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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시작과 결실, 상제 문화

상제문화를 찾아서 4번째 이야기

by 오후의 책방

@ 현실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백도백과(바이두 백과사전)에 소개된 '고조선'에 대해 정리하면,

(1) 단군조선은 신화-전설에 불과하며,

(2) 기원전 108년 이전에 한반도 북부에 있었고,

(3) 기자-위만조선 시기(BC1122-BC108)에 존재했었는데,

(4) 기자-위만조선 모두 중원 국가의 제후국이나 번속국 혹은 지방정권이었으며

(5) 문화적으로나 혈연적으로나 오늘날의 남-북한의 역사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6) 주요 민족도 화하족과 부여족이며,

(7) 결론적으로 고조선은 중국사의 일부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배울 때 고조선부터 시작한다. 중국 학계의 논리대로라면, 한국인들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중국사부터 배우기 시작하는 꼴이 된다!


2021년 10월 25일 서울 천도교 대교당에서 열린 <천부경 학술대회>에서 『요하 문명론』의 저자, 우실하 교수가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다. 몇 해 전,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 주석은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라고 말했다. 굳이 왜! 그 자리에서! 이쯤 되면 중국의 한국사 왜곡은 너무나 노골적이고, 정치적이며 국가 주도적임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북한이 붕괴되거나 한반도의 유사시에 중국이 한국을 점령할 테니, 미국은 간섭하지 말라는 메시지였고, 눈치 빠른 트럼프는 얄미운 친구처럼 인터뷰에서 대화 내용을 '까발렸다.'

서울신문 트럼프 시진핑 망언.jpg 자료출처 : STB상생방송


@ 논란과 그 배경

이제는 참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때는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국내에선 폐막식 무대에 영화와 음악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한 한류스타가 오른다고 해서 관심이 높았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당초 세계 각국의 가수들과 함께 무대에 오를 것이란 보도와 달리 무대에 함께 오른 이들은 모두 중국계 가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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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은 네티즌들의 설전으로 뜨거웠다. ‘중국인도 아닌데 그 자리에 한국 가수가 왜 있느냐?’, ‘낯 뜨거웠다. 중국에게 이용당했다.’는 비난 여론과 ‘좋은 의미로 올랐는데, 너무 민감한 것 아니냐.’는 글들이 옥신각신 논쟁을 거듭했다. 게다가 ‘외국에서 중국계로 소개했다’, ‘중국 CCTV 자막에 국적을 불분명하게 했다’는 등 외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힌 네티즌들의 글이 올라오면서 비난의 수위가 더욱 높아졌다.

사실 개막식 때부터 불편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올림픽 주최국 국기가 게양될 때였다. 중국을 이루고 있는 56개 민족을 상징하듯 각 민족의 전통의복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나와 중국 국가를 따라 불렀다. 그런데 카메라가 돌아갈 때, 심장이 멎는 듯 시선을 고정시킨 장면이 하나 있었다. 색동저고리에 치마, 그것은 분명 한민족의 전통의상이었다. 지금은 중국 영토에 속해있지만, 만주는 우리 고대사의 터전이었고, 지금도 우리의 동족이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그런 그들이 한복韓服을 입고서 중국 국가를 부르고 있다니…. 아! 우리가 좁은 한반도에서 옥신각신하는 사이 우리의 옛 터전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비가 이용당했고, 비 또한 짐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욕심에 이용당해주었다고 본다. 박진영이 한사코 만류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잠시 시끄러웠지만 가라앉았고, 비는 그의 바람대로 할리우드에도 진출하며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2021년 현재 바이두에서 보듯, 중국의 한국 역사 삼키기는 완료됐다. 잘 못 들은 게 아니다. 완료됐다.

