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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Jan 13. 2019

착하지만은 않은 신데렐라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E05~E12

Episode 5 ~ Episode 12 : 착하지만은 않은 신데렐라 





한인상(이준)과 서봄(고아성)이 부부가 된 그 날로 나이 50이 다 차기도 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된 한정호(유준상)와 최윤희(유호정)은 손자 한진영과 첫 대면을 하게 된다. '법인그룹 한송 사내 전체의 1300 직원, 카드 문구는 통일하되 직급별로 선물에는 차등을 두고. 사외에는 500명 선에서 선물은 와인이나 초콜렛으로'. 졸지에 외부로부터 갓 스물된 자식 부부와 아기의 탄생을 동시에 축하받아야 하는 지경에 다다른 그들에겐 두 가지 숙제가 주어진다. 며느리 서봄과 사돈댁 서형식(장현성)의 낮은 위치를 어떻게든 무마시키고 격상시켜야 한다는 것.



"요즘 세상에 귀족이 어딨습니까. 다 같은 시민이지."



귀족과 평민이 다 같은 시민권을 가졌음에도, 입고 먹는 것에서 오는 차등은 날 때부터 지고 가야 할 숙명같은 가난을 더 두드러지게 할 뿐이다. 돌아가신 인상의 할아버지는 개천에서 난 용이라지만, 지금의 가난은 그때의 가난과 다르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는 기득권의 유무 그 자체로 판명되며 인상의 부모가 기어이 서형식의 큰딸의 취직을 주도하고 더불어 드넓은 과수원으로의 귀농을 권할 때 그들 사돈은 한정호가 벌여놓은 판 안에서 수동적인 말일 수밖에 없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드디어 구겨진 인생을 활짝 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들었다 내쳐버리는 한정호의 수를 보고 참지 못한 인상이 서봄의 부모에게 사죄하며, 한정호의 면전에 아버지가 부끄럽다고 말한다. 





부끄럽다. 부끄러운 처신이자 돈따위로 사람을 짓뭉갤 수 있는 한정호의 권력은 인간된 도리를 다 하고자 하는 사위 한인상에게는 부끄럽고 실망스러운 존재다. 희노애락을 나누는 정서적인 관계가 아니기에 일부러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벤트를 만들고자하는 집안의 속물적인 면모는 아들 인상에게 더한 사치같은 것이다. 이들 집안의 내력과 힘의 논리에 대해 알고자 하는 서봄을 제지하며 인상은 "좋은 것만 보고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이 답답한 아들을 한정호와 최윤희는 집안 체면이고 나발이고 '뚜들겨' 패기 일쑤다. 강자라는 타이틀을 씌우기 이전에 이들 또한 부모라는 인간적인 접근이라기에는 한정호가 서형식에게 건네는 제안은 너무나 비인도적인지라, 앞으로는 문자를 논하면서도 감정과 주먹이 먼저 앞서는 그들 가족의 모순을 보며 헛웃음 짓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에선 과연 한정호만이 속물이던가?





맑은 윗물, 죽어도 맑아야 하는 윗물 그 밑에 더한 먼지와 가라앉은 이물질들을 안고 어떻게든 허둥대며 살아야하는 아랫물이 있다. 한정호의 제안이 있을 때마다 서봄네 가족은 고민한다. 짐짓 한송 기업을 탈법의 온상이라며 욕을 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하고 서봄을 위해 어떻게든 중용의 선택을 이어나간 셈 치더라도, 그 과정 속에 분명 더 잘 살고 싶은 속물근성과 욕망이 드러난다. 서봄의 할아버지가 도장집을 했었는데, 전각예술가의 자제로서 인천 서씨 조례공파 32대손이라며 누락된 족보를 찾아 한정호가 이들을 '청렴하고 건강한 서민'으로 승격시켰을 때 집안의 반응은 더 가관이다. 아는 일가친척의 이름들을 족보와 대조해보며 집안의 이름과 격식에 한순간 웃어보이는 그들의 얼굴엔 한정호의 논리에 점점 익숙해져가는 과정 또한 어려있다.



"우리 털릴 거 많아요. 진짜 찌질하고 창피한 거 많다고."



