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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Jul 01. 2020

과몰입이 특기자 전형이었음 내가 울대를 갔지

메일링 서비스 '매번 과몰입 중입니다' 씨즌 1 구독 전 미리보기 업로드



  지난 6월 23일 부로 메일링 서비스 '매번 과몰입 중입니다' 씨즌 1 구독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그 전에 글쓴이의 덕질을 주제 삼아 케이팝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씨즌 1, 7월 3일 금요일에 배송될 프리뷰 격인 0화를 일부 공개하고자 합니다. 본격적인 연재를 시작하기 전 글쓴이의 자기소개이자, 주제에 대한 포문을 담아보았는데 부디 구독신청에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신청폼 링크 : https://forms.gle/TxS4Yx2CTgcnc6P7A )




  메일링 서비스를 처음 홍보할 때 똑똑히 써두었다. 원고지 15장-20장 분량의 글이 매주 금요일 오후 10시에 전송될 거라고. 본격적인 원고를 전송하기 전에 예비 구독자들을 위한 미리보기가 필요할 것 같았다. 새 글을 써놓자. 원고지의 분량을 따지고자 한글 프로그램을 켰는데, 모니터 화면에 떠있는 빈 종이가 사뭇 낯설게 느껴졌다. 어이가 없었다. 사실 작년 한 해 동안 매달린 일을 하나만 꼽자면 글을 쓰는 일이었는데. 쓰는 걸 얼마나 쉬었다고 쓰는 감각도, 쓰는 걸 읽어보며 제 스스로를 짚는 방향성도 모두 사라진 것만 같았다.  



  글을 쓰셨다고요? 무엇을 전공했길래? 제법 자주 듣는 질문이다. 저는 영화이론을 전공했어요. ‘영화’라는 단어에서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라거나, 짐짓 놀란 척을 한다. 그럼 그 앞에서 나는 ‘아 이론과라 영화는 직접 만들 줄은 모르고요’라 변명을 붙인다. 웃기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도 그 얘긴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영화이론을 전공하면 학교에서 대체 무얼 배우느냐, 거기까지 누군가 물어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는 분명 레포트며 소논문 따위를 쓰다 N년이 가버렸다고 할 수밖에 없을텐데. 이 인간은 학교를 나간 순간 글을 놓아버렸지 뭔가. 졸업 논문을 여태 쓰지 못해 학교 이름 뒤엔 졸업이 아니고 수료가 붙는다. 그래서 학생도 아니지만 취직하지 아니 하였으니 사회인이라 할 수도 없다. 



  그 애매한 경계에서 다시 타자기 위에 손을 올렸다. 시간을 이대로 죽일 수는 없어. 아직까지 할 수 있는 건 글쓰기 뿐이야. 이왕지사 등단도 하지 못해 내 글을 실을 지면도 없으니 직접 돈을 거두어 메일로 글을 전송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중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거야. 그럼 그게 뭘까.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내 인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자면 그렇다. “그저 연예인만을 좋아하던 인생”



  9살 때 기억부터 거슬러 올라가, 내가 태어나 최초로 좋아하던 연예인은 배우 김하늘이었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TV 명절특선으로 우연히 본 뒤 자꾸 그 눈동자가 눈앞에 아른거려 배우의 얼굴을 프린트해다 벽에 붙인 것이 나의 ‘빠순이 라이프’의 첫 시초였다. 참 신기하게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했다는 것에 천부적인 덕질의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닐까 혼자 자랑스러워하곤 했다. 이런 유년시절의 잊혀졌던 기억을 메일링 서비스로 돈을 벌어보기 위해 지면 한 켠에 기꺼이 내놓는 지금의 꼴이라니. 



  그 이후는 뭐 더 쟁쟁했다. 나는 드라마와 영화를 참 좋아했다. 중학교 때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의 준말. 2000년대 중반의 유행어.)를 도모하고자 친한 친구들 한정으로 그 주 에피소드를 요약한 광고문자를 전체쪽지로 돌렸다. 본방송과 재방송 시간에 온 가족을 조용히 시킨 뒤 폰으로 좋아하는 장면마다 동영상을 찍어 그 클립의 대사를 적어두기도 했다. 아 이건 생각해보니 지금의 동영상 플랫폼에서 3-4분짜리 드라마 클립과도 좀 비슷하네. 



  지금 생각해보니 집착이 이루 말할 데가 없다. 그렇다고 애정결핍은 아니었다. 그냥 내가 '그런 걸' 좋아서 했다. 사실 '그런 걸'에 덕질이라는 이름이 명명지어진지도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세상에 제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는 건 그 시절에 깨우쳤다. 그 문장 안에 긍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으니까,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만큼만 보고자 하는 시야는 또 깊은만큼 좁기도 했다. 그때 당시의 맹목은 배우나, 그 드라마나, 그 아이돌밖에 안 보이게 했으니까. 아무튼 나는 유년시절의 재미를 내내 그런 곳에서 찾았다.