네티즌들이 그토록 분개한 것은 단순히 연예인 한 개인의 '사려 깊지 못했음'의 문제 삼은 것이 아니었다. 이 논란의 중요한 쟁점은 바로 중국의 역사왜곡에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기 훨씬 이전부터 제기된 ‘동북공정’이란 역사침탈 사건이 그 배경에 깔려있는 것이다. 과연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왜곡의 핵심은 무엇이고, 그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이 문제는 동북아시아의 상고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만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상제 문화를 찾아서> 네 번째 주제는 한반도를 넘어 드넓은 대륙에서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던 한민족 상고사에 대해 그리고 가슴 아프지만, 축소되고 왜곡된 한국사와 대면하는 시간이다.


@ 동북공정 - 한민족 고대사 빼앗기

장예모 감독이 연출하고 엄청난 인원과 최첨단 장비를 총동원한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은 이전의 어떤 개막식 행사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했다. 그중 백미는 “찬란한 문명”이란 주제의 퍼포먼스였다. 문방사우를 비롯해 청동기, 벽화, 무기 등 문화와 역사의 진보를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들이 차례로 등장하더니, 공자의 제자를 상징하는 3,000명이 죽간을 들고 나와 ‘사해동지’(사해 내에 모두가 하나라는 뜻)를 합창했다. 뒤이어 897명이 사각 퍼즐을 쓰고 나와 갑골문에서 현대 중국어에 이르기까지 한자 ‘화和’ 자의 변천 과정을 마치 한 몸처럼 연출했다. 마지막 공연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연출했을 때, 올림픽 경기장은 탄성과 박수로 가득 찼다.

25.jpeg 이미지 출처 : 한겨레

그러나 그때, 그들 발밑 거대한 LCD판에는 티베트를 관통하는 기차가 힘차게 달리는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섬뜩하다. 중국의 新중화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긴 하지만, 이토록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인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중국은 1990년대 이후, ‘국가통합, 민족단결, 변강안정’이란 목표를 걸고 신장지역 위구르족과 티베트족을 대상으로 한 서남공정을 시행했다. 그 결과로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세계를 떠돌며 구호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무력과 강압으로 차지한 영토를 어떻게 이렇게 ‘평화’로 미화시킬 수 있을까? 그런데 이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서남공정을 마치고 다시 눈길을 돌린 곳은 바로 한민족 고대사의 무대인 만주와 간도지역이다.

중국은 2002년 2월부터 이 지역 동북 3성(지린吉林성, 랴오닝遼寧성,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역사와 그에 따라 파생된 현상들에 대한 프로젝트, 즉 동북공정을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한반도의 정세 변화에 따라 역사, 문화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특정 지역의 귀속권 문제와 그에 따른 국경․영토분쟁, 외교문제, 관광전략 등에 대해 대응논리를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향후 남북 분쟁으로 인해 생길 영토문제, 조선족 문제를 사전에 대비하기 위해, 고조선, 고구려, 발해사 등 한민족 고대사를 중국의 변강지역 역사로 편입하려는 것이다.

133906227760_20120608.jpeg 자료 출처 : 한겨레

국내 학계와 정부의 대응이 지지부진한 사이, 2007년까지 동북공정을 일단락한 중국은 ‘한민족 고대사 빼앗기’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만주, 발해연안 지역에 있는 고구려 유적지에는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란 안내문구가 버젓이 적혀 있다. 그네들 스스로 동이와 구분 지었던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은 산해관에서 어느새 압록강 하류까지 연장시켜 소개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굳어있던 돌들이 살아있는 뱀처럼 기어 들어왔을 리 만무하다. 다분히 의도적인 역사왜곡임을 알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중국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게티 미술관에서 진행했던 '둔황 동굴 사원' 전시회에서 소개된 지도다. 만리장성이 압록강을 넘어 평양 근처까지 내려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 산성을 복구한다며 중국식 산성으로 수리한 다음 만리장성과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더니 결국 이런 식으로 이용하려고 했었나 보다.

