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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Jan 05. 2024

우리는 '비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https://youtu.be/uf2M_PYC0Lk?feature=shared

오후 : 오늘은 <맹인의 거울>의 작가 '정무' 작가님을 찾아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충코의 철학>에서 한번 인터뷰를 하셨죠?

정무 : 네, 맞습니다.      

오후 : 저도 그 영상을 여러 번 시청하고 왔는데 오늘은 그때 다 못한 이야기를 조금 더 풍성하게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소설은 작가님의 첫 번째 소설입니다. 독자님들께는 아직 작가님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실 건데 작가님 소개를 간단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무 : 네, 안녕하세요. 필명 '정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올해 5월에 처음 <맹인의 거울>이라는 소설을 처음 출판을 하였고요. 올해 9월에 영문으로 번역을 해서 해외를 먼저 출판을 하고 10월에 다시 개정판으로 출간을 하였습니다. 원래는 직장을 4년 동안 다니다가 정말 우연한 계기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후 : 제목이 <맹인의 거울>이에요. 두 가지 키워드가 있잖아요. '맹인'과 '거울'. 어떤 의미인가요?

정무 : 이 책을 처음 썼을 때 모티브를 설명드리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은데요. 책 표지에서 보시는 것처럼 꺼진 핸드폰은 반드시 거울이 되는데, 항상 화면이 켜져 있으니까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는 거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맹인의 거울>이라는 제목을 바로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맹인이 볼 수 없는 두 가지라고 하면 '안'과 '밖'일 텐데, 첫 번째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느라 자신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의미가 있고, 두 번째는 항상 시선을 외부로 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외부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오후 : 제가 정확히 이해를 한 게 맞군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거울'은 지난번 <충코의 철학>에서도 한번 설명을 해주셨기 때문에, ‘맹인’의 의미가 궁금했습니다. 

 밖을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 중에는 또 세부적으로 나누면 타인을 보지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이 사회의 구조를 보지 못하는 것도 있겠죠. 그래서 질문을 드리는 건데요. 작가님께서는 “이번 소설을 통해서 '남들처럼~'을 부추기는 커뮤니티 너머의 어떤 사회적 구조를 밝히고 싶었다,”라고 하셨어요. 아마 집필의 중요한 이유일 것 같은데,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완벽한 육각형 인간

정무 : '남들'이 잘 정의되지 않는 개념이잖아요. 사실 왜냐하면, 정량적인 기준으로는 저희가 흔히 말하는 '육각형 인간'이라는, '육각형 인간'이란 단어를 널리 쓰고 있으니까요. 정량적인 요소로도 자산 등등 소득, 재산... 심지어 키, 체지방율도 이야기하기도...     

오후 : (배를 보고) 저는 육각형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확실히!

정무 : 저도 확실히 아닙니다! 모두 별모양, 별사탕이지, 육각형은.. 그런데 “'평균'이 있어, '남들처럼'이 존재해!” 근데 그게 사실은 통계적으로만 봐도 중위소득이 2023년에 200만 원가량, 207만 원 정도가 나오는데요. 정확하게 제시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이 '남들처럼'이라는 게 굉장히... '금조각'들만 뭉쳐서 '반짝반짝 빛나는 남들처럼' 되는 거예요. 근데 이제 사람들이 거기서 어떤 걸 느끼냐면 나는 왜 이 '정상성(남들처럼)'이 확보되지 않지? 그러니까 왜 '남들처럼'에 나는 소속되지 못하고 있지? '연결되지 못하고 있지?'라는 느낌을 줘야만! '연결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 하고 혹은 흔히 말해서 더 좋은 상태를 가진 어떤 사람들과 (나도) 연결될 수 있다는 어떤 믿음이 생길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그런 연결되고 싶은 마음을 줘야만 사람들이 거기 오래 머무르고 그래서 거기에서 계속 트래픽을 발생을 시키고 사람들이 머물러야만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거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 연결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모였으니까 어쨌든 많은 비즈니스들이 일어날 수 있잖아요. 그리고 묶어둘 수 있는 방법으로서 '연결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게 반복되는 구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 정량적으로 봤을 때 중위소득이나, 일반적으로 '중간' 정도는 실제로 그보다 훨씬 낮지만 더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꼭 그렇게 해야 된다고, 강요하고 부추기는 행태들 거기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비즈니스 문제... 