  쟤 저러다 말겠지, 왜냐하면 사춘기니까. 우리 부모님은 자식의 인생을 두고 왜 그런 예상을 함부로 단정지었던 것일까? 엄마 미안. 어른이 되고 나서도 좋아하는 행위 자체는 멈추지 않았다. 좋아하는 게 좀 바뀌긴 했지. 배우와 드라마는 아이돌과 케이팝으로 판을 옮겼다. 좋아하는 영화도 꽤 생겼다. TV 속에 나오던 연예인 한 명에게 관심을 기울였던 10살도 채 되지 않은 초등학생은 무럭무럭 자라 '잡덕'이 되었다. 



  이런 거 사실 남들도 한 번씩 거쳐보는 사랑 아닐까? 연애라는 게 그렇듯 덕질도 똑같이. 맞는 말이다. 근데 꼭 맞는 말이었던 것도 아니다. 지인 중 하나가 '자긴 아무리 노력해봐도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평균 이상의 애정을 쏟지 못하겠다' 내놓은 증언들은 나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덕질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그러니까 이런 과몰입도 선택받은 자만이 할 수 있구나. 사실 결론이 이렇게 빠지면 안 되는데. 그럼 나는 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애정을 쏟아부으면서, 믿었던 것에 배신을 당하기도, 아 세상은 냉정하고 냉랭하구나 다시 한 번 싸늘함을 느껴가면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었던 걸까? 애초에 무엇을 바라지 않고 쏟아붓는 애정이란 없다. 내가 마음을 주는 만큼 오가는 리액션이 있었기에 행위도 지속시켜나갈 수 있는 것이지. 앞서 말했던 전공이나 학력, 개인신상과 관련된 정보들은 주구장창 물어봤으면서 아직 이런 개인사에 대한 질문은 받지를 못했다. 그럼 스스로 물어보기나 해야지. 여긴 내가 차린 좌판이자 내가 벌인 멍석이니까.

  


  하여간 계속 팬질해오면서 느낀 가장 큰 한 가지를 꼽아보라면 그거다. 그 왜 비틀즈를 다룬 흑백영화들, 혹은 다큐멘터리 자료화면이 있잖은가. 그럼 거기서 꼭 따라붙는 컷들이 있다. 노래하는 가수 다음으로 무지막지하게 소리지르는 여성팬의 얼굴이 익스트림 클로즈업 된 후 그가 쓰러져 실려가는 것까지 잡는 이 플로우. 이게 팬 이미지를 다루는 하나의 큰 문법으로 굳어지지 않았나 싶은 거지, 내말은. 그러니까 가수가 앞에서 노래를 하든 멘트를 치든 간에 사랑하는 대상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여자의 히스테리 정도로 덕질을 치부하는 게 이제까지 너무 자연스러웠던 건 아닌가 얘기하고 싶은 거다. 가수가 노래를 하면 '듣다가도' 좋아하는 파트나 킬링 포인트에선 한 번 끔뻑 '죽어주고', 웃긴 멘트에 '웃고' 감동적인 멘트에 '감동을 받는' 일련의 기승전결이 있는데. 무작정 소리만 지르는 거 아닌데. 덕질을 하다보면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 특히나 젊은 여성에 따라붙는 수식어를 신경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이 일련의 흐름에 대해서 이제는 조금이나마 입터고 얘기해보고 싶은 거다. 



  '나 덕질해' 말 뒤에 따라붙는 '그럼 연애는 안 해?' 사족부터 시작해서 (1화. 애정이 꼭 연애로 불지펴지지는 않는 시대), '어차피 TV 속 쟤는 너 모르잖아'가 들려와도 모르든가 말든가 상관없이 쏟아붓는 애정만큼 끊지를 못하는 권태기와 이별 후유증까지 (3화. 애정은 타오르고 식고 또 타오르고), 대상을 사랑하는 덕질의 자기고백도 좀 해보고 싶고. 씨즌 1에서 아이돌을 건드리는 만큼 지나칠 수 없는 '케이팝'이라는 산업 앞에서 현재 대세라 부를 수 있는 여성 솔로들의 활동(5화. 무대 위의 왕들이 있다), 무대의상이나 컨셉활동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의견들을 좀 허심탄회하게 풀어볼까 싶다. 허심탄회래봤자 개인적인 개인사나 쫌쫌따리 1-2년치를 엮어 어떻게든 있어보이게 만든 것이겠지만. 


  그러니까 나는 그저 흑백영상에서 히스테리 걸리듯 소리지르는 그 여성의 목청으로부터 좀 벗어나고 싶다. 그렇게 소리지다가 콘서트에서 쓰러진 여성은 집에 돌아와 곁에 이런 사람들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더라는 그 장면의 비하인드를 구성해보고 싶다. 덕질을 N년동안 파고 또 파서 너는 뭘 얻었는데, 누군가 물어본다면 사람들이 별거 아니라 지나치는 그 장면의 뒷면을 자신만만하게 열어재낄 수 있게끔 투자한 나의 시간들이라, 이 메일을 통해서 얘기하고 싶은 건 그런 답변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라는 말을 남기고 싶은 거다, 나는. 



  입금폼은 글 상단 맨 위에 올려두었으며 7월 3일 금요일부터 진행되는 연재의 구독은 7월 2일 23시 59분까지 받는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많관부.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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