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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Dec 25. 2022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2016) 리뷰

꼭 봐야 하는 드라마를 봤다 1

***네이버 포스트 '오즈앤엔즈'에 기고한 글을 재업로드합니다.

***드라마의 줄거리 및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꼭 봐야 한다던 드라마를 봤다.



그 이름도 찬란한 OTT 서비스에 한 달에 한 번은 돈을 내다 바치면서도 추천란에 있는 드라마만 고르다 하루가 가버리는 게 정기 결제인 의 삶이랬는데. 그런 쳇바퀴가 지루해질 때즈음, 주변에서 한 번쯤은 봤다 하고 한 번은 보라 하는 드라마를 보겠다 마음 먹었다. 나만 보지 못한 것이 좀 그렇고 그랬기 때문이다.  




흰지는 한 번 꽂힌 드라마가 생기면 그것만 보고 또 보는 스타일이다. 좀처럼 새 드라마에 손을 대기엔 왠지 마음의 부담이 적잖이 들었다. 그렇지만 2022년이 되었고 지금은 새해잖아. 그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나의 비효율적인 구독 인생에 효율을 더하기로 했다. 돈 낸 만큼 많이 보고 많이 느껴보리라. 그리고 본 김에 좀 쓰리라. 내 마음 가는 인물 따라, 좋아했던 스토리 따라, 철처한 개인 감상 위주의 뒷북 리뷰를 아무 열심히 써보기로 했다. 




그런 이유에서 다소 충동적으로 고른 2022년의 첫 드라마는, 2016년도에 방영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였다.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 있다고 외치는

황혼 청춘들의 인생 찬가를 그린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이하 '디마프')는 사실 보면서도 리뷰 쓸 생각을 못했다. 그냥 취직 준비를 다시 시도하는 시간을 죽여보려고, 이왕 죽이는 김에 내 마음에 터벅 터벅 꽂히는 대사를 잘근잘근 씹고 싶어서. 그런 이유로 고르다 고른 드라마기도 했다. 16부작 중 13부를 보고 있을 때즈음, 이 드라마에 대한 리뷰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이토록 서늘한 드라마.
노희경의 말마따나
작가란 얼마나 잔인한 직업이던가 




유쾌하다고 했잖아! 가슴 따뜻해지는 드라마라고 했잖아! 언젠가 이 드라마를 추천하던 모든 이들에게 되묻고 싶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을 줄이야. 유쾌하고 따뜻한 드라마 구석구석에 서늘함은 나는 결코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인자하기만 하던 '김혜자' 할머니에게 치매가 도졌을 때, 젊은 시절 자식을 잃은 기억이 트라우마로 돌아와 돌연 분노로 물든 표정으로 오랜 친구에게 역정을 내는 장면. 의리로 함께 늙어가리라 생각했던 노부부의 모습을 찢고 나와 기어이 출가한 '나문희' 할머니가 제 집을 구하고 저만의 저녁 시간을 누리는 장면. 우리 꼭 마음을 맞추며 같이 살아보자 했던 친구의 화장실 시중을 새벽까지 들어줘야 했던 '윤여정' 할머니의 장면도.







결코 따뜻하지만은 않은 인생을 그린 드라마였다. 나이 듦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고 요즘 드라마에서 흔히들 일컫는 (드라마 방영 당시에는 아직 일반화되지 않은 명칭이기도 한) '민폐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꽤 됐다. 귀찮게시리 왜 저렇게까지 살아야 할까 궁금하게 하면서도, 결국 끝에선 그것이 다 인생이라던 드라마. 그래서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도 자꾸 그 궁금한 얼굴들이 눈에 아른거리다 못해 인이 박히는, 그래서 이 드라마가 다수의 인생 드라마가 되었구나 싶었다. 




내가 제일 응원했던 인물
72세 세계일주 꿈나무, 문정아




문정아 (나문희 役)

세계 일주를 꿈꾸는 주부이자 석균 (신구 役)의 부인.




<디마프>가 그토록 삶을 외치는 드라마였던 만큼 죽어있는 인물 하나 없이 서로 쟁쟁했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이끈 이는 바로 배우 나문희가 연기한 인물 문정아였다. 







정아는 어머니를 길에서 떠나보내고 나서 일평생 자신의 남편이 지켜주리라 약속한 세계 여행도 파탄이 나자 집을 나가버린다. 정아는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서지 않는다. 정아는 계획했고, 실천에 옮겼다. 애먼 원망을 하며 울음을 삼키기 보다 여행은 없다 통보가 떨어진 직후 자신만을 위해 움직인다. 나는 이 실천이 너무도 좋았다. 







