녀석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한 번 보고는 뒤로 돌아 오줌을 덮었더란다. 왠지 모르게 머쓱해져 방을 나왔다. 


네 마리의 고양이. 네 개의 취향. 네 개의 방식. 네 개의 존중.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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