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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 Jul 19. 2024

리추얼을 통해 온전히 이해받는 느낌을 느껴요

[인터뷰] 에스더의 육아일기 쓰기 리추얼 이야기

Interview by 소하 


Q. 에스더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저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에스더라고 해요. 엄마가 된 지 6년 차가 되었고 사진 찍는 일을 하면서 얼마 전부터 스타트업 마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Q. 밑미 리추얼을 어떻게 알고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밑미가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때에는 제가 아이를 낳고 복직 후에 커리어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고민이 많을 때라 나를 돌보는 것보다는 마케터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과 같은 커리어 중심의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했어요.

일하는 엄마가 되고 나니 생각 이상으로 힘들더라고요. 일하는 나는 그대로 있는데 엄마라는 역할이 추가된 상황에 일상과 커리어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고민을 나눌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었어요. 회사에는 제가 유일한 워킹맘이었거든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답답한 마음에 일하는 엄마들을 어떻게든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글을 정기적으로 쓰려고 하니 혼자는 버겁더라고요. 그래서 친한 친구들을 모아서 ‘남는 글들'이라는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어요. 2년 정도 모임을 했는데 멤버 중 한 명이 아이를 낳고 밑미 육아 일기 쓰기 리추얼을 먼저 시작했고 저에게도 권유해 주었어요.

저는 블로그나 브런치나 모닝 페이지에 글을 쓰지만 아이 이야기보다 제 이야기가 중심이었거든요. 친구가 육아 일기를 쓰는 것을 보니 아이를 키우는 날들을 조금 더 자세히 기록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리추얼 메이커였던 현님의 오랜 팔로워였기에 겸사겸사 시작했어요.  


Q. 커리어 중심의 시선이 워킹맘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할까의 시선으로 바뀌면서 밑미를 만나시게 되었군요. 리추얼을 하시면서 어떠셨어요? 이전에 혼자 글을 쓰시다가 밑미에서 함께 육아일기를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일 것 같아요.

육아 일기 리추얼을 하면서 나의 일기만 쓰는 것일 뿐인데 서로에게 배우고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일기를 쓰는 동안 계속 떠올랐어요.

육아라는 것이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 이어져 내려온 일이지만 요즘은 커리어 이슈만큼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경험하는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육아는 진짜 어렵고 너무너무 힘들고 답이 없어요. 저 자신도 스스로가 이해 못 할 때가 많은데 타인인 아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요. 육아하면서 제 인생에 이토록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있었나라는 생각을 진짜 많이 하고 정말 많이 울고 남편과 많이 싸우고 정말 많이 아팠어요. 또 한편으로는 직장생활도 10년 정도 하고 나이가 들면서 삶에 새로운 것이 잘 없었는데 아이와 함께하면서 매 순간이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가 아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을 했고 아이가 사는 그 나이를 다시 사는 그런 기분도 들었어요. NGO에서 일할 때도 아이를 낳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른 시각을 주었어요. 세상에 모든 아이를 볼 때 내 아이를 떠올리게 되고 모든 부모에게 저를 대입하게 되고 전 세계 아이들의 고통이 진짜 제 고통이 되고 아이들이 행복하게 뛰어노는 모습이 제 기쁨이 되는 세계로 들어가는 육아인 것 같아요. 


(완전 다른 세계의 문을 여신 것 같아요)

맞아요,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죠. 처음 겪는 고통과 생전 처음 맛보는 기쁨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동시대에 함께 육아하는 양육자들이에요. 리추얼에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온전히 통한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온전히 통함이 온전히 이해받는다는 경험으로 이어지고 혼자 쓰면 자괴감으로 마무리될 하루가 육아 일기를 같이 쓰고 나면 위로받고 버틸 힘을 얻는 하루가 되는 것 같아요. 서로의 일기를 통해 배우고 자극받으면서 조금 더 좋은 부모,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져요. 그래서 리추얼에선 아이들이 성장하기에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도 펼쳐져요. 


(함께 쓰기 때문에 좋은 점들이네요)

글쓰기를 친구들과 오래 해보고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경험을 해봤지만 육아 일기 리추얼은 각자가 쓰지만 함께 쓰는 일기이기도 해요. 리추얼 메이트들과 휴일에 종종 만나서 공동육아를 해요. 리추얼을 하면서 매일 서로의 아이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발달 과정, 양육에 대한 어떤 고민이 있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만나다 보니 처음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설명할 필요도 없이 기꺼이 이모 삼촌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리추얼을 하면서 만나기 편한 이웃이 생겼어요. 

