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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Sep 20. 2023

얼굴보다 음식이 더 이쁘잖아

내 사진 말고 내 집밥 좀 찍어줄래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사람들이 음식 사진을 찍는 이유'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봤다. 내용은 단순했다.

"내 얼굴보다 음식이 더 잘 나오잖아."

극한의 공감을 부르는 글이었다.




친구 중 사진을 잘 찍는 친구가 있다. 요즘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매우 좋아서 모두가 사진가라고 하지만, 특출 나게 사진을 잘 찍는 친구다. 그 친구가 집에 놀러 올 때면 친구가 놀러 온다는 것 자체도 기쁘지만 예쁜 사진을 몇 장 건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친구가 찍어주는 우리 집 사진, 아기 사진, 내 집밥 사진을 보면 내가 매일 보는 풍경임에도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 있구나 싶다.


스스로 사진을 잘 못 찍는다 생각한 적 없지만 그 친구의 사진을 보면, 매일 이렇게 찍어주지 못하는 나의 피사체들 - 아기와 음식 -에게 미안할 정도다. 그래서인지 이 친구와 놀 때면 밖에 나가서 사 먹기보다 꼭 우리 집에 부르고 싶다. 내가 밥 차려줄 테니 집밥 사진 좀 찍어주겠니.


스타우브 냄비에 야채들을 대충 넣고 찌면 '무수분 야채찜'이 된다.


이날도 친구는 별 것 없는 집반찬도 훌륭하게 찍어냈다. 이 친구가 오면 꼭 꺼내놓고 싶은 냄비가 있는데, 신혼 때 남편이 사준 빨간색 스타우브다. 이날도 나는 빨간색 스타우브 냄비를 꺼냈다. 무쇠 냄비에 배춧잎을 깔고 노지 깻잎을 얹고, 버섯을 대충 올려놓는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후추 정도만 뿌린다. 물도 필요 없다. 뚜껑만 잘 닫아주면 된다. 야채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와 저절로 채수가 생긴다. 이렇게 대충 야채들을 무쇠냄비에 넣기만 해도 '무수분 야채찜'이라는 꽤 멋진 이름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


냉동고에 굴러다니던 닭갈비 팩에 고구마와 양배추도 썰어 볶았다. 냄비밥에 버섯을 넣고 버섯솥밥도 차렸다. 반찬으로 열무김치와 양념간장을 내었을 뿐인데도 친구는 너무 맛있다며 추켜세워준다.


이날 친구가 찍은 사진 역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널 나의 집밥 사진가로 고용하고 싶다."

"언니의 사진도 찍어주고 싶었는데, 못 찍었네."

"내 사진은 필요 없어. 내 집밥 좀 더 찍어줘."

"빨간 냄비에 초록색 야채들이 예뻤어. 예쁘게 차린 덕이지."

스타우브 덕이다.

(스타우브 광고 아님, 관계자 아님)




사실 차릴 것이 극히 없을 때에도 이 빨간 무쇠냄비는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냉동고에 고기 한 덩어리도 없을 때. 이때도 김치 한 덩이 썰어 넣고 옆에 두부만 깔아 둬도 꽤 그럴듯한 김치찜이 된다. 고소한 고기의 맛은 없을지 몰라도, 예쁘게 익은 김치에 두부와 파만으로도 꽤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스타우브에 김치 한 덩이, 두부 반모만 넣어도 예쁘지 않나요?


친구들이 오지 않는 혼밥에도 무쇠냄비의 힘은 대단하다. 요즘 꽂힌 무수분 야채찜 - 배추와 깻잎, 버섯을 올려 찌는 건 똑같다 - 에 훈제오리고기 한 팩을 더했다. 이번에도 역시 특별한 간은 하지 않았다. 요리 자체에는 간을 하지 않았고, 멕시코식 핫소스에 오리와 야채를 찍어먹었는데 궁합이 잘 맞는 한 끼였다.


혼자 먹어도 궁상맞지 않은, 예쁜 한 끼니다. 야채 듬뿍에 오리고기로 단백질까지 챙긴 영양적으로도 훌륭하다. 혼자 있을 때는 되도록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야채찜과 오리고기를 무쇠냄비에 만들게 되면 맛과 영양, 비주얼까지 챙기는 식사가 완성돼 뿌듯하다.





김치만 들어간 김치찜도 그렇고, 몇 가지 야채를 더했을 뿐인 찜 요리도 평범한 냄비에 했을 때와는 다른 비주얼이 나오기 때문에 무언가 모자라보이지 않는다. 음식에서 맛도 맛이지만 비주얼은 얼마나 중요한지.  


하긴 당나라 때에도 관리의 등용 기준이 비주얼이라는 말도 들었다. 친구와 함께 재미로 사주를 보고, 사주 공부를 해볼까 싶어 강헌의 '명리: 운명을 읽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 나오는 말이다.


당나라 시절 관리 등용 기준은 비주얼이었다. 당나라 시대부터 중국인들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첫인상·외관·신뢰감이라고 생각했다. 머리에 든 것도 다 보이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중국인다운 현실주의적 판단이다.
관리가 자신의 권위를 몸에서 입으로, 즉 말을 꺼내기 전에 모습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권위를 가지기 힘들다는 점에서 신(身), 즉 외모는 중요하다. 그다음이 말(言)을 잘하고, 글(書)을 잘 쓰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판단력(判)이다.


사람들이 요리 사진을 많이 찍고, 요리 사진을 보고 싶은 이유도 예쁜 음식의 '비주얼'이 클 것이다. 내 얼굴보다 내가 만든 음식이 더 이쁘고, 이쁘게 차려진 식당의 밥을 보면 나도 모르게 카메라로 손이 간다. 집밥에도 외모지상주의의 잣대는 비켜나갈 수 없나 보다.


스타우브에 야채찜을 만들고, 그 위에 훈제오리를 한 팩 올려 다시 찐다. 훈제오리 야채찜은 비주얼도 좋고 맛도, 영양도 좋다. 심지어 만드는 방법도 너무나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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