정무 :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그걸 만들어 낸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근데 사실, 제가 손에 붙들린 이 '거울'을 과연 뗄 수 있을까? 절대 못 뗄 것 같거든요. (스마트폰?) 네, 절대 이걸 놓을 수가 없는데 그래서 소설을 주제가 제가 써놓고 보니까 작가의 말에는 '이 구조를 밝히고 싶었다'라고 썼지만, 써놓고 보니, 이미 다들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음'에 더 가까워진 거 같아요.     

오후 : 마음이 되게 아픕니다

정무 : 많은 분들이 비교에 대한 피로감 박탈감에 대한 얘기를 되게 많이 해주시잖아요. 그럼에도 표족한 대안을 찾을 수 없는 것은 결국에 스마트폰(SNS)을 놓을 수 없고, 놓을 수 없게 돼 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음'으로 수렴하는 게 사실 개인적으로 답답한 감정이에요.      

오후 : 외국의 서평도 그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이번에 이 책이 외국에 번역되어서 아마존 킨들에서는 아시아 소설 9위 한국 역사 부분에서 10위에 올랐어요.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먼저 알려지기 시작했는데요. 서평에 보니까 "희망적인 내용은 아니다" 그렇게 밝은 내용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냉철하게 현재 한국 사회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무 :심지어 어떤 리뷰가 되게 인상적이었냐면요, 한 분이 별점 1개를 주셨어요. 별점 5개 중에 한 개를 주셨는데, 이분이 어떤 말씀을 하셨냐면 "이걸 읽는 내내 내가 너무 이상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 같고 적절하지 않은 사람, 사회부적응자처럼 느껴져서 정말 험한 말로요. “스스로 읽는 내내 내가 부적응자처럼 느껴져서 책을 덮었다. 난 이걸 읽을 수 없다.”라고 정말 이렇게 적어주신 거예요. 제가 서평을 어떻게 의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잖아요. 근데 너무 절절하게 그렇게 별점 한 개를 주시니까, 안타깝고, 사는 곳이 크게 안 다른가?  

영문판 A Mirror for the Blind 서평 중

오후 : 그런가 봐요. 서평 중에는 '한국 사회의 교육, 취업 상황이라든가, 이런 차이점은 서양과 다르지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부분은 동양과 서양이 서로 공유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얘기도 있더라고요. 별점 1점을 주신 분도 사실은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너무 공감이 되니까. 오히려 거기에 대해서..

정무 : 별점 100개 같은 1개를 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Kirkus Reviews라는 서평지에서도 <심사단 선정작>으로 선정해 주셨고 IndieReader 독립출판물만 따로 서평을 해주시는 곳에서도, "너무 고통스러울 정도로 동서양이 닮았다"      

오후 :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지금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거군요. 

정무 : 네, 되돌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좀 하고 있어요.     

"고통스러울 만큼 동서양이 닮아있다." -IndieReader 리뷰 중

오후 : 제가 이 책을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냐면요 <2030 세대 보고서>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소설의 형식을 빌린 보고서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자료로서의 가치도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옴니버스 형식이긴 한데 전체 이야기를 끌어가는 세 명의 친구들이 있어요. 어떤 인물들을 상징하는지 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정무 : 어떤 생각을 했냐면, 제 안에 있는 여러 가지 페르소나들이 있을 거예요. 분명히 그중에는 모순된 페르소나들이 있으니까 제가 항상 이제 갈등하고 고뇌를 하는 포인트가 생길 거예요. 그래서 그것들 하나하나 이렇게 적어가며 각각의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이제 그 캐릭터들이 작중에 등장하는 친구들인데 첫 번째로 '영백'이는 '불만족'에 대한 상징입니다.      

'동주'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고, 대학도 비교적(흔히 말하는), 작중 인물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별로 안 좋은 대학을 나왔어' 이런 얘기를 하는데 결국에는 가장 각광받는 직업인 프로그램 개발자가 되는 친구예요. 동주는 어떤 걸 상징하냐면 '전능감'을 상징해요. 

그리고 '인영'이는 그냥저냥 공부를 하고, 몇 년 동안 준비해서 공무원이 됐는데, 급여가 마땅치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작중에서 소개팅을 하는 장면에서 영 유쾌하지 못하는 일을 겪죠. 인영이 상징하는 것은 '무력감'이에요.      

오후 : 두 번째 동주는 '전능감', 전능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좀 쉽게 풀어 주시면?

정무 :  '전능감'을 쉽게 풀자면 "나는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이야"      

오후 : 아! 어떤 건지 알겠어요. "나는 (더 큰 일을) 할 사람인데", "내가 여기에서 이럴 사람이 아닌데", "난 더 (높은 곳을 갈 수) 있는 사람인데...."라는 생각!