한때 한정호의 속셈에 열을 내며 그 집안을 고소하겠다는 서봄의 부모를 두고 서봄의 삼촌이 하는 말이다. 속물적인 삶과 적나라한 생존은 양가 중 결코 한쪽에만 치우쳐지지 않으며, 가난은 백퍼센트의 선, 깨끗한 삶에 대한 결백한 징후일 수가 없다. 그러나 칼자루를 누가 쥐고 있으며 칼끝에 겨누어진 누가 무엇에 대해 속수무책인지에 대해서만큼은 명확하다. 힘의 양면성을 모두 얘기하되 힘의 방향을 분명히 하여 강자와 약자의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불평등한 전제부터 드러내보여야 한다는 의지에서 오는 전개이다.




"가르쳐주세요. 어떡하면 누릴 자격이 생기는지."



한송가에 입성하기 전에도 가난함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한인상과의 결혼 이후 집안의 상대적인 격차는 갈수록 서봄을 압박한다. 그러던 중 인상의 사법시험 코치선생인 경태(허정도)가 서봄이 장차 최연소 고시합격생의 싹수가 보인다며 인상의 부모에게 귀뜸을 하고, 서봄은 인상과 대등한 공부를 하는 학생으로서 하나의 신분을 갖게 된다. 한정호가 영리한 서봄을 가리켜 "(주변에서 며느리에 대해 물어보면) 어느 집안 자제, 이 한 마디가 없는 게 이렇게 불편할 수가 없어." 얘기했던 것처럼 넓고 견고한 집안, 나아가 상류층의 생태계에서 어떤 자리와 이름을 갖는 것은 제 생명줄 하나를 쥐는 것과 매한가지다. 



서봄은 사돈 양가를 저울질하는 힘의 방향성 이전에, 힘의 원천을 궁금해한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 서울에서, 강 하나 혹은 산 하나로  땅값과 삶의 질이 갈리는 약육강식의 세계는 서봄이 사법고시 수업을 받기 전 테스트 차 한정호 앞에서 영어 원문으로 읽는 <군주론>의 구절, 그를 둘러싼 이들의 대화 속에서도 인용된다. 



"누구나 능력껏 돈을 벌고 재산을 모으도록 해준다는 건 시장을 통제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원칙이며 부익부 빈익빈의 출발입니다."

"네 생각이니?"

"아뇨. 경제 시간에 배웠습니다."

"선생이 전교조야?"



서봄은 궁금하다. 그녀가 한정호네 집에서 처세술과 교양을 익히고 심지어 아낌없는 교육과 보육을 지원받는 상황 속에서, 이 집 전체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권력이 무엇이며 힘은 어디서 나온가에 대해 머리를 굴리며 고민한다. 





"저도 어머님 마음에 들고 싶지만, 그것만이 제 인생의 목표일 순 없잖아요. 그러다 정말 중요한 걸 다 놓쳐버리면 제 자신이 미울 거고, 어머니도 진심으로 존경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그걸 변명이라고 하고 있니? (절규하며) 나도 너에게 존경받는 게 인생의 목표가 아니야."



'조건부 며느리' 서봄이 새롭게 먹고 입고 배우며 가풍에 걸맞는 교양인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과정에서의 핵심은 그가 입는 옷이나 배우는 식사예절 자체 따위가 아닌 서봄의 진심이다. 진심으로 궁금하고 그렇기에 더 배우고 싶은 서봄의 기질은 집안과 어우러지기 전까지 주머니 속 튀어나온 송곳과도 같은 취급을 받지만, 이 진심으로 하여금 그가 타고난 신데렐라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어른들 앞에서 처세하는 모습이나 아랫사람의 실수를 조용하지만 따끔하게 타이르는 모습에서 한정호와 최윤희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인상과 만난 것이 실수나 우연이 아닌 운명으로 치부되면서 서봄은 준비된 작은 사모님, 태생적인 권력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아직 앳된 부부계획을 세우고, 한인상과 툭하면 얼싸안는 서봄이지만 권력에 어울리는 역할을 갖추어 나가는 전개는 "우리 힘을 키우자. 배울 건 배워도. 이 집안엔 새로운 가풍이 필요해."라며 그들 부부끼리 상의했던 내용과 엇나가는 모습이다. 가난했던 신데렐라가 왕실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 개구리 올챙이적 기억못하는 배신감을 안겨주기도 하며 혹자는 이 캐릭터를 영악하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타고난 가풍이 얼마나 작위적이고 모순적인지를 드러내는 이야기에서 귀족으로 환골탈태하는 가난한 주인공의 존재란 과연 무엇일까. 