SSI_20160830173306_O2.jpeg 이미지 출처 : 서울신문- 반크 제공 2016년


@ 멀어진 역사, 그 몫은 우리 자신

동북공정을 비판하고 분석한 서적들이 다수 출판되었지만, 대부분 학술서에 가까운 이런 책들이 일반 독자들에게 읽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답습하고 있는 한국 사학계를 치밀하게 비판한, 이덕일 교수의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도서 토론회를 마치고 몇 분들께 물어보았다.


동북공정 말로만 들어봤지 실제 어떤 내용인지는 사실 저희들은 잘 모르죠, 학교에서도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하는 마당에.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문제의식은 있지만 고대사에 대한 이런 내용들이 그냥 어렵게만 느껴지고, 대중들이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_김○○(구미, 직장인)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안목이 우린 너무 부족해요.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정신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_최○○(대구, 교사)


역사가 진실과 멀어지고, 대중에게서 멀어진다면 그 책임은 첫째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 즉 역사학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겠다. 대한민국에 역사학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을 싸잡아 폄하해서도 안 되겠지만, 사대주의 사관과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사학계는 훗날 역사의 심판을 천 번을 더 받아도 모자라지 않다고 본다. 더구나 동북공정을 통해 보듯 역사는 단순히 학문적인 영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더 이상 그 책임을 역사학자들에게만 던져놓을 순 없는 노릇이다. 이제 국민들 스스로가 역사문제를 나 자신의 문제로 가져와 현실과 미래를 비추는 거울로 삼아야 할 때이다. 역사를 바로 잡는데 친중, 친미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좌우되면 그게 바람직한가? 종교는, 직업은?


그대가 어떤 종교를 신앙하고,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반드시 자기 존재의 근본인 조상의 뿌리와 민족의 시원, 그리고 그들이 어떤 정신세계에서 살다 갔는지 하는 민족의 정통성을 명백히 알아야만 한다. 그것은 자기 존재의 본질을 알고, 자신을 완성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선결해야 할 요건이다. 역사의 근본을 알면 아무리 작은 개인이라도 자신이 ‘역사적인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개벽 실제상황』, 안경전


@ 왜 문명인가?

중국은 이미 G2로서 경제, 군사적으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런 중국이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 최강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내건 기치가 왜 ‘문명文明인가’라는 점에서 의구심을 자아낸다. 13억 인구에 드넓은 영토, 그리고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의 역사를 자랑하던 중국이 굳이 또다시 문명을 내세울 필요가 있을까?

기실 중국만이 아니다. 일본 또한 한민족 역사왜곡의 주범이란 사실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본은 한강 이북은 위만조선으로 한강 이남은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하여 한민족이 본래 식민지 역사에서 시작되었다는 논리를 폈다. 본래 일본의 식민지였으니, 일제 강점은 타당하는 주장이었다. 아직 민족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무참히 짓밟았던 일제 식민사학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그 굴레에서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 국내 사학계의 현실이다.


이상하리만치 두 나라가 유독 한민족의 고대사를 왜곡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몽골자치구 적봉시 동북쪽 우하량 일대, 이곳에는 그 의문을 풀어 줄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1980년대 발굴된 홍산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인 우하량 유적은 그야말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획기적인 발굴이었다.

우하량 유적에서는 5,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대형 제단, 여신묘, 적석총군이 나왔다. 학자들은 여러 발굴 결과를 토대로 우하량 유적이 황하문명보다 2~3천 년 앞서있고 국가 단계의 조건을 다 갖춘 문명사회였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고고학적 연구결과들은 이 지역 유물들이 명백히 동이족과 관련돼 있음을 보여주었다. 홍산문화는 한민족 고대사인 단군조선과 또 그 이전에 배달국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1부 263번 우하량.png 원형 제단과 방형 적석총