정무 : 사실, 그런 마음이 숨어 있죠. 그 외의 다른 등장인물들도 상징성이 있긴 한데요. 영백의 연인이었던 '정윤'이 '자격심'을 상징을 했는데, '자격심'과 '전능감'은 굉장히 같이 가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이럴 사람이 아닌데, 하지만 어쩔 수 없지가 아니라 이런 마음이 많이 쌓이다 보면 어떤 게 생기냐면 반대급부로 분출이 되는 거예요. '아니! 난 다 할 수 있어' 나는 맨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찬물 샤워를 하고 아침마다 달리기를 하고 출근을 멋있게 하고 커피 한잔 딱 올려놓고, sns에 사실 딱 찍어서 올리면 아! 나는 '갓생'을 살았다, 이런 전능감-자격심을 상징하는 친구예요. 굉장히 관찰도, 분석도, 공부도 많이 했던 캐릭터였던 거 같습니다.

오후 : 별스타에서 많이 보는 캐릭터네요. 모든 걸 다 갖춘 듯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영의 경우에는, ‘무력감’, 내가 진짜 못해서 무력감이라기보단 '강요된 무력감'이라는 단어도 번뜩 떠오르네요. 

정무 : 그게 앞서 말씀드렸던 '남들처럼'이라는 단어의 희생양처럼 묘사를 좀 하고 싶었어요. 그걸 좀 진짜로 지적을 하고 싶었고 만족스럽게 살만한 환경은 상당히 많이 갖춰져 있는 것 같아 보여요. 외부와 연결되지 않은 상태만 보면 큰 위협이 없잖아요,      

오후 : 뭐 그런대로 괜찮은 삶이다라고

정무 : 유명인사분들께서도 말씀하시는 것처럼 몇십 년 전처럼 한국이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불만족이냐라는 그런 말들과 연결되는 포인트예요. 

오후 : '못 먹고살지는 않지 않냐'는 그런 말들...

정무 : 네, 인영이 느끼는 그 무력감은 어디서 오냐면, 정말 뭔가를 열심히 하긴 했어요. 프로필에도 적혀 있지만, 94년생인데요. 그 당시에 1순위 선호도 직업이 공무원이었어요.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 장래희망을 순위를 낼 때 항상 공무원이 빠지지 않았거든요.      

오후 : 심지어 1순위로?

정무 : 거기엔 역사적 배경이 있잖아요. IMF를 겪은 부모님들의 욕망이 초등학생 장래희망 설문지에 투영이 되니까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교육 쪽에서 캐치를 하고 육성을 했다는 생각도 하고요. 

오후 : 공무원 학원이 부쩍 늘어났던 시기죠?

정무 : 네 굉장히 많잖아요. 

오후 : 번뜩번뜩 떠오르는 강사님들이 있네요.

정무 : 인영의 무력감은 어디서 오냐면, 뭔가 열심히 했는데, 아웃풋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월세 내고, 작중에서 나왔던 청년저축 내고 그러고 나면 남는 게 진짜 근근이 딱 생존만 할 수 있는 정도만... 그럼?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 많은 인풋을 넣었나? 그래서 무력감을 느낀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무력감의 정의가 인풋을 넣었는데 아웃풋이 안 나올 때 느끼는 감정이잖아요. '효능감의 부재 = 무력감'일 텐데, '인영'은 그런 캐릭터예요.     

오후 : 친구가 세 명이잖아요. 그렇게 보면 '인영'이는 월급을 꽤 많이 받는, 성과급도 받는 다른 두 친구에 대해서 열등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정무 : 그래서 퇴근을 할 때, 그날 영백이가 올렸던 성과급에 대한 인증 SNS를 보면서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를 불만족을 하게 만드는 공간이 있는 거예요.      

오후 :같은 친구였고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정무 : 물론 모든 관계가 이렇게 수렴하진 않지만 예각화시켜서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실제 우리 주변에) 없진 않을 걸요!     


오후 :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평균 이하는 없어요. 그리고 제가 보기엔 다 멋있는, 잘난 사람들이에요. 왜냐하면 일단 이 세 명이 'In서울 대학교'를 졸업했고 여기 표현에서는 '하늘'로 되어 있지만 제가 짐작하기에는 'SKY' 대학일 것이고, 그리고 굴지의 대기업에 취업(정직원)을 했고, 프로그래머고 그리고 또 한 가지 저는 젊음이라는 것도 한 가지 부러운 점이에요. 다 부러움을 가진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굉장히 힘들어해요. 그래서 제가 떠오른 생각은 요즘 참 많이 회자되는 표현인데 '상대적 빈곤감', 이런 말이 떠오르네요. 

