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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Jul 05. 2021

백 투 더 베이직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요즘 나의 관심사는 '어떻게 사람을 대할 것인가'이다. 겉으로 봤을 땐 과 마음이 다 자란 듯한데, 나름의 인생 고민으로 괴로워하며 마치 성체가 되기 전 변태 겪는 때가 2학년인 것 같다. 나는 이 시기의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인데, 아이들이 충분히 성숙했으므로 그들은 책임 있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고 조퇴를 하고 싶다고 하는 아이들 대부분에게 조퇴를 허락해줬다가, 지난 수행평가 시즌에 이틀 연속으로 4~5명이 질병 조퇴를 하는 바람에 우리 반만 수학 수행평가를 늦게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죽 학교가 견디기 힘들었으면 집에 가려고 할까 싶어서, 아프다는데 공부를 해야 한다고 잡아 두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같아서 조퇴증을 열심히 써줬는데, 내가 너무 물렁한 어른이 되었나 싶었다. 이들을 어떤 가치관을 갖고 대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만난 책이 <어린이라는 세계>이다.  


독서 교실을 운영하며 9세 이상의 어린이들과 가까이 지내는 저자는 따뜻하고 진솔한 시선으로 바라본 어린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어린이의 순수한 성숙함(분명 어린이 특유의 해맑음과 순수함이 묻어있는데 동시에 그들의 깊은 생각이 드러난다. 어른스러움이라고 말하는 건 그들의 순수함에 때를 묻히는 것 같아 모순적인 듯 하나 순수한 성숙함이라 표현했다)들이 이야기마다 들어있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할 것인가, 구체적으로는 고등학교 2학년 담임교사로서 어떻게 학생을 품위 있는 사람으로 클 수 있게 도와줄 것인가 대한 답을 중하고 믿어주고 기다리자로 정리할 수 있었.


어린이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만 다르다

풋살화 끈을 묶는 법을 갓 배운 현성이는 독서 교실을 들어서면서부터 자신이 이 신발을 다시 신을 때 끈을 새로 묶어야 한다는 것을 피력했다. 잘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씩씩하게 "지금도 (끈 묶기) 할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하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만 달라요"라고 하더니, 선생님의 도움을 받긴 했어도 신발끈을 제 손으로 꼼꼼히 동여매고선 독서 교실 문 앞에 마중 나온 엄마에게 자랑을 한다. "엄마, 이거 왼쪽은 내가 맸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줄 때는 기다려 줄 수 있어야 는 것 같다. 무언가를 잘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고, 그들은 기다림 속에서 현성이처럼 작지만 소중한 성취를 하나씩 얻어간다. 정말 쉬운 말이지만 사실 막상 기다려주는 일은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어른들만 해도 그렇지 않나. 신입이 갓 들어왔을 땐 일단 하나하나 일을 가르쳐 주지만(그냥 보고 배우라고 할 때도 있다), 일을 가르쳐 준 뒤부터 실수가 터지면 '지난번에 알려줬는데 왜'라는 이야기를 듣기 일쑤다. 사실 어른이든 아이들이든 성장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까지 실수를 해도 받아들여주고, 실수를 보완할 수 있는 기회와 도움을 줘서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고 이제 맡은 일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런 환경이 비록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용인되지 않더라도, 이제 막 세상을 배워가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실수나 순간의 실패에 좀 더 관대한 분위기가 널리 받아들여져야 한다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대접받아 본 어린이가 품위 있는 어른이 된다

기다림의 전제조건은 어린이라는 존재를 어딘가에 예속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일인 것 같다.


가는 어느 날 서점에서 아빠와 함께 계산대에 서 있는 어린이를 발견한다. 그런데 어린이는 아빠가 '물건을 계산해야 하니 아빠 줘~'라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계산 줄이 있으니 아빠도 당황했을 터. 그런데 여기서 사장님이 어린이에게 건넨 두 마디가 상황을 훈훈하게 마무리해 준다.

"따로 계산해드릴까요?", "따로 담아 드릴까요?"

어린이는 어른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이 걸릴 뿐 충분히 운동화 끈을 맬 수 있다는 현성이의 말처럼 어린이도 생각하는 바가 분명히 있고, 그에 따라 대접받고 싶어 한다. 품위 있는 어린이로 자라도록 하려면 대접받아 본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 게 어른이 할 일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에 선택에 대해 만족하거나 후회할 기회를 주는 것도 존중의 한 방법일 수 있다. 나는 학생들이 하는 모든 선택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선택할 시간을 준 뒤에는 그들의 결정에 별말을 하지 않는다. 도덕적으로 어긋나지 않는다면 그들이 만족하면 될 일이고, 불만족하더라도 선택을 내린 그들이 헤쳐나갈 일이다. 따로 담아 가서 팔이 아프더라도 어린이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짊어져야 할 책임이고, 따로 담아 가서 기분이 좋아도 선택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가는 품위 있는 어린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겉옷 벗어서 걸어주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나는 열여덟 살이나 된 큰 어린이들을 상대하는 교사이니 그들에게 겉옷 서비스 대신 '선택의 기회 제공' 서비스와  '들어는 드립니다' 서비스를 제공할까 한다. 결정도 결과도 자신의 몫으로 오롯이 받아들일 줄 아는 품위 있는 사람들로 거듭나길 라는 마음에서다.


백 투 더 베이직

한 때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집단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면 나보다 이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계발서나 자서전을 읽었고, 선배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읽고 들은 모든 것들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지만 돌이켜보면 누구나 중요하다고 강조한 아주 기본적이어서 그만큼 중요한 것들, 예를 들면 인사 잘하기, 잘못한 것이 있으면 사과하기, 결정한 일에 책임지기 등은 모두 어린 시절에 치원에서, 가정에서, 놀이터에서 이미 다 배운 것이었다. 책에서 작가는 "어린이가 가르쳐 주어서 길을 아는 게 아니라 어린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고심하면서 우리가 갈 길이 정해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막 태어나  자라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접하게 해 줄지, 그들과 어떻게 소통할지 고민하면서 과거로부터 만들어져 온 나를 의식하고 어른으로서의 삶을 계획 해나가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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