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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Mar 23. 2021

갈아만든클래스

풀타임 기간제 교사로 일한 지 3주가량이 되었다. 좀 있으면 월급날인데, 퇴직하는 데 돈이 든다고 하더라도 내게 퇴직이 나은 선택으로 여겨질 정도로 일이 많다. 특히, 화요일은 7교시 중 6교시를 연달아 수업하는 날이라 하루를 맞이하는 인체의 긴장감이 다른 날의 배가 된다.


위태롭고, 초조하다. 


나는 어느 정도의 수업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데드라인을 넘기지 않고 행정 업무를 끝내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 넣고 있다. 젊은 사람이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분위기, 교직생활에서의 평판이나 계약 연장 건, 한번 정해지면 쉬이 바뀌지 않아서 그저 들을 수 있는 말은 '다들 그렇다' 뿐인 조직. 2535 젊은 교사, 기간제 교사로 굴러가지만 소득 분배는 그렇지 않은 조직. 나는 지금 이 모든 버거움을 단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이 있으니 뭐든 허투루 할 수 없다는 책임감으로 견뎌내고 있다. 


나의 업무는 크게 담임교사 / 교과수업(네 과목, 세 학년, 11차시, 주 18시간) / 과학 교과 관련 실험캠프 기획 및 진행 / 정규 동아리 1개와 자율동아리 2개 / 학력평가 및 정기고사 시험 채점 및 통계로 나뉜다. 뭐가 그리 많다고 싶은데, 담임과 행정업무가 처음이고 수업에 많은 공을 들이고 싶은 사람에겐 매일 퇴근 후에도 일을 달려야 하는, 워라밸이 없는 삶을 살게 하는 업무분장 및 수업 일정이다. 특히, 보통 많아야 세 과목에 두 학년을 걸쳐서 수업을 하시며 하루에 5시간 수업이 최대치인 우리 학교에서 네 과목, 세 학년, 하루 평균 4시간에 최대 6 연강이 포함되어 있는 나의 수업 시간표는 모두의 불평을 잠재우는 역할을 했다. 


'오찬우 선생님을 보세요. 00 샘보다 수업이 훨씬 많아요. 우리도 어쩔 수 없었는데 많은 배려를 해드린 겁니다.'

 

그럼 내가 총대를 메고 불만을 합법적으로 제기해야 할 텐데, 나는 그놈의 평판이랄 것이 두려워서 단 한 번 시간표가 나온 날 시간표 담당 교사에게 항의했다가 "고교학점제라 이동수업이 많아서 어쩔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관리자급에게 말하는 것을 멈췄더랬다. 총대를 메고 앞장서서 새로운 솔루션을 이야기하는 일도 겁이 났다. 모두가 시간표를 짠 선생님께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고, 그들이 수고한 것과 나의 시간표 문제는 별개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한 과목 정도 시간 강사를 구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사실 시간표를 왜 이렇게 짰느냐고 묻는 단계 전에 본질적으로 시간표에 승인을 해 준 교감선생님께 시간표가 너무 사람을 혹사시킬 것 같으니 구인을 해달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 교감선생님은 시간 강사로 지불할 수 있는 예산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 하고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 혹시 나는 너무 일찍 순응을 배운 걸까.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오늘도 나는 적지 않은 긴장감을 안고 출근을 한다.

옆 자리 선생님에게 넌지시 수업 전에 긴장이 많이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프로가 왜 그러냐는 식의 농담이 들려왔다. 나는 과연 이런 내가 프로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아직 프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수업 준비를 더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고 정신적인 여유가 부족한데 수업 준비를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하지 못하는 책임을 나에게만 물려야 하는 것일까 고민한다. 나의 고민은 뫼비우스의 띠 같아서 멈추지 않고 머릿속을 빙빙 돈다. 


위태롭고, 초조하다. 

매일매일 나를 갈아 넣어 수업을 지탱하는 것 같다.


어디서 안정감을 얻어야 할까? 책임감, 완벽주의, 좌절감, 긴장감, 피로는 하루 커피 세 잔으로 씻어내고, '모두가 나의 선택이었다' , '어쨌든 오늘 하루도 지나갈 것이다', '1년간은 안 잘린다'라는 생각으로 닦아낸다. 어쨌든 오늘 하루는 지나갈 것이고, 나에게는 10대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백여 명의 아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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