(양육자들끼리 이미 결이 비슷하다 보니 아이들끼리도 자연스럽게 친해지나 봐요)

맞아요, 큰 의미에서 보면 느슨한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안전한 동네를 경험하고 있어요. 단순히 글을 써서 이게 좋다,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좋은 것이 많아요. 


(에스더님이 리추얼로 일기를 썼을 했을 뿐인데 위로를 받았다는 말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리추얼에서 하기로 약속한 것만 했는데 같이 오는 게 너무 많고 큰 것 같아요.)

맞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 이야기를 하는 건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요. 그런데 리추얼 방에선 아이가 힘들게 할 때도, 혹은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울 대도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어떤 상황이든 아이와 양육자인 저 모두를 칭찬해 주고 응원해 주거든요.  


Q. 육아일기 리추얼을 워킹맘 친구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생겨요. 리추얼을 오랜 기간 하지 않으셨지만 육아일기 리추얼 치어리더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치어리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작년 9월이 이전 리추얼 메이커님의 마지막 리추얼이었고 저에게는 첫 리추얼인데 종료된다는 것이 무척 아쉬웠었어요. 그때 메이트들끼리 서로의 블로그에 계속 육아일기를 쓰고 응원하고 격려하자고 공유를 했었고 지금 리추얼 메이커이신 버터컵님의 블로그를 보며 육아일기 리추얼이 올해 1월부터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지금까지 계속 리추얼을 하고 있어요. 리추얼 메이커이신 버터컵님이 어느 날 저에게 “에스더님의 꽃말은 기왕이네요.”라고 말해주셨어요. 사람을 꽃으로 보기 때문에 버터컵님도 저의 성향을 ‘꽃말'이라고 표현하신 거잖아요. 그 마음에 우러나온 언어가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매사에 대충할 거면 시작을 하지 않고 기왕 하기로 한 거면 열심히 잘 해야지 하는 성향이에요. 그러다 보니 매일 육아일기를 쓰고 메이트들의 글을 읽으면 댓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어서 계속 댓글을 열심히 달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매일 메이트들에게 댓글을 달다 보니 준 치어리더처럼 활동하고 있었던 터라 직전 치어리더 잼잼님이 그만두시면서 제가 이어서 하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의 리추얼을 응원하고 돕는 일이 사실은 저를 돕는 일이고 리추얼을 꾸준히 잘할 수 있게 돕는 일이기도 해서 치어리더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육아일기 리추얼 러버이신 에스더님에게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응원, 혹은 메이트가 있으세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어요. 최근에 기억에 남는 응원을 떠올려보면 아까 소하님도 저에게 솔직하다는 말을 해주셨는데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저는 육아일기에 날 것의 고통을 숨김없이 써요. 너무 안 좋은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자기 검열을 잠시 하다가도 솔직하게 쓰지 못하는 게 더 괴로워 솔직하게 써요. 최근 신학기 적응과 같은 여러 가지 아이에게 도전이 필요한 부분들이 많아서인지 아이랑 연인처럼 싸우더라구요. 집에서 뛰쳐나와서 막 울면서 일기를 썼던 날도 있어요. 털어놓을 곳이 여기밖에 없기 때문에 그냥 솔직하게 썼어요. 힘들지만 매일 괜찮아져야 하는 게 부모이다 보니 이 고통이 끝이 있을까 싶어서 무력감도 많이 느꼈어요.

이런 시간이 지나가고 요즘은 아이랑 싸우지 않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어 육아 황금기 같다고 표현했는데, 제가 얼마나 이전부터 고군분투하며 보냈는지 지켜본 친구가 황금기는 그저 온 것이 아니라 무단히 쌓아온 노력과, 정성, 사랑이 꽃피우는 시기라고 정정해 주었던 것이 기억이 나요. 

Q. 감동이에요. 육아일기 메이트님들은 다들 표현력이 좋으신 것 같아요. 방금 에스더님 이야기처럼 워킹맘으로 살다 보면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에스더님만의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요.