위치를 말하기 이전에 서봄이 한송가에 활개를 치고 다니지 않을 이유는 사실 없다. 괴물과 싸우다 더한 괴물이 되련다라고 하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표하는 편은 사실 주머니 속 튀어나온 송곳의 전제 자체를 부정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드라마 11화, 비록 비공식적인 절차이나 서봄을 대동한 가족들이 한송 기업의 핵심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에서 이미 권력의 일원인 구성원들과 며느리 서봄을 비추는 연출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유리창 빛반사를 통해 굴절되어 하나의 정직한 상으로 수렴되지 않는 시부모와 다르게 서봄은 포커스 아웃된 차창 너머로 주변을 둘러보며 눈을 번득인다. 공부하며 말로만 전해듣던 한송의 모습을 눈으로 담으려는 그 번득임은 숨길 수가 없고 숨겨지지도 않는다. 서봄의 타고난 권력욕이 어디까지 힘을 뻗칠지 아직 알기 힘든 상황에서 기존의 권력층들과 다르게도 하나의 분명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이 인물은 분명 다른 길을 걸을 것임을 예고한다.



"비서직은 종합예술이예요."



"뭔가 언쟁이 벌어진 것 같아요. 워낙 유아기적 퇴행지성을 자주 보이는 분들이라. 저러다 말긴 하는데, 일단 대기모드로. 



이 드라마에서 법조인 다음으로 많이 노출되는 직업은 바로 비서다. 한송기업에서 한정호를 보필하는 비서실의 양재화(길해연), 민주영(장소연), 김태우(이화룡)의 존재나, 최윤희의 개인사와 집안사를 담당하는 이선숙(서정연)은 고용인과 피고용인 이상으로 그들의 개인사를 나누어 전담하고 사적인 말동무까지 되어준다. 특히 2대째 한씨 집안에 비서로써 복무하고 있는 왕언니 '양비서'는 한정호의 세번째 눈과 같은 존재로, 탈모에 대한 고민상담과 수술 예약까지 도맡는다. 규격화된 가풍과 시스템 이전에 선과 문턱을 자유자재로 넘을 수 있는 '역할분담'의 기능은 기업과 가정의 견고한 기둥을 사실상 지탱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들은 "한정호가 사람 보는데 비범한 눈을 가졌다"는 칭송으로 퉁쳐지기도 하지만 철저한 규칙 이면에 얽히고 섥힌 사적 매커니즘으로서 어쩌면 시스템보다 더 살벌한 통제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들을 한데 아우르는 식탁, 그곳에서 다함께 밥을 먹는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 중요하게 드러나는 장면들 중 하나이다. 최윤희와 그녀를 수행하는 이비서가 다니는 복도, 한정호 부부의 침실, 서재 등 집안의 공간을 단선적으로 단절하듯 비추었던 카메라는 거실, 식탁에 이르러 사람들이 한데 모여 무언가를 먹는 장면에서 공간과 사람을 어우러지게 바라본다. 한진영의 백일을 기념하는 날 초대받지 못한 서봄의 어머니가 두고 간 팥떡을 나눠먹으며, 혹은 야참으로 만든 비빔밥을 인상과 봄, 인상의 동생 이지(박시우)와 같이 비벼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서로 웃는 장면에서 집안은 그제서야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이 된다. 



 


"그럼 이제, 이름 새겨주자."

"해줍시다. 역시나 이종교배를 두려워해선 발전이 없어."



한진영이 한씨 집안의 장손으로 온지 100일을 넘겼고, 한씨집안의 이름들이 새겨진 음악당 발코니 좌석에 서씨, 한글로 봄을 쓴 며느리의 이름이 드디어 기재된다. 균열은 이미 일어났다. 아들 부부가 아직 모르는 한정호 부부의 사적인 삼각관계, 번번히 도움을 주는 서봄에게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서봄의 가족들, 한인상의 만류에도 한 번 시작한 공부를 다시는 놓지 않을 서봄. 그것이 분열을 초래하든 다시 봉합될 해프닝이든 간에 이 착하지만은 않은 신데렐라가 과연 어떤 왕관을 쓰게 될 지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기득권과 다른 역사를 쓰게 될 수도 있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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