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7단계

책에 물들다

by 오후의 책방

만약 영상으로 보려면, 요기로요~^^

https://youtu.be/R1hLtDspBcU



미국 국립 교육연구학회에서는 연령에 따라 독서능력의 6단계를 제시했습니다.

독서 준비기(0세 ~ 5.5세) : 글자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독서를 위한 준비기

독서 입문기(5세 ~ 7세) : 이야기를 듣고 그림책을 보고 흉내 내는 시기

기초 독서기(6세 ~ 8세) : 독서력이 성숙되는 시기, 소리 내어 읽기, 독서 습관을 정착하는 시기

전개 독서기(8세 ~ 11세) : 어휘량이 풍부해지고, 내용을 해석할 수 있는 시기

성숙 독서기(12세 ~ 15세) :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서자료를 선택할 수 있는 시기

사색 독서기(개성적 독서기) (15세 ~ ) : 철학적 입장에서 사색하고, 비판적 독서가 가능한 시기


설명을 다시 한번 보시겠어요? 네 맞습니다. 이 6단계는 아이들의 언어발달, 인지발달에 따라 독서 수준을 구분한 것 같습니다. 언어능력은 학습력과도 직결되지요. 이 구분대로라면 독서력이 좋다는 것은 곧 문해력이 좋다는 의미이고, 독서능력이 뛰어난 아이는 학교 성적도 높을 가능성이 큽니다. 많은 부모님들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초등학교 3~4학년 교과서나 문제집을 보면 독해력이 필요한 지문들이 갑자기 많아지죠? 최승필 선생님의 <공부머리 독서법>은 독서력과 성적의 상관관계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전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아내가 자주 이야길 해줘서 마치 다 읽은 듯합니다. (최승필 선생님, 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물론 언어능력을 키우기 위한 독서도 중요한 '독서의 쓸모'일 겁니다. 그런데 전 학생이 아닌지가 한참 지났잖아요. 누가 성적을 평가하지도 않고, 지식의 많고 적음을 잣대질 하지도 않는데도 독서를 합니다. 활자중독일까요? 독서가 습관이기도 하지만 제겐 책 읽는 그 순간 자체가 행복입니다. '독서는 인생의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제 머리맡엔 책 몇 권이 놓여 있을 것 같아요. 가져가지도 못할 텐데도 말이죠.


이번 글은 저 나름의 독서 단계를 말씀드릴까 해요. 명색이 북튜버인데, 누가 '어떻게 책을 읽었어요?'라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하지, 미리 정리를 좀 해두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내심 누가 좀 물어봐줬으면 좋겠는데, 묻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이 독서 단계는 순전히 제 경험을 토대로 정리한 거예요. 그러니 유명한 독서가나 권위 있는 단체에서 분류한 것과 공통된 점이 있다면 다행이다 싶겠고, 혹 다른 점이 있다면 한 애서가의 경험이구나하고, 참고해주시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의 독서 7단계입니다.


1단계 놀이 독서 - 책 읽는 과정이 재미, 놀이가 되는 독서 : 동화, 만화, 전기

2단계 지식 독서 - 지식의 범위와 이해를 넓혀가는 독서 : 과학, 자연관찰, 역사

3단계 문장 독서 - 어휘와 문장의 매력에 빠지는 독서 : 소설, 시

4단계 사유 독서 - 사유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독서 : 철학, 고전, 신학, 역사

5단계 비평 독서 - 여러 관점을 비교, 비평하며 자기의 관점을 단련하는 독서 : 사회, 정치, 역사

6단계 비우는 독서 - 생각과 마음의 경계, 한계를 허물어가는 독서 : 종교, 경전, 고전

7단계 글 너머 독서 - 시, 만트라, 역사 그리고 ( 당신의 그 무엇 )


독서 그 자체가 행복이라 말씀드린 것처럼, 비록 7단계로 구분 지었지만 언어발달단계처럼 다음단계로 가기 위해 반드시 아래단계가 선행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서는 놀이면서 지식을 얻는 시간이고, 문학이면서 사유하는 공간입니다. 독서는 동시적 사건입니다. 어쩌면 좋은 책이란 이 모든 것을 품고 있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다양한 면을 경험하게하는 책일 겁니다. 책은 읽는 사람의 모양만큼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더 적절한 표현은 '독서의 7차원'일 거예요. 나이, 경험이 쌓여가며 인식과 사유의 확장이 일어나기 때문에, 독서력에도 단계가 있음을 부정할 순 없겠지요. 그럼에도 한번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말 좋은 독서'란 '동시적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놀이로서의 독서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무슨 책이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순전히' 만화책으로 한글을 뗐고, 위인전과 무협지로 몰입 독서를 했습니다. 당연하겠지요? 어떻게 몰입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X세대인 저희 또래 중에 드래건볼과 슬램덩크를 모르는 얘가 없었습니다. 발간일이 되면 미친 듯이 서점으로 뛰어갔습니다. 김용의 동방불패와 의천도룡기는 수업시간에 돌려가며 읽었지요. 때를 기다리는 잠룡처럼 교과서 아래에 숨죽여, 선생님께서 부르는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몰입하던, 네? 아하! 제가 이~래서 서울대를 못 간 거였군요!

