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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Jan 21. 2020

아닌 달밤에 연애하기

드라마 <봄밤>

***본 리뷰는 드라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기로에 서는 시기가 찾아온다. 그 시기는 한순간의 결말일 수도, 지난한 과정 중 찾아낸 결과일 수도 있다. 누가 어떤 고난을 겪든 간에  인생사 명확한 정답이란 없기에, 그래서 사람들은 눈먼 장님처럼 헤매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굳이 꺼내어 본다. 이입하고 몰입하며, 이들을 따라 기뻐하고 슬퍼한다. 그 갈림길에 함께 선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 드라마 <봄밤> 역시 그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정인(한지민)은 4년 간 사귄 남자 친구가 있다. 한창 사랑에 불타오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꺼트려 놓을 수만도 없는 이 관계를 이어가던 정인의 모습은 어딘가 낯설지 않다. 데이트를 하긴 하되, 서로의 일상을 면밀히 궁금해하지 않으며 적당한 때에 합당한 말만을 주고받는 그 둘의 사이는 연애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그 어느 것에 목을 매거나 절실해지기 힘든 우리의 피로함과 닮아있다. 그런 정인이 약사 유지호(정해인)를 만난다. 만남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우연으로 지난밤 여파로 숙취에 찌들어있는 여자는 남자가 건넨 숙취해소제를 마신다. 그것이 시작이었고, 서로를 한눈에 품은 둘은 이후 만남 아닌 만남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사랑 없는 관계라 할지라도 애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의 만난다는 사실은 드라마의 주된 갈등이 된다. 그러나 갈림길은 하루아침에 드라마틱하게 벌어지지 않는다. <봄밤> 속 두 연인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이야기의 우연이 마냥 낭만적으로 거듭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린 행동을 하기엔 지호에게는 책임져야 할 아들이 있으며 정인에겐 그의 결혼을 지켜보고자 하는 부모님이 있다. 그들에게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라 함은 물리적으로 들어가는 숫자이기보다 많은 것들을 쥔 이상 더 펴볼 수도 없는 손의 무게와도 같다.



그럼에도 <봄밤>이 배경이 화면 가득 담긴 풀샷으로  유독 자주 비춰주는 건 지호와 정인의 달려가는 모습이다. 동생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현관문 앞에서 지호의 연락을 받고 무작정 다시 달려 나가는 정인, 정인이 먼저 들어가 있는 자신의 집안으로 바삐 계단을 올라서는 지호. 사랑에 빠진 그들은 스토리 초반, 단단한 가면을 움켜쥔 앞모습에서 벗어나 정신없이 서로를 향하여 가는 뒷모습을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천천히 그들이 솔직해져 갈 때마다 <봄밤>의 카메라는 인물들을 앞서가기보다 멀찍이서 지켜보는 쪽을 택한다.



시간이 지나 어떤 아침을 맞이할지 모르는 그들의 밤을 함께 지새우던 어떤 이들은 정인과 지호가 각자의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그때만큼은 저마다의 피로에 잠시 손을 놓을 수 있었으리라. 너무 지쳐 함부로 뛸 수도 없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숨 가쁨을 느끼는 순간에, 아닌 달밤의 연애는 그렇게 누군가 봄밤에 꾼 꿈으로 거듭난다. 지금 이 순간 연애를 하지 않더라도 설레는 사랑의 이야기를 보고자 하는 이유. 굳이 힘겨운 사랑을 헤쳐나가는 두 뒷모습을 두고두고 지켜보고 싶은 이유는 바로 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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