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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집증후군 Sep 14. 2020

스팀 모드 유료화 사태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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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4일. 세계 최대의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은 베데스다의 게임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을 시작으로 창작마당을 통해 모드를 유료화하는 것을 발표했다. 여기서 모드란 게임회사에서 제공한 개발자 툴을 이용한 것으로 작게는 아이템 생성이나 편의 시스템 개선, 크게는 새로운 스토리와 이야기 창조 등 유저가 원하는 것을 추가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지금까지는 관련 커뮤니티에서 모드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제작한 모드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었다. 금전적인 보상이라고 해도 자유로운 소정의 기부금에 그치는 정도로 어디까지나 취미의 영역에 그쳤는데 그런 무상 노동에 스팀은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커뮤니티와 제작자들의 반응은 스팀의 예상과는 달랐다. 커뮤니티는 찬성과 반대의 입장으로 크게 갈라섰고 대다수의 반대하는 유저들은 직접 스팀 게시판의 항의 게시글을 올려 항의했다. 결국 스팀은 4일 만에 발표를 철회함으로써 흔히 스팀 모드 유료화사태라고 불리는 이 일은 막을 내렸다


이 일의 흥미로운 점은 선의의 2차 창작자들에 의해서 자본의 개입이 거부되었다는 것이다. 유저들의 반대에 따른 스팀의 불합리한 정책이나 행위(수익률 배분이 모드 제작자에겐 25%, 스팀과 게임 제작사에는 75%, 항의하는 유저들을 벤하는 등)를 차치하고서라도 스팀의 대표 게이브 뉴웰의 해명, “Actually money is how the community steers work.”(사실 커뮤니티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은 돈입니다. “에 따른 한 유저의 대답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Funny, the community successfully steered modding work in Elder Scrolls for about ten fucking years with nothing but goodwill and thanks, before you guys got involved.“(재밌네, 엘더스크롤 모드 커뮤니티는 선의와 감사만으로 약 10년 동안 잘도 이끌어갔어. 너희들이 개입하기 전까지) 이는 오히려 자본의 개입을 투고자가 거부함으로써 무상 노동화를 원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물론 스팀의 제안이 합리적이었다면 과연 모드를 만드는 창작자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지에 대한 의구심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사건은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플랫폼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방식으로 착취를 실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길한 징조이기도 하다. 이들 모드 제작자들은 직접적으로는 제작사와 스팀에게 그 어떤 금전적 이득도 제공하지 않고 있었다. ‘포켓몬스터 소드 실드’ 제작진들이 코어 유저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전작의 포켓몬들을 삭제한 이유는 엔딩을 끝까지 본 후 모든 포켓몬들을 찾아 전국 도감을 모으는 유저가 전체 구매자 비율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드를 제작하고 플레이하는 비율 역시 전체 게이머들을 보자면 굉장히 적은 숫자이다. 스팀의 시도는 이런 무상 노동을 여타 투고형 플랫폼처럼 제한적인 이득을 분배하며 자신들이 더 큰 금전적 이득을 누리려는 계획이었겠지만 게임과 게이머 그리고 플랫폼과의 관계는 여타 투고형 플랫폼처럼 개방적이지 않았다.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와 유통을 담당하는 스팀 그리고 모드를 만드는 몇몇 게이머들의 일치는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가 않는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라는 호칭을 언젠가 게임에게 물려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간접경험의 힘을 가지고 있는 소설과 영화에 비해 게임은 더욱 인터랙티브 하다. 1인칭 혹은 3인칭 등장인물에 몰입해 스토리를 진행하는 흔히 AAA 게임이라고 불리는 비디오 게임은 우리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엿보여준다. 인물에 몰입하고 그 인물이 되어 움직이고 선택하는 경험은 직접적인 간접경험을 가능케 한다. 물론 이 역시 유튜브 실황 콘텐츠 등으로 다시 간접화가 반복된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영화가 그랬듯이 결과물이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대규모 자본과 노동력을 필요하면서 벌어지는 게임 시장의 불합리한 처우 역시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AAA 게임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여성 퀴어 주인공을 내세워 이목을 끌었던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내부고발 문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스팀 모드 유료화 사태와 여타 게임의 수많은 모드들이 만들어지고 커뮤니티가 유지되는 이유는 자기 표출 욕구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첫 번째 이유는 재미 때문이다. 내가 즐겁고 재미있는 것을 다른 사람도 누렸으면 좋겠다는 선의에 의해서 유지된 커뮤니티의 결속력과 논쟁은 어떤 가능성을 꿈꾸게 된다. 다른 여타 2차 창작물이 그렇듯이 하나의 모드가 만들어지는 데는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는 데도 그들은 자본의 종식이 아닌 선의에 의한 유지를 택했다. 이는 꼭 노동에 대한 보상이 반드시 자본으로 교환되지는 않는 어떤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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