동북아시아 문명의 발상지였다는 황하문명보다 2~3천 년이나 앞선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굴된 제천단과 용봉 형상의 옥기 유물들은 동북아시아의 문명의 발상지가 황하유역이 아니라, 동이족의 활동무대였던 동북방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황하문명은 홍산문화보다 수천 년 뒤에 그 영향권 아래에서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문명의 종주국을 자처하며 주변 민족을 오랑캐라 천시해왔던 중국은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홍산문화의 발굴은 그동안의 한중일 역사논란을 근원적으로 뒤집는 것이었다. 따라서 중국은 동북공정에서 지금까지 정사라고 해왔던 자신들의 기록까지 부정해가며 끼어 맞추기식 억지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중국의 정사인 《신구 오대사》나 《송사》에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중국은 이 기록을 편찬자의 착오라고 강변한다. -『21세기 한중일 역사전쟁』, 윤대원


홍산문화를 가리켜 ‘제5의 문명’ 또는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한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홍산문화가 동북아시아를 넘어, 현 인류문명의 근원이 되는 ‘뿌리문화’, ‘시원문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홍산문화에 해당하는 소하서 문화는 기원전 7,000년~6,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동안 문명의 시작이라고 말해왔던 수메르 문화, 세계 문명 발상지로 곱히는 4대 문명보다 앞선다. 특히 5,500년 전까지 올라가는 우하량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며, 최근까지도 계속 새로운 발굴과 발견이 이어지고 있다.

여신묘resize.jpg 우하량 여신묘 전경 : 출처 STB상생방송


@모든 것의 시작 상제문화

그런데,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그 역사를 만들어 온 정신사에 대한 논의를 배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다. 고고학적 연구가 아무리 활발히 이뤄지고, 연대측정이 정확해진다고 해도 그 속에서 인류의 정신사, 문화사를 해석해내지 못한다면, 그 유물이란 결국 빛을 발하지 못하는 원석에 불과할 것이다.

비록 신화와 전설은 고대 문명들에 대해 우리의 상상과 영감을 자극해 왔지만, 깊은 바다와 골짜기 속에 마치 무의식처럼 가라앉아 그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드러낸 홍산문화의 유적, 유물들은 현 인류가 하늘과 땅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들려주고 있다. 초기 국가의 형태를 이루고, 제도를 세우고, 정치와 종교와 문화를 형성한 문명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

우하량에서는 길이 160m 너비 50m 규모의 거대한 제단과 직경 100m가 넘는 돌로 쌓은 대형 피라미드가 발견되었다. 제단은 원형과 방형으로 이루어져, 천원지방의 사상을 나타낸 것이며, 북경에 현존하는 상제님의 제천단인 천단天壇의 원형이기도 하다. 또한 여신묘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대지를 상징한다. 여신은 바로 인간의 탄생과 풍요를 주재하는 지모신地母神이다.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발견된 단, 묘, 총의 제사 유적군을 통해, 동이민족은 동방의 뿌리 시대로부터 이미 상제님과 조상에 대한 제사를 중시하였고, 동방문화의 천지인 삼재사상을 반영한 제단을 만들어 천제를 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상제님께 올리는 제천의식을 주관한 이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그는 ‘天帝之子’ 즉 상제의 아들, 천제의 아들로 불리며, 하늘의 뜻에 따른 신교의 가르침을 받아 만백성을 다스렸다. 이를 ‘천자문화’라고 한다. 천자는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의 대행자며, 상제님과 백성을 이어주는 중계자였다. 천자문화는 곧 상제문화를 대표하며 상제를 잘 받들어온 동방의 문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중국의 제왕문화는 동방 조선의 천자문화를 본받은 것으로, 중국의 고대문화를 꽃피운 장본인은 한민족의 조상 동이족이었다. 중국이 천자국을 자처하였지만, 중국 천자사상의 뿌리는 중국 한족문화가 아니라 동방조선의 동이족인 것이다.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문화의 본고향 - 『도전道典』 1편 1장


