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긴장의 끈을 놓지 마세요

2019 대단한 단편영화제, 단편경쟁 1

by 흰지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극장 영화 시간표가 됐든, 카메라든, 전공서적이든, 풀리지 않는 리뷰의 빈 백지이든 간에. 지금 당신이 무엇으로 영화하는지 간에. 영화가 버겁고 힘이 들 때 그럼에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시선들이 여기에 있다. 2019년 9월 이번엔 홍대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대단한 단편영화제'가 열렸다.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중간중간 암전을 거듭하며 그들을 따라 극장에서 엇갈리는 관객들의 희비는 단편영화'제'를 가는 발걸음을 끊이지 않게 하는 이유들 중 하나일 것이다. 다채로운 작품들만큼이나 가벼운 한숨이며 큰 웃음까지 이 다양했던 숨소리들은 아직 영화 앞에서 우리가 느슨해질 수 없게 만든다. 영화에 대한 사랑을 끊이지 않게 만든다.


2019 대단한 단편영화제, 단편경쟁 1


너는 금성.jpg


너는 금성 / 이은혜 / 6min


'단편경쟁1' 섹션 중 유일한 애니메이션인 <너는 금성>은 선보다 색으로, 색으로 채워진 일면으로 금성의 모습을 담는다. 뜨거운 금성에서 괴로워하는 화자는 중얼거리듯 그러나 존재함이 분명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일대기를 이야기한다. 불에 타는 듯한 이의 발밑을 대변하는 듯 큰따옴표 안에 갇힌 흰 자막의 글자들마저 이글거리는데, 이 화면 속의 진동은 특정 방향을 향해 솟구친다. 불과 물이라는 속성은 뒤섞인다. 다시 태초로 돌아간 듯한 화자는 죽은 것인지 다시 태어난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작열하는 면과 면들이 가리키는 어떠한 삶에 대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안나.png


안나 / 김태진 / 19min


탭댄스를 다루는 기존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안나>의 카메라는 경쾌하게 굴러가는 안나의 발끝에서부터 시작한다. 안나가 보기에 엄마가 가진 가난함은 딸이 가진 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고 이에 미간을 찌푸린다. 엄마와 싸우고, 신발을 뺏긴 뒤 돈이 없어 알바를 하다, 혼자 노트북으로 춤 연습을 해보던 안나의 옆을 언제나 지키는 친구는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핸드폰 카메라를 손에 들고 안나를 부른다. 안나가 돌아선다. 언제나 꿈을 좇던 안나가 뒤돌아보게 되었을 때 안나가 가진, 안나만이 가진 지그재그의 동선들이 고개를 들어 우리를 부른다. <안나>는 꿈에 대한 영화를 꿈꾸고 싶은 영화다.


클라운.jpg


클라운 / 황재필, 김효준 / 19min31sec


영화 <클라운>은 오디션장 건물 앞에서 아빠에게 전화를 거는 한 아이, 성미로부터 시작한다. 곁에 아무도 없는 이 아이에게 오디션장에서 벌어지는 작은 소동들은 한 편의 연극과도 같다. 한 공간 안에서 경쟁자가 연기를 잘 했는지, 아님 우리 아이가 못했는지. 아이며 어른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오디션장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성미의 표정은 마침내 자신의 파트너인 아버지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생동감을 얻는다. 그것이 외로움을 감춘 어른스러움이든, 아직은 어린 나이의 칭얼거림이든 아이의 무표정함과 대조되는 특정한 연기로 강약조절을 꾀하고자 하는 영화의 시도가 독특하다.


털보.jpg


털보 / 강물결 / 14min


아이들은 예쁘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예쁠 나이라고 한다. 영화 <털보>는 누가 대체 이 아이들을 함부로 '예쁘다' 칭하는지, 그 '예쁘다'는 말이 사춘기 여성들을 어디까지 옭아맬 수 있는지에 대해 파고든다. 맑은 햇살 아래서 정겨운 투샷으로 담겨진 두 여자아이는 사실 사귀는 사이였고, 적어도 바르고 붙이고 과정을 감내해야만 소녀의 범주 안에 들 수 있는 학교 화장실 안은 꽤나 치열한 생존의 공간이다. 털이 많고, 여자를 좋아하면 찍힐 수도 있다는 이들의 문화는 성년들이 소녀의 키보다 크다는 이유로 함부로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을 수 없게 만든다. 소녀의 털은 클로즈업되고, 육체를 가진 얼굴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영화가 우리에게 묻는다. 누가 정말 예쁜지, 그리고 누가 예뻐야 하는지.


령희.png


령희 / 연제광 / 15min


영화 속 '령희'는 부재로서 그 존재를 증명하는 자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해서, 죽음 이후 그에 대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소음으로 증명할 수 밖에 없는 갸날픈 생명이다. 관객들은 영화의 첫 장면인 식사자리에서 그 옆모습을 겨우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때 식사를 함께했던 '홍매'는 공장소음의 중심에서 유일하게 령희를 기억하고 좇는 인물이 된다. 그리고 홍매의 얼굴이 최후에 마주하는 또다른 얼굴들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이제까지 들려오던 공장의 쇳소리와 새벽녘 시골의 풍경과는 또 다른 잡음을 자아낸다. 알아듣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불빛 앞에 정면으로 드러난 홍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가.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음과 그 안의 타자들을 보며 이들의 소리는 곧 우리가 딛고 선 경계의 진동으로 다가온다.


아쿠아마린.jpg


아쿠아마린 / 유종석 / 16min45sec


단편 영화에는 두 가지 여운이 있다. 하나는 처음과 끝이 완결한 그 짧은 시간이 풍기는 강력한 공기때문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가 끝이 났음에도 대체 이 이야기가 어디로 달할 것인가에 대한 끈질긴 궁금증일 것이다. 유종석 감독의 <아쿠아마린>은 후자에 가깝다. 사기전과로 도피 중인 유환을 만나러 영이 좁은 모텔 방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어떤 물건을 발견하고 그 방을 나가야만 했을 때. 방 안에 갇힌 듯한 두 남녀를 내려다보는 시선과 초조하고도 심리를 다 드러내려 하지 않는 얼굴의 클로즈업이 교차하며 관계와 전사를 좁혀나간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의 행방은 좀처럼 좁혀들지 않는다. 염색약 덕택에 새파란 머리가 된 애인을 보는 여성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는가. 이토록 뒷이야기가 궁금한 단편은 좀처럼 영화의 문을 닫지 못하고 출구에서 서성이게 만든다.

매거진의 이전글세상에 일소를 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