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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Jun 08. 2022

오징어 게임, 영웅 탄생의 비밀코드

“이걸 알면 한국문화의 원형을 아는 거야!”

유행이 다 지나고 열기가 다 빠졌으니 이제 작년에 쓰고 묵혀둔 B급 평론을 올린다. 참 이상한 성격이기도 하지, 너도 나도 관심을 갖고 소리칠 때, 속된 말로 물들어올 때 노 젖지 않고서 잔잔해지고서야 돛을 올리는 성격이다. 약간의 자존심도 있을 것이다. 내 이야기는 그렇고 저런 이야기가 아니니 좀 주의 깊게 들어보시오 하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첫 시작은 주인공이 오징어 게임의 방식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우리 동네에서는 이 놀이를 오징어라 불렀다. 오징어를 닮은 모양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공격자가 기회를 노려 오징어의 허리를 가로지르면 두 바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린 그것을 암행어사라고 불렀다.” - 오프닝 내레이션


 오징어를 닮은 게임은 원, 네모, 세모. 원방각으로 이뤄져 있다. 오징어 게임에 담겨있는 상징은 무엇일까? 왜 암행어사라고 부를까? 드라마처럼 게임의 설계자가 게임 안에 숨어 있어서? 물론 충분히 일리가 있는 해석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만 더 인문학적으로 파헤쳐보면 세상에 정말 이런 거야 하고 놀랄만한 상징들이 숨어 있다. 

우선, 그전에 조셉 캠벨이 이야기한 신화와 설화의 서사구조부터 한번 짚고 넘어가 보자. 켐벨은 신화와 종교를 비교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1949년 그 유명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섰다. 모든 영웅 탄생의 이야기에는 다음 3단계 구조가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출발 혹은 분리. 예수의 광야의 삶, 싯다르타의 출가 같이 평범한 삶에서 끌려 나오는 과정이다.

둘째, 입문과정은 시련의 길이다. 유혹, 고통, 좌절, 악의 힘과 싸워 영웅은 깨달음을 얻는다. 영웅의 자질만 가졌을 뿐이었던 풋내기가 이 과정을 거쳐 진짜 영웅이 된다. 

셋째, 깨달음과 힘을 가진 영웅이 다시 고향으로 혹은 세상 속으로 돌아온다. 대개는 왕이나 예언자, 혹은 슈퍼히어로의 대우를 받으며 끝나겠지만, 이야기가 지속되는 한, 이 영웅의 삶 또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영웅 탄생의 세 가지 과정은 영성을 추구하며 신과의 합일로 나아가는 구도자들의 과정과 닮았다. 성공한 영화, 드라마에도 영웅 탄생의 서사구조가 들어가 있다. 


 유불선 기독교가 유입되기 이전, 한국의 고유 사상을 신교敎, 혹은 삼신三神 사상이라 한다. 신교 삼신 문화에서는 하늘은 원圓, 땅은 방, 인간은 각角으로 상징했다. 원은 하늘 아버지의 원융무애함을 상징하고, 방은 하늘의 생명을 받아 만물을 형상을 지어내는 어머니 땅의 방정함을 상징한다. 각, 삼각형은 하늘과 땅의 가운데, 그 중심에 완벽한 중도中道, 명상을 하듯 앉아 천지와 하나가 된 인간상을 상징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9화에서 마지막 게임을 앞두고 공수를 선택할 때, 주인공은 세모를 선택한다. 역시! 넌 계획이 다 있구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기호, 숫자는 아무렇게나 정해진 것 같지만 절대 아니다.


전통놀이 오징어의 형태와 게임방식에는 천지인삼재 원리와 삶의 통찰이 담겨 있다.  

1. 게임의 시작 : 외발로 건너는 다리

 삼각형과 네모 사이에 다리가 있다. 공격자는 외발로 뛰어와 다리를 건너야만 한다. 하늘로부터 땅으로, 몸을 받아 난 인간은 현실세계의 역경과 부딪히며 살아간다. 인간의 삶이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통과 함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며 이상을 꿈꾸고, 인생의 목적을 찾아, 진리를 찾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하느님이 성인을 내실 때에도 이와 같다. 세상을 주유하며, 현실의 모순을 경험하고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진리를 찾는 이들을 우리는 철인, 구도자라고 부른다. 철인이 어디 따로 있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당신이 구도자다. 직업職業이란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살아가기 위한 방식을 직職이라고 하고, 태어난 목적을 업業이라 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 먹고사는 일과 내 존재의 의미를 찾는 일, 두 가지가 운명처럼 주어진 것이다.


