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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May 03. 2022

직업과는 '환승 이별'해도 되지 않을까

좋아했던 직업이라면 더욱더.

꿈이 수시로 바뀌었던 초등학생 때가 아닌, 나름 진득하게 생각했던 첫 장래희망은 만화가였다. 어릴 적 일본에 3년 간 거주했다. 매일 만화에 둘러싸여 살았고 한국에 와서도 만화영화를 정말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매일 만화대여방에 들러 1일 3만화책을 몇 년 지속했다. 만화가의 꿈을 접은 고3 때도 다니던 만화방 주인아주머니가 '고3이 되어서도 오니?' 하면서 걱정해주시기도 했다.


그림에 그다지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달은 후 두 번째 장래희망은 잡지 기자였다. '신디 더 퍼키'라든가 '키키'같은 잡지를 좋아했고 한 달에 2~3권 정도 사봤다. 당시 중학생에게는 꽤 큰 비용이었다. 대신 도서관에 가서 거의 모든 잡지를 읽었다. TMI로 가장 좋아하던 잡지는 '크래커 유어 워드로브'라는 스트릿 패션 잡지였다. 이런 잡지들에 많지 않은 비중으로 실리던 피처 기사 읽는 것을 좋아했고 '피처 에디터'라는 걸 알게 됐다. 휘황찬란한 잡지 가운데 오히려 하얗고 검은 글자만 가득했던 페이지에 끌렸다. 그 페이지의 마지막 문단에 내 이름이 쓰여있는 걸 오랫동안 상상했다.


대학생이 되고 잡지 기자의 꿈은 신문 기자로 변경됐다. 그렇게 기자 일을 한 지도 8년 차다. 기자 일을 꿈꿨고 지금도 역시 나와 잘 맞는 직종이라고 생각하긴 한다. 이 일이 아니었으면 진작 그만뒀을 거라고도. 그래도 꽤 자주 일을 그만두는 상상을 했다. 당장 그만두겠다는 건 아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사표를 품고 다닌다는, 그 정도의 생각이다. 당연하게 일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만두겠다는 상상은 극대화된다.




2  썼던 일기를 들춰보니 이날 '정말  일을 그만두고 싶다'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써놨더라. 2년이  지났지여전히 같은 곳에 다니고 다.


이날은 기사에 틀린 정보를 써서 마음을 졸이며 기사를 수정했던 날이다. 기사 속 '틀린 부분'이 캡처가 되어 SNS에서 나와 매체를 욕하는 문장도 보았다. 어쩌면 기자들이 맞닥뜨리는 가장 큰 스트레스 상황 중 하나일 것이다. 내 생각을 쓴 문장은 아니었고 취재원이 정보를 주어서, 그것을 따옴표를 치고 옮긴 문장에서 결과적으로 틀린 정보가 나왔다.


취재원에게 해당 정보가 틀려서 정정을 해야 한다고 알렸다. 물론 취재원의 말을 면밀히 살펴보지 않은 내가 1차적 잘못이 있다. 그러나 나는 취재원이 적어도, 그냥 빈말이라도 '잘못 알아서 미안하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는 오히려 '왜 그걸 그대로 기사를 썼느냐'라고 말했다. 내 잘못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기에 맞는 말이긴 했지만 화도 나고 원망스러웠다. 당신 책임도 조금은 있는 것 아닐까요. 올라오는 말들을 억누르고 죄송하다고 전화를 끊었다.




매체 특성상 오보에 더 예민하다. 평상시 다른 매체의 오보를 비판하거나 지적하는 비평을 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보가 나가면 머리가 쭈뼛하고 설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그 후유증도 며칠 동안 겪는 편이다. 물론 다른 매체의 기자들도 비슷할 것이다. 남을 비평하는 일을 하기에, 내가 잘못했을 때 욕을 먹는 크기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정말 큰 스트레스여도 당연한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실수라고 하더라고 욕과 비판과 비아냥이 함께 들려올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이렇게 의기소침해지는 시기면 기사를 쓰고 누군갈 비판하는 것이 업보만 늘리는 것 같아 당장이라도 그만둬야 할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나는 다른 기사를 비평할 주제가 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자책하는 것도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릴 때처럼 새로운 장래희망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시간이 지나간다. 결국은 '다른 직업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생각을 억누르는 것이 반복된다.


사진출처=PIXABAY.


나보다 뛰어난 기자들이 매우 허망하게 기자를 그만둔 일들도 많다. 기자로서 이름을 날린 사람도, 기자라는 일을 정말 좋아했던 이도 갑자기 어떤 감정을 못 이겨 그만두기도 했다.


허망했지만 결국 어떠한 형태든 '이별'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도 몇 번이고 나처럼 감정을 누르던 일들을 반복했을 것이다.  


몇 년을 사귀었던 연인도 하루아침에 헤어지는데 기자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그만둔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나보다는 훨씬 더 기자 일을 열심히 하고 사랑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도 홧김에 기자를 그만두는데, 나라고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 나도 이 직업과 이별을 하겠지만 그 이별이 홧김에 그만두는 것이 아닌, 감정을 덜어내고 천천히 준비해서 아주 차게 식었을 때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그만두는, ‘환승 이별’이었으면 좋겠다.


정말 좋아했던 일이기에 더더욱 그래야 할 것 같다. 사람에게 '환승 이별'을 한다면 욕 꽤나 먹겠지만, 상처를 받을 대상이 없는 '환승 이별 전직'에는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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