호영 / 엄마, 엄마도 여자지?

엄마도 남은 인생 여자로, 살고 싶지, 그지?


정아 / (일하다 버럭) 앙, 내가 무슨 여자야?


(답답하고 힘든, 주변 걸레질 하며)


물혹으로 자궁 떼낸 지가 언젠데 내가 여자냐?

그리고 이 나이 들어, 내가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때?

지랄들 하고 있어, 아주들 ... (하고, 설거지 하는)



각본집<디어 마이 프렌즈 1> 중 12부, p149



정아는 그 실천을 스스로 복수라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전혀 통쾌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석균은 변한다. 집 나간 제 아내에게 윽박을 지르는 것도 잠시 과거에 묻어놓은 사건 (둘 사이의 자식이 석균의 무관심으로 인해 유산된 사건)을 들춰본 후 정아의 출가를 이해한다.







착한 남편 10계명을 외우며 서투르게나마 된장국에 된장을 풀며 요리를 배우기도 한다. 사실 판타지가 아닐 수가 없다. 70 평생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꾸려 발버둥 치다니 어디 쉬운 일인가. 드라마는 판타지고 판타지를 위해 쓰여지는 현실이니까. 냉정하디 냉정한 현실을 그리면서도 판타지 한구석쯤은 마련해놓는 드라마 <디마프>는 결국 꿈도 삶의 일부분이라는 장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드라마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배우 고현정의 나레이션




박완 / (나레이션) 누군가 그랬다.

우리는 살면서 세상에 잘한 일보단, 잘못한 일이 훨씬 더 많다고.

그러니, 우리의 삶은 언제나 남는 장사이며, 넘치는 축복이라고.

그러니, 지나고 후회 말고, 살아있는 이 순간을 감사하라고.



각본집<디어 마이 프렌즈 1> 중






드라마를 거의 다 볼 때즈음 리뷰를 적기로 결심했고, 도서관에서 대본집을 빌려왔다. 나레이션을 받아적기 위함이었다. 고현정이 분한 박완이라는 캐릭터의 나레이션은 드라마 매 에피소드의 포문을 열기도 하고 노인 캐릭터들의 인생사에 첨언을 얹기도 한다.



때때로 박완과의 대화는 한 사람의 감정을 쏟아붓는 독백만큼이나 큰 힘을 가져서, 과거에 대한 회한을 털어놓는 석균을 시청자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포문으로도 작용한다. 박완의 입을 빌려 드라마의 방향을 터놓고 박완의 귀로 하여금 인물들의 길을 놓아주는 셈이다. 극의 중심을 이끄는 인물이면서도 정작 제 인생에서 균형감각을 찾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는 이 인물은 배우 고현정을 빌어 한층 더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인물로 자리 잡아갔다. 






그래서 가장 정이 갔던 '역할'이 배우 나문희가 분한 정아였다면, 가장 정이 갔던 '배우'는 바람 앞 등잔과도 같은 박완을 분명하게 그린 배우 고현정이었다. 희노애락을 표현하다 못해 삶의 가장 숨기고 싶은 본연의 모습들을 표현하는 거장 배우들 사이에서 고현정의 존재는 장면에서의 등장만으로도 나에게 숨통을 틔워줬다.






그래 나도 이렇듯 또
치열하게 살아보자며




왜 갑자기 아무도 시키지 않은 옛(?) 드라마를 쓰게 되었냐 하면, 사실 나는 무척 심심했던 것도 같다. 기왕 보는 김에 대사가 많은 드라마를 보고 싶었고 눈으로 흘리기 보다는 귀로 자꾸 곱씹어보고 싶었다. 마냥 즐기기 보다는 삶의 서늘한 부분을 질긴 오징어마냥 오래도록 머금어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오랜 기간동안 취직이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을 사실은 저 늙은 배우들의 연기로 위로 받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사실 마냥 따뜻한 위로만 있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보다 삶의 서늘한 이면을 드라마가 들춰보일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란 나는 정신을 차리곤 했다. 그래, 결국은 또 치열하게 살아봐야지 고개를 들게 해준 드라마가 나에겐 <디어 마이 프렌즈>였다. 다들 보라던 드라마를 저 혼자 보지 않았다가 지금에서야 치는 요란한 뒷북도 누군가의 귀에 때를 일깨우는 알람소리로 다가갈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다 생각하며 이 드라마를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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