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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Sep 21. 2021

물 흐르듯 들이받으며 살기

오랜만에 대구에 내려갔다.

부모님께서는 늘 그렇듯 부지런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엄마는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셔서 사무실에 출근을 하셨다 돌아오셨다. 사유는 꽃에 물 주는 걸 까먹어서라는데, 가서 꽃에 물도 주고 겸사겸사 일도 챙긴 뒤에 오시는 걸 잘 알고 있다. 전형적인 워커홀릭이다.

아빠는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개고 스트레칭을 하신 후, 집 근처 강가를 자전거로 돌고 오신다. 아침을 먹고 나면 창소를 하신 후 평일에는 엄마와 함께 출근을 하시고, 주말에는 또 다시 엄마와 함께 성당에 가신다. 바지런하게 속 뭔가 하시고 계시지만 부산스럽지 않다.


나는? 서울에서 지내는 나는 평일에는 6시30분에 딱 맞춰 일어나 가까스로 머리를 말리고 헐레벌떡 뛰쳐나간다. 제발 47분까지 도착하길 간절히 바라면서 지하철 중간에 내려 택시를 탄다. 강의, 수업 구상 및 준비, 행정 처리 등을 하다가 퇴근을 하면 그대로 침대에 쓰러지기 일쑤다. 하도 설거지를 쌓아둬서 1인용 식기세척기를 갖다놓고 컵이 하나 남으면 돌린다. 빨래를 잊고 잠자기 일쑤여서 운동가기 전에 빨래를 세탁기에 넣어두고 운동 다녀온 후 팔 운동의 연장이라 생각하며 빨래를 탈탈 털어 넌다. 하루를 억지로 끌고 온 느낌이 들 때 책을 펼쳐서 조금 읽다가 잠이 든다. 나의 일상은 별 것 없는데도 쫓기듯 굴러간다.


이렇게 산 1년간 살이 많이 쪘다. 추석 때 대구에서 바지런하고 가지런한 부모님의 일상을 보면서, 늘 누워지내려 하고 해야 할 일을 미리미리 차근차근 해내지 않고 한번에 몰아서 대충 해치워버리려는 내 마음 가짐이 몸무게 증량에 한 몫을 단단히 했지 싶었다.


엄마는 일요일에 성당에 다녀온 뒤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신부님께서 강론 시간에 편안한 삶만 좇으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 물이 흘러가는 대로 두다가는 그 물길이 네가 쌓아놓은 제방을 뚫을 수도 있는거지."


좋은 게 좋은 거다, 처칠의 강철 체력 비법은 누울 수 있을 때 눕는 거였다며 눕고 눕고 또 누웠던 지난 날을 반성하게 되었다. 물처럼 중력에 나를 맡길 지라도 다시 물처럼 돌도, 쌓여있는 모래도 좀 능동적으로 뚫고 지나갔어야 하는데. 중력에 순응하기만 하고 다시 그걸 이용해서 삶을 개촉하는 정신이 부족했다.


오늘은 서울에 돌아와서 방을 싹 치웠다. 그리고 달력을 찢어서 냉장고에 붙인 뒤, 10일씩 단계를 나누어 뱃살을 배기 위한 데일리 루틴으로 물8잔마시기, 빵 먹지 않기, 자전거 15km-20km타기를 칸마다 큼직하게 적었다.


물 흐르듯, 나의 과거로 인해 다가오는 일을 그러려니 받아들이면서도 때론 과거부터 쌓아온 인생의 무게로 현실의 벽을 들이받으며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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