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본 드라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지 Jan 10. 2019

자식 이기는 부모의 이야기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E01~E04



"빵빵. 클랙슨 소리에 나는 얼른 길을 비켜섰다. 드디어 옆집에 새로운 가족들이 이사를 오는 모양이다. 저 집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간 것을 저 사람들은 알까?" 



드라마 속 등장하는 창작 소설의 첫 구절이 두고 두고 회자 된다. 이 정도의 화제 몰이를 하고 있는 드라마의 등장은 저마다의 드라마 시청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공유, 김고은 주연의 <도깨비> 이후 2년만이 아닌가 싶다. 너도 나도 <스카이캐슬>에 대한 얘기만 하고 있다는 말이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에겐 당장의 푸념일지 몰라도 '그대에게 (이 글을 쓰고 있는 1월 10일을 기준으로) 1회부터 14회까지의 정주행 기회가 주어진 것이 행운'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신선도와 흡입력이 상당히 강한 작품의 등장은 실로 반가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칭찬이 따르는 만큼 아쉬움도 있고 지적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이면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열띤 토론을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세공력 그 자체는 영화나 드라마 등 매체를 막론한 소중한 존재이며, 드라마를 보다 보니 평소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쓰는 이 손으로 드라마에 대해 좀 더 자유로운 비평을 놀리는 것도 재밌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제 마음 가는대로 쓴 글이니 만큼 장황한 길이에 아무도 읽지 않을 가능성이 큰 '썰'에 가깝겠지만 아무도 읽지 않더라도 행복한 개인의 욕망에 기인한 페이지인 만큼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스카이 캐슬> 이전에도 상류층 사회에 대해 풍자나 리얼을 꾀하고자 한 드라마는 많았다. 그 중 자식의 입신양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족, 집안, 가문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부모 이기는 자식'의 이야기인 <스카이 캐슬>과는 또 다르게 '자식 이기는 부모'의 이야기를 다룬 SBS의 2015년 화제작 <풍문으로 들었소>에 대한 언급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스카이 캐슬>에 대한 여론이 드센 이때에 홀로 몇 년 전 드라마를 정주행하며 느낀 소행을 나름의 분기로 나누어 여기에 남기고자 한다. 



Episode 1 ~ Episode 4 : 자식 이기는 부모의 이야기





2대째 법조인 집안에서 장손이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다음날 그 집 안방마님이 용한 무당을 불러 부적을 썼다고 한다. 마지막 사법고시를 치르는 2017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따로이 로스쿨까지 갈 필요 없이 전담 선생을 붙여 시험을 준비하게 할 참에 큰 일을 앞두었다는 것이다. 도련님 큰 성취 해주십소사, 전도양양 광명이 쏟아지게 해주십소사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집안의 북향이 드는 드센 서까래에 힘을 쓰며 아들의 책상 밑에 부적을 붙이는 등 공을 들인다. 그날 밤 아들은 만삭의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왔고, 긴장 탓에 말을 더듬는 그 대신 그의 여자친구가 저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가던 중에 진통을 시작했더랬다. 실로 가지가지하는 젊은이들이다. 집안의 체통때문에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안방 침실 위에서 밤새 소리를 지르던 그 어린 부부는 그날로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리고 그들이 집안에 찾아온 첫번째 광명이었다.



다소 황당한 전개를 가진 이 드라마를 밤새 낄낄대면서 볼 수 있는 동력은 왜인지 자신의 사연에 비장하게 몰입하지 않는 캐릭터들과 그들의 무심한 대사들을 애써 눈물겨워하며 보지 않는 카메라 시선에 있다. 금쪽같은 딸아이 서봄(고아성)이 만삭이었을 때 이를 둘러싼 엄마와 아빠, 삼촌과 언니가 하나같은 슬픔으로 연민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리액션과 심정으로 튀어오르는 가족으로서 자아내는 모습이 드라마의 첫번째로 등장하는 시퀀스임을 생각하면 이 무심함은 사실 입체적인 캐릭터 하나하나의 심정에 영리하게 집중하고 있는 계산법을 전제로 했기에 가능한 일이라 볼 수 있겠다. 