2. 첫 번째 관문 : 깨달음- 한계 뛰어넘은 영적 도약

다리를 건너면 그는 두 발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정의와 불의의 경계, 참과 거짓의 경계에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구도자는 마침내 진리의 길을 선택하고 피안으로 건너간다. 두 발로 선다는 것은 몸과 마음에 경계지어진 한계를 넘어 영적 깨달음을 얻은 온전한 인간을 말한다. 혹은 역경을 이겨낸 불굴의 영웅을 상징한다. 인간은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다. 참됨과 선함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인간은 비록 각박한 현실에 살아가더라도 깨달음의 갈급증을 풀어줄 참된 가르침을 구하는 구도자일 수밖에 없다. 다리를 건넌, 즉 영적 도약을 이룬 이는 ‘암행어사’라 외친다.


3. 암행어사에 담긴 천지의 비밀 : 영웅은 누구인가?

 암행어사란 부정부패, 불의를 밝혀 정의를 바로 세우도록 특별한 명을 받은 관직이다. 그러나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누구도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암행어사는 그 신분을 상징하는 마패를 가지고 다닌다. 보통의 암행어사는 말 두 마리 새겨진 2마패를 가지고 다니는데, 이것은 말을 여러 마리 데리고 다니면 신분이 탄로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 마패는 최대 5마리의 말이 그려져 있다. 다섯 마리의 말, 여기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우주를 주재하시는 하느님을 동방 조선사람들은 삼신상제님, 상제님이라 불렀다. 천지의 이치를 깨달아 백성을 교화하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 천지의 이치를 정치와 인간 만사의 제도와 규범으로 이화한 이를 ‘하느님의 아들’ 즉 천자라 부른다. 단군성조께서 그의 아들 부루 태자(2대 단군)를 통해 하우에게 치수법과 나라를 통치하는 규범을 전수하였는데, 이를 홍범구주라 한다. 홍범구주의 5번째가 바로 황극皇極이다. 제帝와 황皇을 따와 훗날 진시황이 자신을 황제라 칭했다.

 말은 12 지지에서 정오에 해당된다. 해가 가장 높이 떠오른 정오에 배속된 동물이 말馬이다. 단군조선 이전, 동방의 첫 나라는 황웅천황께서 세우신 배달국이다. 이 날은 우리는 개천절이라 부른다. 배달국의 다섯 번째 환웅이신 태우의 환웅의 막내 아드님이 인류문명의 조종이라 불리는 태호복희씨다. 태호복희씨께서 삼신상제님께 계시받아 우주의 변화원리를 한 장의 그림으로 그리셨는데 이것이 하도河道다. 하도에 배치된 상수의 원리로 정오를 상징하는 말은 7火에 해당된다. 불은 빛, 문명을 의미한다. 숫자 5는 하도의 정중앙 5토土에 배속되며, 하느님의 마음 혹은 제왕을 상징한다.

 즉 5마리의 말(7화火)이 새겨진 마패를 가진 암행어사는 천지의 뜻을 깨달아 인류의 문명을 여는 성인, 군주, 천자, 혹은 위대한 영적 스승을 의미한다. 임금의 명을 받았다 함은 곧 삼신상제님의 뜻을 현실 속에 이루는 성인이란 뜻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이 드라마의 주인공의 번호는 456번이다. 숫자 4, 5, 6의 합은 15. 하도의 정중앙에 5토와 10토는 하느님 제帝, 황제의 자리를 상징한다.


 지금 세상은 부모와 스승과 군주를 똑같이 하느님처럼 공경했던 군사부 문화가 사라진 시대다. 스승의 품격도, 제자의 도리도 잊혀진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를 낳아주시는 분은 부모이시지만, 진리적 존재로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은 스승이다. 맹자의 어머니가 삼고초려를 했다는 고사에서도 보듯이 나를 참된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깨달음을 주시는 스승을 찾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4. 마지막 대결 :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두 발로 우뚝 선 깨달음을 얻은 영웅은 오징어의 가장 아래, 현실세계를 상징하는 방方의 아래 밑구멍으로 들어간다. 깨달음을 얻은 이가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 들어간다. 불가에서는 보살도의 실천이고, 기독교에서는 십자가의 삶이다. 

