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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Jan 30. 2020

때로는 낯선 방문으로

영화 <손님>, <진주머리방>, <캐치볼>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손님 / 윤가은/ 19 min 1 sec


  영화가 시작할 때 씩씩거리며 언덕을 오르는 자경(정연주)은 영화가 끝날 무렵 힘없이 그 비탈길을 내려간다. 오르내리는 화면이 이야기를 은유하듯이, 어느 날 들이닥친 소녀의 방문은 집에 있던 두 남매와 위태로운 감정들을 안게 된다. 소녀의 아버지는 남매의 어머니와 불륜을 했다. 사실은 어른들의 일이다. 과연 그런가. 영화 <손님>은 자경의 시선으로 엄마 없이 보내는 두 남매의 하루를 관찰하며 아이들의 마음은 과연 누가 돌볼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완성을 가한다. 우리가 이제껏 그려온 아이들의 순진한 얼굴들은 사실 단순한 무관심들이었다며, 남매 기림(송예림)과 나루(이지우)는 저들만의 감정으로 마음껏 울고 화낸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자경에게 아이들이 묻는다. "그럼 언니는 누구야?"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돌아서는 자경은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는 어른과, 모든 걸 알 의무가 없는 아이의 사이를 걷는다.



진주머리방 / 강유가람 / 6 min 14 sec


  영화 <진주머리방>은 영화가 진행되는 6분 동안 주인 영미(엄옥란)와 그의 미용실을 보여준다. 관객인 우리가 영화를 통해 이 미용실 안을 들여다보는 것 같지만, 강유가람이 찍는 카메라 안에서 미용실은 되려 방문객과 불청객을 구별해낸다. 난데없는 인테리어 시공사의 방문. 영화는 미용실 안을 휘젓는 남자들의 몸짓을 가까이 따라가기보다 영미의 표정을 중심에 둠으로써 불청객이 주인의 주변을 배회하게끔 만든다. 공간의 주인은 영미이고 그러므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주인도 영미다. 그 짐짓 불쾌함을 숨기지 못하고 선 여자의 표정이 카메라에 앞서자 일부 가려진 남자들의 동선과 목적도 무화된다. 목소리를 앞세우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영미의 진주머리방은 밀어도 밀려나지 않은  터의 언어로, 소리 내지 않되 들려오는 존재감을 가진다.



캐치볼 / 유은정 / 30 min 6 sec


  유은정의 단편 <캐치볼>과 장편 <밤의 문이 열린다>는 그가 쓰는 어둠의 질량, 느리면서도 묵직한 긴장감을 빌어 감독 특유의 색을 가지고 있다. 살인사건을 중심에 두었으나 긴박한 뜀박질보다는 차분한 문답으로 이어나가는 주인공 민영(원진아)의 추리는 저마다의 사연으로 이야기 진전의 발목을 잡는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으나 모두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엇갈린 관계도에서 민영은 그 자리에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책감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범인을 찾아낸 민영이 그의 오빠 앞에 선다. 유은정의 세계 안에서 '삶이 뒤통수를 친다'는 문구를 '알고 있던 이의 몰랐던 표정과 마주한다'라는 문장으로 치환하는 순간이다. 주인공이 방문하는 혹은 동행하는 자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빛은 결국 어둠을 감고 있고, 그것은 결국 인물들이 스스로 선택한 위치의 몫이다. 그래서 이 느릿한 스릴러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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