때문에 이들은 자연스럽다. 수능이 끝났고 결국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한인상(이준)은 '한송' 법인회사의 자제로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음에도, 수험 기간동안 서로 연락을 끊고 지내기로한 자신의 동갑내기 여자친구 서봄을 잊지 못해 찾아다닌다. 마침내 집까지 찾아가며 사실 그녀가 만삭이었음을 안 그에게 가족들은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읊기보다, 같은 대사이나 서로 다른 뉘앙스의 탄식으로 울리는 봄이 삼촌의 "너냐"나, 봄이 아빠의 "너냐" 식의 대사처럼 이제까지 우리가 본 막장드라마의 흔한 서사 속에 어딘가 놓치고 있던 캐릭터들의 입체적인 면모를 드러나게끔 한다. 이 장면에서 헤어나오는 웃음은 신선할 수밖에 없다. 





서봄의 집안이 이러한 북적거림에서 출발한다면 인상의 집, 한송 법인재단의 네 가족은 그들의 밥상머리 교육장면에서부터 출발한다. 아들의 대학 합격 소식을 아는 교수를 통해 이틀 전에나 미리 알고 있던 아버지 한정호(유준상)는 아들에게 가장 먼저 법조인의 태도를 전수하고자 한다. 


"가장 현대적이면서 가장 고전적인, 그랜드한 매너. 응? 법을 공부하다보면 그런 게 다 체화가 돼요. 몸에 베는 거지." 


근엄한 목소리지만 연신 밥을 쩝쩝대면서, 진정성, 내실 따위의 알 듯 말 듯한 추상적인 언어를 그들 계층의 실속과 내용인양 나열하는 모습은 이후 드러나는 그들의 속물적인 모습에 대한 복선과도 같다. '풍자'라는 전제 하에서 그들의 행동을 마냥 귀여워할 수도 없고, 자가변명이 될 수 있는 인간미로 그들을 애써 포장하지도 않는다. 서봄의 집안 사람들과 다르게 자신의 사연과 역사에 몰입하고 있는 강자들을 끝까지 우스꽝스럽게 조명할 수 있는 카메라와 대사는 그렇기에 냉정하다. 강자를 쉽게 '모에화'시키지 않는다는 지점은 사회에 대한 비판, 그들의 풍자를 재현하고자 하는 여타의 이야기가 주의하고 조심해야하는 부분 중 하나인 만큼 이러한 재현은 중요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강자의 이야기와 더불어 드라마 1회부터 결국 서봄과 한인상이 혼인신고를 하고야 마는 4회 마지막까지에서 한송가(家)의 집, 집안 구조부터가 여실히 드러난다. 드라마 초반 한정호의 아내 최윤희(유호정)가 들인 무당의 대사, "집안의 드센 서까래"라는 언급처럼 집안사와 그 속속들을 알기 전에 드라마는 그 집안의 내력만큼이나 오랜 이야기를 가진 집의 뼈대와 구조부터 면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기둥과 벽의 틈에서 얼굴을 삐죽 보이는 가정부, 집사, 비서, 유모 등의 캐릭터는 이제까지의 드라마가 소비해온 조연이라는 포지션을 한 층 더 입체적인 위치로 부상시킨다.





이 집안에 비밀이란 것이 가능하긴 할까? 서봄이 집에 들어온 이후 공동의 공간이기도 한 거실에서 어떤 사건 하나가 터질 때마다 곳곳에서 내미는 그 '집안 사람들'의 얼굴들은 드라마의 조연으로서 시청자의 리액션을 대신 담당해주거나 이제까지의 상황을 대사로서 설명해주는 수동적 장치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으리으리한 가옥 속에 숨겨져있는 이면 그 자체로서 작동하기까지 한다. 3화에서 인상의 사법고시를 코치해줄 과외 선생 경태(허정도)가 한정호네 박집사(김학선)을 가리켜 "인근이 다 고수들이네" 읊조리는 말은 연륜있는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만큼이나 집안 속속들이 들어찬 그들 캐릭터의 무시할 수 없는 내공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아기가 태어난 후 그들 부부를 보호하되 한인상을 사법고시 코치 선생에게 유배보내고, 유모를 들였다는 핑계로 아기와 서봄을 분리시키는 한준상과 최윤희. 이들의 생태계를 가장 먼저 파악하는 인물은 바로 서봄이다.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 집안의 복잡한 구조를 나름 지도까지 그려가며 설명하는 인상의 얼굴을 보며 서봄이 묻는다. 