요점은 '과정'입니다. 독서를 하고 싶다면 좋아하는 재밌는 책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장르에 구애받지 말고 체면을 따지지 말고요. 독서를 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놀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추천 도서가 아니라, 직접 서점에서 손으로 만져보고, 집으로 데려오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혹은 왠지 뒤에서 자꾸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녀석을 찾아보세요. 남이 좋다는 책 말고요. 내가 좋은 책이요.

아이들과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이 책이 좋아 보여, 이 책 어때?'라고 자꾸 제 눈에 들어오는 책을 들이밀었습니다. 시큰둥했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가져오는 책은 또 제 맘에 영 들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큰아이가 곰돌이 푸우가 그려진 책을 들고 왔습니다. 그림도 예쁘고, 글도 짧아서 동화책인 줄 알고 사줬지요. 돌아와서 찬찬히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문장은 쉬웠으나, 사유는 깊어야 문장 뒤에 숨은 함의를 파악할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초등학생 2학년이 실존주의 우화집을 읽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는 재밌다고 했습니다. 네, 그렇다면 그걸로 된 겁니다.


지식, 정보를 위한 독서는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의 특성상 한 분야에 빠지면 그 분야의 사고방식으로 생각의 틀이 짜일 수 있습니다. 생각의 범위가 좁아진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공룡이 좋으면 공룡 책만 사지요? 카봇이 좋으면 카봇 스티커북만 삽니다. 제 눈엔 집에 있는 것과 똑같은데, 아이 눈에는 마지막 한 장이 다르면 전혀 다른 새로운 것입니다. 사주긴 했습니다만, 마지막 장만 뜯어져 외면받고 있는 새책을 보면, 입술을 꽉 깨뭅니다. 다시는 안 사줄 거라 다짐하지만 글썽이는 눈으로 '이 스티커가 달라'하면 또 넘어가버립니다. 아내의 잔소리는 아빠가 감당할 몫입니다. 아이들은 금방 관심이 바뀝니다. 그리고 다양한 지식들을 통합하고 통섭하기 시작할 겁니다. 우선은 깊이 파되, 분야를 다양하게 확장시켜 나가는 독서가 아이들의 성장 특징에 맞는 독서입니다.

성인의 독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의 전공은 '응용과학'의 범주에 있었습니다. 언어학, 뇌과학, 교육학, 심리학, 철학, 음성학, 생리해부학 등 각 분야의 연구결과를 가져와 임상에 적용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의 논문과 단행본을 읽고 정보를 통합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 병리적 증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동시에 독서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지식 독서를 제대로 하게 된 것은 20대 중반이 넘어서였네요. 많이 늦은 것 같습니다. 20대 초에는 책 보다 연애가 좋았고 친구가 좋았고 술이 좋았습니다. 껄껄 놈팽이였죠.


3단계 문장 독서부터는 독서의 속도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 오히려 천천히 깊이 읽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속독이 꼭 필요하고 중요한 능력이 되는 직업군이 있습니다. 속독법을 특별히 배우기도 하지요. 하지만 독서를 위한 속독은 읽은 책이 쌓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터득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책이냐에 따라 속독速讀이 오히려 독毒이 되기도 합니다. 사유 독서에서는 절대적으로 빨리 읽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한 문장, 한 단어를 꼽싶어야만 우러나오는 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애 문장을 외워버리면 더 좋지요. 책을 덮고 문장을 주문처럼 되네이다, 문득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는 때가 있습니다. 천 개의 전구가 켜지듯, 문리가 트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마치 자석처럼 달라붙어 하나의 체계가 보이는 순간입니다. 공부의 재미, 독서의 진짜 재미는 그런 것이지요.

7단계에 '역사'가 여러 차례 나오지요?

간단히 쓰려고 한 글이었는데, 하고 싶은 말이 꽤 많았나 봅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2부에서 3단계 문장 독서부터 다시 이야기를 풀어가보지요. 왜 역사가 반복해서 나오는지도 말씀드릴까 합니다.

긴 글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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