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부산국제영화제
국제 영화제는 처음이었다. 부산이라는 도시도 처음이었다. 초행길 하루가 다 가는 사이 두 편의 영화를 보았고 낯선 풍경 속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기대 이상이었다. 새롭게 보고 들음으로 인해 조금 더 열린 시지각이 영화를 좀 더 치밀하고 내밀하게 사유했었기를 바라본다. 아직 여독이 가시지 않은 채로 뒤늦은 폐막식 날의 상영작들을 타자로 옮겨적어가는 일은 다시금 그 넓은 도시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위해 북적였던 인파를 상기시킨다. 들뜨고 설레는 일이자 경험이었다.
2019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2 수상
롬 / 짠 탱 휘 / 79min
<롬>의 세계는 기울어져있다. 이 삐딱한 지평선을 가리키는 건 실제 러닝타임 대부분을 지배하는 사각앵글의 시선일 수도, 주인공 롬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 틈에서 고군분투한다는 영화의 내러티브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복권 숫자를 주고 그들의 당첨을 위해 뛰고 쫓겨야 하는 소년은 쉴새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직사각 프레임의 소실점에 쉽자리 붙잡히지 않으며, 일확천금의 기회와 운을 끊임없이 부여받는다는 점에서 디스토피아의 늪에도 빠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롬은 신이 내린 심부름꾼이다.
그런 롬을 앞에 세운 사각앵글의 시선이 스스로 세운 문법을 거스르는 때는 디스토피아를 탈출하는, 혹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역동하는 힘을 발산하는 두 장면들에서다. 동료이자 라이벌인 푹이 폭력을 당해 쓰러져있는 롬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때 기울어져있던 카메라가 원래의 지평선을 잠시 회복한다. 그러나 그도 잠시 결국 롬을 배신한 푹이 앞서 뛰어나가고 롬이 뒤를 좇는 엔딩은 정말 전자의 장면에서 다시 수평으로 기울어진 카메라가 정말 '돌아갈 곳', '도착할 곳'을 가리키고 있었는지 반문한다. 전혀 기울어지지 않은 관객석에 앉아 비뚤어진 응시에 멀미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전혀 기울어지지 않은 관객석에 앉아있음일지도 모른다며. 건너편 푹을 보는 롬은 어린시절 복권 숫자를 위해 가열차게 뛰어다니던 어린 아이의 얼굴로 퇴행한다. 앞으로 나아갈 길 없는 이 세계에서 뛰기 위해 다시 거꾸로 되돌아가는 프레임의 시간은 <롬>의 현실 그 자체이다.
2019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윤희에게 / 임대형 / 105min
첫사랑에게 이름을 불리는 일은 그 시절 상대와 마주했던 이전의 감정과 표정을 한꺼번에 불러일으키지 않겠는가. 모든 영화 속 로맨스, 혹은 모든 로맨스 영화가 당연하게 직설하곤 했던 이 문장에 <윤희에게>는 여성의 얼굴을 덧씌워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리는 일이 얼마나 당혹스러우며 그렇기에 기꺼운지에 대해 내밀하게 서술한다. 제목을 지배하는 '윤희'라는 이름 외에도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 사물, 지역, 관계들은 이름이 불리는 순간으로 인해 불리기 전과 불린 후의 다채로운 표정들을 갖게 된다. 구체적인 스포일러를 적을 수는 없겠으나 생각보다 많이 웃을 수 있는 영화이다. 그 웃음의 디테일들은 눈처럼 내리고 쌓이며 윤희라는 이름을 더욱이 선명하게 한다. 그 안에 다시는 혼동할 수 없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순간, 이름을 불린 이가 우릴 향해 돌아서는 짓는 얼굴은 참으로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