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찍는 것과 현실을 담는 것

2019 서울독립영화제, 단편경쟁 2

by 흰지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브런치에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의 리뷰를 쓴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올해 또 한 번 영화제에 다녀왔다. '서독제'가 시작함과 동시에 '아 연말이구나' 싶었고 한 해의 문을 닫는 소회가 다 차오르기도 전에 치열하게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무대에 올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보며, 쓰는 것뿐이건만 다시 한 번 내 앞에 찾아온 독립영화들을 마주할 수 있는 연말은 그 자체로도 큰 축복이지 않을까. 다시금 구석구석을 비추는 시선이 따뜻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또 한 번 영화를 향한 짝사랑을 시작하는 계절은 바로 이번 겨울인 듯하다. 타이밍이 좋다.


2019 서울독립영화제, 단편경쟁 2


81 / 박송희 / 13min9sec


1년에 단 하루뿐, 대학입시를 위한 시험. 몇 자 안 되는 이 하루에 모든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는 이 기형적인 구조. 한 날, 한 시에 누구에게나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문제를 푼다는 이 공명정대한 날을 누군가는 조금 다르게 경험하며 기억하고 있다. 영화 <81>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혼자 교실에서 능을 치룬 하루를 보여준다. 어있는 교실을 보며 손가락질하는 목소리, 보청기를 낀 학생을 도와주러 오기 위해 수화를 쓰는 선생, 약발이 떨어진 보청기의 건전지. 앞길을 막아서는 소음에 주인공은 잠시 보청기를 내려놓는다. 누군가에게 너무 당연한 소리가 그렇지 않은 사람 앞에 당면할 때,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영화의 장면은 소리의 당사자들에게 묻는다.


나는 사자다 / 송주원 / 10min47sec


영화는 수수께끼 같다. 수수께끼의 답을 맞추기 위해선 질문에 상응하는 지식이나 경험을 훑고, 골몰하며 올바른 단어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 같은 영화는 자신이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카메라와 무용을 선택했으니, 우리 또한 이 초대에 응해야 할 것이다. 한빛이라는 소녀는 동네를 떠돌다 불현듯 사자가 그려진 대문의 집에서 춤을 춘다. 춤, 그리고 춤의 배경이 되는 시간은 시시각각 변한다. 춤을 추는 공간과, 편집점을 맞춘 카메라 스텝만이 춤을 추는 장면들에 통일성을 부여할 뿐이다. 소녀는 춤을 추며 자신이 발을 딛는 만큼의 공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자기 스스로에게 허락한 공간은 곧 이 공간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역사에 대한 질문으로 뿌리를 내린다. 춤은 그렇게 의미를 찾고, 힘을 갖는다. 우리가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맞추든, 맞추지 않든 간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개미들을 죽였는가? / 박건 / 14min33sec


우연히 찾은 캠코더 안에 의외의 영상이 숨어있었다. 이것은 우스꽝스러워보이는 몸짓과 셋팅에 모두가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진지한 얼굴이 지어보이는 가장 존엄한 생명의 행위들은 저화질의, 시종일관 테이프 감는 소리가 함께하는 가운데 흡사 오프 더 레코드의 성격을 가진다. 유치한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캠코더 안에 있던 저화질의 비디오는 극장 안 관객 모두가 몰입하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가 되는데, 세상에 결국 온전한 이해를 받지 못하는 생명. 그를 붙잡으려 하는 신화의 기록. 이 영화가 유치한가, 혹은 유치하지 않은가를 가르는 질문은 스스로를 물리적인 매체로서의 영화라 가리키며 내민 그 손가락에 있다. 그런데 손을 뻗었다고, 모든 것이 온전한 질문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갓건담 / 이준섭 / 23min36sec


머리를 기르는 아버지는 어머니와 별거 후 이혼을 했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멀끔하게 만들어 어머니 앞에 데려놓고자 한다. 이렇게 써보니 짐짓 심각한 이야기같지만 영화는 의외로 따뜻하다. 이 영화를 구성하는 인물들 역시 그러하다. 아버지는 퉁명스러워보이지만 다정했고. 그와 같이 사는 여자는 날카로워보였지만 정이 많았다. 그래서 영화의 중간중간, 피식거리며 웃을 수 있는 웃음들이 그렇게까지 삶은 음울하며 퍽퍽하지 않다며 주인공 소년의 손을 잡아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소년은 아버지의 선물을 어머니의 생일에 전달하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어버렸음 좋겠다고 한다. 삶의 아이러니와 어긋나는 인물들의 시선. 미끄러지는 웃음들.


창진이 마음 / 궁유정 / 30min58sec


창진이의 마음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선생님의 행동도 예측이 불가하다. 실수나, 잘못이 명확했던 처음과 다르게 관계가 화로 범벅이 될수록 누가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도 모호해진다. <창진이 마음>의 인물들은 그렇게 자생한다. 싸울수록 모두가 피폐해진다. 그럼에도 영화가 마지막 시선을 창진이의 표정에 두었다는 데에서 영화에 대한 명확한 운을 다시 뗄 수 있지 않을까. 이 싸움의 끝은 없지만, 가장 어리고 그 미래를 알 수 없는 어린이의, 알 듯 말 듯한 표정에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 영화의 균형감각을 느낄 수 있다. 물들은 서로를 당기고 미느라 여념이 없어 그 누구도 낮은 곳으로 임하려 들지 않지만 카메라만은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낮추어보겠다는 순간의 의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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