상제문화의 시작은 곧 문명의 시작이었으며 그 문화를 연 뿌리 민족은 동이東夷였다. 상제문화를 찾아 나선 우리의 첫걸음이 서울 소공동의 원구단 터였음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한민족의 옛 터전 만주에서 상제문화의 원형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고조선 이후 고려 말에 이르게 되면 이 땅에는 상제를 계승한 천자문화의 위상이 쇠퇴하게 된다. 외우내환을 거치며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받들며 신의 가르침으로 살아가던 신교神敎문화의 흔적은 더욱 찾기 어려워졌다. 현대문명의 발달은 물질과 사리에 치우쳐 진리의 근본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였고 인간이 성령을 받아내려 살던 황금의 신성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도리어 이를 부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 한국인들의 눈으로 홍산문화의 제천단과 신교 문화의 유적들을 어떻게 비칠까? 나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정신문화의 근간임 발견하길 바란다. 아무런 감성을 느끼지 못하는 풍화된 돌무지에 불과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고종황제가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며 대한大韓을 선포한 원구단이 도심지 빌딩 숲 한가운데 묻혀 신음하고 있는 것은, 잃어버리고도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조차 망각해버린, 역사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종어간 시어간

문명의 발전은 단지 물질의 풍요만 추구해온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왜 태어나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지속된 의문이었다.

더욱이 지금은 급변하는 사회와 위태로운 경제시스템, 자연의 파괴, 신종 전염병과 전쟁의 위협 등 인류 역사이래 그 어느 때보다 분열의 극에 치닫고 있다. 이제 현대인들에게는 기존의 종교, 과학, 철학의 가르침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근래 인문학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대학가뿐 아니라 치열한 경제현장의 CEO들조차 인문학 강연을 찾고 있는 이유도 이와 같이 인간과 자연과 문명 속에 복잡하게 얽힌 온갖 모순과 갈등의 해답을 찾기 위한 시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정답일 수 없다. 우리의 눈은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의 바탕인 천지 대자연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로부터 한민족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삼재三才라 부르며 천지를 부모로서 받들어 왔다. 우리가 다시금 신교문화에 눈뜨고, 역사와 문화의 근본을 회복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또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동북 간방은 예로부터 문명지방文明之方이라 하여 지구의 시원문명이 열린 곳이다. 간艮은 변화가 끝나고 새로 시작되는 자리로서 말씀이 이뤄지는 곳을 뜻한다. 그래서 간방은 인류문명의 ‘끝남과 시작’이 함께 이뤄지는 곳(終於艮始於艮)을 의미한다. 간은 초목에서 열매로 얘기되는데, 열매는 결실이자 씨앗을 나타낸다. 동북 간방은 천지의 열매가 맺어지게 되는 곳이다. -『인류문명의 뿌리 동이』, 김선주


역 철학에서는 꽃을 피운 자리에서 열매가 맺히는 자연의 법칙 그대로 인류의 문명 또한 문명의 꽃을 피운 그곳에서 그 결실을 이루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상제문화로 시작된 인류문화의 시작은 다시금 이 동방의 땅에서 상제문화의 회복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상제문화의 종주국으로서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민족이 문화의 창도자로서 이뤄야 할 고명한 사명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신교문화의 맥을 찾아

현대에서 고대로 거슬러가며 드넓은 만주로 떠난 여정은 개벽의 땅 한반도로 이어져 왔던 한민족의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다시 내려와야 하겠다. 다음은 한민족의 생활 속에 또 인류의 삶과 역사 속에 엄연히 살아계신 삼신상제님의 숨결과 자취를 찾아 떠나고자 한다. 5편에서는 신교 문화의 맥을 계승하여 상제문화를 수호해 왔던 낭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참고자료>

도전(도전편찬위원회) / 개벽실제상황(안경전) / 천지성공(안경전) / 인류문화의 뿌리 동이(김선주) / 21세기 한중일 역사 전쟁(윤대원) / 그 외, 도움을 주었던 많은 인문서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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