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를 읽지 않던 독자가 변한 이유
가을이 되면 꼭 읽는 책이 김난도가 대표 저자로 쓰는 ‘트렌드 코리아’이다. 20대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고, 이 책을 읽는 사람을 보면 ‘저런 게 진짜 독서인가? 그냥 기사나 통계 모음집 아님?’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트렌드 코리아’가 나오는 날 바로 ebook을 결제한다. 물론 이 책을 아주 오래 정성스레 읽는 것은 아니지만 매년 꼬박꼬박 사고 1년에도 몇 번씩 들여다본다.
이렇게 ‘트렌드 코리아’의 꾸준한 독자로 변한 이유는 기사 쓰기에 대해 변한 나의 관점 탓일 것이다.
이전에는 기사를 통해 무언가 잘못된 사회 현상을 꼬집고 비판해야만 유용한 기사를 썼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관점보다는 쏟아지는 콘텐츠들 사이에, 클릭해보고 싶은 제목을 가졌으며, 제목에 이끌려 클릭했지만 본문을 읽고 나서도 ‘낚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꽤 유용한 읽을거리’를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변화했다.
나의 이러한 생각에 대해 나이가 들어서 글이 무뎌지고, 날카롭지 못한 기사를 생산하게 되었다고 비판한다면 아마 그 비판도 맞을 것이다. (물론 비판을 해야 할 때 모른 척하면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 선상에서 나는 ‘제목 낚시’라는 것에 100% 부정적이지 않다. 넘쳐나는 콘텐츠 중에 이용자는 제목을 먼저 본 후 본문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낚시를 하지 못하는 제목은 본문을 보여줄 기회를 잃게 만들 뿐이다.
문제는 제목은 그럴싸하지만 본문은 제목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거나 허술한 경우다. 제목으로 이용자를 불러들여야 하고, 그 후 본문을 읽고도 허탈함이나 ‘속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충실한 본문을 꾸리면 제목이 어느 정도 기교를 부렸어도 상관없다고, 오히려 잘 쓴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트렌드 코리아’ 같은 책을 읽는 것도 나에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이하고 싶었다. 매일매일 발제 역시 수동적인 자료를 쳐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콘텐츠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기 때문에) ‘왜 사람들은 이 콘텐츠에 열광할까?’라는 소비자 관점을 전제로 접근하고 싶어 졌다는 생각이 조금 거 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판적 관점을 완전 무시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기에 소비자 관점에서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트렌드 코리아’의 생각방식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왜 사람들이 이 콘텐츠에 열광할까?’라는 전제 없이 썼던 과거의 기사를 보면 콘텐츠의 한 부분만 보고 ‘이거 되게 질 낮은 콘텐츠다!’를 폭로하거나 비판하는 데 여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제의 부분들을 알고서도 해당 콘텐츠를 소비한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처음에는 ‘사람들은 문제의식이 없어!’라고 세상을 비관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나만큼 문제의식이 없어!’라는 관점을 하에 쓰인 글은 읽으면 재수가 없고, 그 사람이 아무리 철학적인 멋들어진 관념을 잘 사용하더라도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 물론 철학적인 관념 자체를 잘 몰라서 그런 개념어를 특정 사례와 연결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내가 똑똑해졌다고 착각했을 때는 그런 글이 멋있어 보였지만.
다시 문제로 돌아가 ‘어떤 콘텐츠에 문제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콘텐츠를 여전히 소비한다’ 면,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무시할 정도로 그 콘텐츠가 갖는 재미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 재미를 유발하는 사회적 전제는 무엇일까?, 왜 해당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비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와닿지 않는 비평인 걸까? 왜 사람들은 그 문제를 무시할까? 그 문제를 무시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 혼자만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등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왜 내 주변에는 다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세력은 현실에서 그토록 초라한 지지를 받는 것일까? 같은 고민과 이어진다.)
결국 아무런 문제가 없는 콘텐츠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 어느 정도 결함이 있지만 사람들이 듣고 싶은 혹은 보고 싶은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이다. 어떤 콘텐츠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더라도 사람들에게 준 ‘재미’와 함께 언급하면서 글을 꾸려나가는 게 나에겐 좋은 글로 보였다.
요즘은 이렇게 생각하기에 소비자 관점의 정수인 ‘트렌드 코리아’를 매년 읽는 독자가 되었다. 물론 몇 년 전의 나의 생각과는 완전히 달라진 생각이기에, 또 몇 년 후엔 트렌드 코리아를 읽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덧.
사실 트렌드 코리아 2025를 읽다가 ‘무해함’이 트렌드라는 것을 보고, 탈정치화라는 지적이 이제는 너무 지겨워진, 그런 지적에도 계속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무해함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런 글이 됐다. 무해함에 대한 글은 이번 달안에 기사로 한번 풀어보고 싶은데 국감 시즌이라 가능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