 지금껏 오징어 선 밖에서의 대결이었다면 깨달음을 얻은 이후, 진리를 만난 이후의 삶은 선 안으로 들어온 삶, 세상의 불의, 모순과 전면전을 벌인다. 모든 성인이 그러하셨듯이, 부처님이, 철인들이 그러하셨듯이, 숱한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들이 그랬듯이 적들이 가득한 세상의 중심에 들어간다. 인간의 진정한 구원을 위해서..


5. 완벽한 승리

 마침내 현실의 방을 넘어, 삼각형을 지나, 원과 삼각형이 겹쳐진 작은 삼각형을 발로 밟으며 게임은 끝난다. 그리고 만세를 외친다. 하늘에 속한 인간, 인간 중의 인간, 삼각형 중의 삼각형,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 위에 선 마지막 작은 삼각형을 밟은 인간, 그야말로 만세를 외칠만한 일이다. 세상에 숱한 성공이 있지만 이보다 더 큰 성공이 어디 있겠는가. 만만세세토록 환호를 지를 일이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닐 것이다. 영화감독이나 미술감독, 시나리오 작가는 보통 영민한 이들이 아니다. 미장센과 몽타주는 계획된 연출이다. 이들은 원방각과 숫자의 의미를 나름 연구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러나 제대로 알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의 폭력성, 선정성을 보면 말이다. 그들이 원방각이나 게임의 방식, 숫자에 담긴 의미를 알았다면, 인간의 존재 위격을 알았다면 그토록 잔인하게 혹은 저질스럽게 그려내진 않았을 것이다. 알고서도 이렇게 만들었다면 상업적 이윤에만 매몰된 저질스런 인간들이라 욕먹어도 싸다. 그러니 일단은 잘 몰랐을 것이라고 해두자. 이런 원형문화나 고대사는 공교육에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이라고 당최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리 만무하니 말이다. 


 그러나 어찌했든, 오징어 게임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이 원방각을 보게 되었다. 일상에서 쉽게 마주치는 너무나 단순한 이 도형들이 이런 크나큰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너무나 잔혹한 장면으로 가득 차 있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 인간의 운명을 그려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임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거냐. 목숨이 오가는 순간, 당신은 어떤 인간이 되기로 선택할 것인가?"


주인공 456번을 생각해보자. 감독의 의도도 마찬가지겠지만, 드라마를 보는 우리 모두가 456번을 응원했을 것이다. 경쟁하고, 거짓말하고, 비겁해질 수밖에 없는 상극의 세상에 살아가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진실되고 선하고 아름답고 싶은 마음을 누구나 갖고 있기 때문이다. 히어로는 누구나 될 수 있다. 또한 빌런도 누구나 될 수 있다. 욕망에 사로잡혀 살 것인가, 진선미를 추구하면 살 것인가. 단 한 번의 선택이 좌우한다. 이런 코드를 다 모아 보면 시즌1은 반쪽 승리다. 모두 죽고 저 혼자 살아남았지 않는가. 홀로 남은 자를 영웅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러니 시즌2를 기대할 수밖에. 


시즌 1의 마지막은 성기훈이 외국으로 떠나는 장면이다. 그는 지난날 자신처럼 지옥의 게임판에 들어가는 이들을 목격한다. 그리고 다시 게임판에 뛰어든다. 그의 붉은색 머리는 불사조, 혹은 왕을 상징하는 봉황이 아닐까? 시즌2가 나온다면 판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게임판 안에서 싸웠지만, 시즌 2에서는 게임판 밖, 매트리스 밖에서 싸우지 않을까? 시즌 2는 자신만 사는 것이 아니라, 게임판에 던져진 사람들을 살려내는 이야기로 풀어가지 않을까? 


456번이 우승을 하고 차에 실려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왔을 때, 비 오는 거리에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니체가 광장에 뛰쳐 나와 신이 죽었다고, 신을 죽인 이는 바로 당신이었다며, 이제 초인의 삶을 알려주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들을 귀 보는 눈이 없다. 헛 똑똑이들이다. 영웅과 성인은 몸을 낮춰야 한다. 그들이 들을 수 있게, 볼 수 있게. 어리석은 자들의 무관심을 교만한 이들의 비웃음을 견디며. 

 456번이 우리에게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외칠 때, 과연 그들은 귀를 기울일까? 돈과 명예, 경쟁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함께 사는, 함께 살리는 상생이 그 방법이라고 외칠 때,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만약 당신이 게임에 참가했다면. 어쩌면 진짜 게임은 시즌2가 될 것이다. 죽이는 게임이 아니라 살리는 게임이 될 테니. 

"게임의 참가를 원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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