"어쩌다 이렇게 큰 집에서 살게 됐어?"

"그냥 태어나보니까."



다정하지만 무심하고, 무작정 용기내어 보지만 아직 어린 겁이 서려있는 인상의 표정과 달리, 봄의 눈동자는 언제나 그를 둘러싼 분위기와 이를 휘두르는 강자의 권력을 따라 바쁘게 굴러간다. 부모들이 아기와 자신을 '일부러' 분리시키고 있음을 간파하는 서봄은 무서울 것 없이 윤희 앞에서 아기 앞에 자기를 데려다달라는 의견을 피력하고 품위를 지키기 위해 애써 웃어보이는 윤희가 폭발해 소리를 지르고, 또 한 번 품위를 지키기 위해 비서에 의해 입막음 당하는 그 앞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들' 한인상이 아닌 딸같은 '며느리', 딸일 수 없는 '며느리' 서봄이 자식을 이겨버리는 부모 머리 꼭대기 위에 마침내 당도할 것을 예언하는 그 장면은 이 드라마 속 탁월한 셔레이드의 설정을 조명하는 동시에 그 캐릭터의 성격과 미래를 동시에 그려낸다. 





드라마는 이러한 캐릭터의 자립 나아가 이들 캐릭터 간의 책임과 사랑에 대한 관계론을 써내려가기도 한다. 마침내 만난 서봄과 한인상이 서로 부둥켜안고 아이처럼 울 지 언정 살기 위해 미성년자 미혼모들을 위한 국가의 제도를 얘기하고, 임신한 몸을 두고 성관계 당시 썼던 콘돔이 불량이었을까 회상하는 장면에선 "그 얘기 그만하자. 후회하는 것 같잖아. 우리가 좋아서 만들어놓고"라는 인상의 말에 "후회는 돼더라. 애기가 예쁘긴 하지만, 나 너무 너무 힘들었어. 너무 너무." 라며 솔직하게 실토하는 봄의 대답은 단순하게 미성년자들의 불장난 혹은 순간의 첫사랑이라는 납작한 비난, 무작정적인 낭만화를 벗어나 그들 나름대로의 고충과 책임, 이성적인 고민과 나아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특히 서봄이 자신이 사랑하는 한인상을 두고 한 선택, 그를 대하는 태도, 나아가 그 집안을 파악하는 의중은 거대한 공룡같이 세를 불리는 한송가의 느린 발자국을 간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제 3자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출산 이후에 양가 부모가 한자리에 모여 자식들의 미래를 논하는 것이 도리이거늘, 한정호는 법적인 명목으로 서봄을 보호하고 감시하면서도 서봄의 부모에겐 비서를 통해 이들을 떼어낼 수 있는 각서와 보상금 지급을 논한다. 한송가의 '갑질'에도 불구하고 서봄과 한인상이 구청으로 혼인신고를 하러 달려가면서 명목 상 '갑'이자 '을'로 대치될 수 있는 이 양가 사돈어른들이 종로구청에서야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맞딱드리게 된다. 서봄의 이름은 한송가 한정호의 이름과 함께 호적에 오른다. 적, 오히려 적보다 어려운 호적 상 가족의 관계로서 집안의 견고한 가풍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제 3자 서봄이 적과 싸우다 오히려 적보다 더한 괴물로 성장하게 될지 알 수 없는 과정 중에 드라마의 이야기가 서있게 된다. 흔들림의 가능성만으로 위태로워보이는 한정호 부부의 위계는 이 드라마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하게 될지 귀추를 주목시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