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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Aug 03. 2023

만약이라는 희망 혹은 절망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 (2023)

***본 리뷰는 드라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타임머신이 눈앞에 놓인다면, 당신은 과거로 갈 것인가? 아니면 미래로 갈 것인가? 꼭 심리테스트의 한 질문 같기도 한 이 문장은 사실 '타임머신이라는 허황된 꿈이 사실 실제라면' 이란 전제를 아주 당연하게 내놓는다.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 1화 첫장면을 넘기다 보면 우리의 주인공 '해준'(김동욱 역)은 바로 눈앞에 나타난 타임머신을 의심하고 거부하려 들기보다 무턱대고 가고 싶은 연도를 눌러 직접 경험해보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이후 그와 그의 행적을 지켜본 우리는 그 타임머신의 존재를 믿어버린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경험해본 것이 낫다고나 할까. 드라마는 첫번에 몸소 우리에게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즐기는 법을 몸소 보여준다. 해준의 타임슬립으로.  





타임머신 자동차를 가진 해준과 그런 해준과 우연히 충돌하여 함께 시간여행을 함께하게 된 '윤영'(진기주 역)은 각자의 이유로 1987년 우정리의 과거에 머물게 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현재로 돌아갈 방법이 없게 된 것!) 해준은 1년 후 살인을 당하게 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윤영은 이미 살해당한 엄마의 억울함을 씻어주기 위해 서로 같지만 다른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해준은 해준대로, 윤영은 윤영대로의 일을 한다. 각자 과거에 돌이키고자 하는 일들이 미래에 어떤 포물선을 그려 서로 만나게 될 지 알지 못한 채. 





‘운명’이란 무엇일까.


지나고 보니, 결국은 그렇게 될 일이었더라, 곱씹어 보는 것.
시간 앞에 무력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자 낭만, 혹은 체념.
사소한 일상의 순간에 의미를 부여해보려는 예쁜 손짓.
혹은, 누군가의 피와 땀과 눈물이 새겨진 의지의 총합...
이 드라마는, 운명이란 단어에 담긴 그 무수한 의미들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짠하게, 때로는 우습다가 때로는 무섭게 얽히는 다양한 인간들의 얼굴을 그려보고자 한다.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기획의도 중)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기획의도를 읽어본다. 이 드라마는 어쩌번 '두번째 기회'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두번째 기회란 여기서, 근미래에 살해당할 해준의 두번째로 주어질 생이자, 윤영에겐 살해당할 엄마와의 재회이다. 이 기회란 현실의 그 누구에게도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드라마의 전제는 판타지다. 그보다 더 환상적인 건, 사실 우리는 기회가 기회로 찾아왔을 때 "왔구나" 라는 타이밍을 제 감각으로 느끼기 쉽지 않다. '기회'라는 것은 사실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기회였을을 깨닫고 만다. 비로소 떠나간 후에야 잡았어야 한다고 푸념으로 남는 후회에 가깝다. 해준과 윤영은 그 후회를 공유하여 비로소 동지이자 연인이 된다. 





과거로 돌아간 그들이 바뀐 미래에서 몇몇 기회를 '다시 잡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 내 뇌리에 박힌 이미지는, 과거를 바꾼 윤영이 미래로 돌아가 다시 맞는 제 가족의 엔딩이다. 엄마인 순애는 작가가 되었고, 아빠인 희섭은 고문 트라우마를 극복하여 이전의 즐거움을 되찾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윤영은 (표절 작가가 아닌) 엄마를 도와 즐겁게 글을 쓰고, 이 세 가족이 맞은 엔딩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손꼽히는 해피엔딩이 될 것이다. 윤영이 엄마인 순애에게 준 기회이자 윤영 자신의 재탄생이기도 한 것이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2화에서 윤영과 순애가 교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떠오른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문장을 인용한 대사였다. 



"그녀에게 100년이란 시간을 준다면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를 준다면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하게 하고

지금 쓴 것의 절반만 덜어낸다면

더 좋은 책을 쓸 거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백년의 시간을 다시 준다면 그녀는

시인이 될 거라고요"





다시 백년의 시간을 돌려받은 순애는 정말 자기만의 방과 걱정거리 없는 집을 가진 작가가 되었다. 첫번째 삶에서 미숙은 순애의 소설을 도둑질하여 큰 명성을 얻는다. 그리고 그 소설을 제 주인에게로 돌려주자, 두번째 삶에서 미숙은 이름 모를 중년의 여인으로 늙어 서점 서가에 있는 책을 흘금이는 여인으로 늙어간다. 기회는 이름을 쥐어주기도, 반대로 앗아가기도 한다. 그 두번째 기회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상상이고, 상상력으로 하여금 이 드라마는 우리를 행복의 어딘가에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아직 더 바로잡히지 않은 과거를 위해 다시 모험을 떠나는 해준과 윤영의 뒷모습에서 나는 엔딩까지. 두번째 기회란, 그렇게 미래를 뒷백삼아 거침없이 뛰어드는 자의 것이라,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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