저는 이 방법을 찾으려고 진짜 많이 실험했던 것 같아요. 엄마라는 역할이 타인을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게 돼요. 요리나 집안일은 아이가 없다면 뒤로 미뤄도 되지만 아이가 있으면 배달 음식을 먹기가 어렵고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아이가 다칠 수도 있으니 해야 할 일들을 먼저 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유도 모른 채 불만과 스트레스가 엄청 많이 쌓이더라고요. 엄마라는 역할 뿐 아니고 역할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좋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나로서 잘 살지 못하면 반드시 엄마로도 잘살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엄마인 나, 사진 찍는 나, 마케터인 나 결국에는 나로 끝나잖아요. 의식적으로 나를 돌보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해요. 우스갯소리로 워킹맘을 시간 거지라고 하거든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요. 그래서 혼자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출퇴근 시간이랑 점심시간을 활용했어요. 회식이 있지 않는 한 혼자서 점심을 먹으며 메모앱에 조각 글쓰기를 하고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방해받지 않고 카페이 혼자 있는 것 같이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남편과 아이를 번갈아 재우며 이틀에 한 번은 밤에 나만의 시간을 가졌어요. 집안일은 흐린 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되 포기가 안 되면 식기 세척기, 로봇 청소기, 청소 업체 부르기 적극 추천해요. 정신 건강을 위해 훨씬 좋아요. 그리고 모닝 페이지를 추천해요. 아침에 쓰기 어려우면 자기 전에라도 쓰려고 하고 있어요. 


Q. 직접 경험하신 찐 꿀팁들이라서 밑미 레터로 발행되면 친구들에게 마구 전달해야겠어요. 리추얼을 하고 있지 않거나 육아일기를 쓰지 않지만 언젠가 만날지도 모르는 육아 동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이야기 해주세요.

육아일기를 쓰기 전에는 육아 퇴근만 기다리고 버티다 지쳐서 잠드는 삶을 살다가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냥 지나가는 날이 아니라 고유한 하루가 되었어요. 오늘 아이가 어떤 말을 했고, 무엇을 같이 봤고, 무엇을 느꼈고 밥은 무엇을 먹었고 하는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되었어요. 함께 육아일기를 쓰면서는 슬픔이나 고통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견딜 만하게 되었고 기쁜 순간들이 더 진하게 기억에 남게 되는 것 같아요. 기쁜 내용의 일기에 메이트들이 같이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는 댓글을 달아주니 좋은 일들이 더 좋고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결론적으로 아이에 대한 일기, 글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로 사는 나의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어요. 리추얼에서 함께 육아일기를 쓴다면 육아라는 외롭고 긴 전투를 함께할 동지들이 있어서 앞으로의 시간이 더 나아질 거로 생각해요. 


Q. 에스더님에게  리추얼이란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리추얼은 나를 돌보는 행위인데, 나를 돌보는 일이 나와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까지 돌보는 행위라는 것을 아이를 낳고 깨달았어요. 제가 아프면 남편이 제 몫까지 아이를 돌봐야 하고 아이는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고 모두가 힘들어져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를 더 사랑하기 위해서 리추얼을 하면 나를 더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메이트가 소개하는 우리 리추얼

보통 육아하며 알게 된 양육자들은 아이 이름을 붙여 ‘ㅇㅇ맘', ㅇㅇ아빠' 등으로 부르게 되는데, 육아일기 리추얼에서는 서로의 이름 혹은 별명을 불러요. 나 자체로 있을 수 있는 곳이고 서로 존댓말을 하며 존중하며 선을 지키고 넘지 않아요. 서로의 육아관과 육아 경험들을 존중하는 곳이라 더 솔직하게 털어놓고 계속 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곳이에요.   

인터뷰를 하면서 리추얼애 참여했던 기간이 짧지만 에스더님에게 정말 필요했던 시간이었구나 싶었어요. 리추얼에 대해 말하는 에스더님의 표정도 밝았고 목소리에도 힘이 있었거든요. 그저 육아일기 리추얼로 매일 일기를 썼는데 나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가족을 더 사랑하게 되고, 나의 힘듦과 어려움을 날 것 그대로 쏟아내도 지적하거나 말을 얹지 않는 안전한 공간을 만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주는 동료들과 공동육아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해주신 모습에 괜히 제 마음도 촉촉해지고 미소 지어졌습니다. 에스더님과의 인터뷰는 리추얼을 하면 무엇이 좋아?라는 질문에 답을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과 딱 맞는 리추얼을 만나, 이 좋은 것들을 잔뜩 경험할 수 있기를 모든 메이트님들을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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