정무 : 흔한 말로, 잘난 사람들만 ‘일부러’ 넣은 이유는 '잘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를 쓰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진짜 힘들면 비교가 안 돼요. 남을 볼 여유가 없거든요. 그런데 진짜 힘든 상황에 대한 묘사는 사실 하기 어려웠던 점도 솔직히 있고요. 조심스럽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방금 전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럼에도 먹고 살만 하는데 이 붙들린, 벗어날 수 없는 거울 때문에 (스마트폰, SNS로 빚어지는) 힘든 상황을 좀 더 예각화시키고 싶었던 거죠. 계속 '벗어날 수 없음'에 대한 얘기가 반복이 되는 거 같아요.      


오후 : 제가 알기로는 직장인들의 커뮤니티로 국내에 '블라인드'라는 게 있다고 들었어요. 블라인드가 맹인이란 뜻을 갖고 있잖아요. '블라인드'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신 것 같고 여러 SNS, 커뮤니티가 있는데, 현실에는 '블라인드'이고 소설 속에는 '스크린'이라고 하는 커뮤니티를 가져오신 이유가 뭔가요?     

정무 : 커뮤니티의 성격이 굉장히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SNS에 비해 독특하다고요? 상당히 독특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게 가장 한국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닉네임이 있는데 옆에 명찰이 있어요! 이렇게 명찰이 있어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이 어느 소속인지는 안다는 거죠? 마치 '나이'처럼요.      

오후 : 아! 어떤 건지 조금 이해가 됩니다.

정무 : 이미 항상 뭔가 이렇게 위계를 나눠요. 위아래를 나눠요. 근데 이 커뮤니티들은 그걸 나누기가 너무 좋게 만들어 놨다고 생각해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가 사회적 아비투스를 딱 나눠 버린다! 그게 굉장히 많은 양태를, 많은 전개 양상을 바꾸는 거예요. 

 왜냐면, 제가 첫 직장이 독일에 있었어요. 국내로 들어왔을 때 블라인드에 가입하고 '아무개 회사'로 제가 똑같은 글을 써봤어요. 그런데 제가 직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똑같은 글과 반응이 전혀 달라요. 

오후 : 똑같이 잘못을 하더라도?

정무: 용서가 돼요.

오후 : 어떤 사람은 비아냥대고? 그래서 한국적이다! 

정무 : 진짜 재밌는 현상도 있었어요.  영어로 번역을 하면서 영미권 독자들 - 미국, 영국, 인도, 캐나다든지 그런 독자들이 읽을 수 있게 되잖아요. 근데 그분들의 리뷰를 보면 진짜 흥미로운 게 "우리랑 크게 안 다른데?"라는 얘기를 해요. (우리랑) 다르지 않다. 우리도 구글 다니고, 하버드 다니고 "하버드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이런 문장도 실제로 쓰거든요. 거기서도 마찬가지긴 해요. 근데 우리나라처럼 명함을 대놓고 이렇게 드러내는 커뮤니티는 못 봤어요.      

오후 : 똑같은 건 아는데, 그런 분위기는 다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걸 과시하고 아예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무 : (한국 사회는) 그게 미덕이 된 거죠. 이것이 미덕이 됐다고 느끼는 건 항상 따라오는 말이 있어요. "억울하면 너도 공부해!"     


오후 : 예민한 문제일 수도 있고 저도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100만 유튜버, 투자전문가 '가치'라는 분이 나와요. 그러면서 "자신의 부는 노력 덕분이다" 이렇게 최선을 다했다. 물론 소설의 끝에 가면 반전이 있긴 한데 이건 독자님들을 위해서 비밀로 하기로 하고, 현실에는 부와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러 강연자, 유튜버들 이런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노력하면 된다"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 "너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한 거야, 성공하지 못한 거야"라는 이야기에 어떻게 생각하시는? 진짜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정무 : 절대 그 인플루언서들이 모르지 않을 거예요. 절대 모르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정확히 뭘 아느냐 하면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건 알고 있어요, 그분들이 왜냐하면 제가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던 인플루언서들도 몇 분 생각이 나거든요. 그분들을 깊이 들여다보면 어떤 말씀들을 가끔 하시냐면 "나는 운이 좋았어" 그런 얘기하세요, 사실 나는 운이 좋았어. 그런데 저명하신 인플루언서들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정말 그것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제 생각엔 그래요. 공통적으로 내보내는 콘텐츠의 주제들도 "남탓하지 마라"예요. 물론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은 좀 있어요. 좀 이따 말씀드릴 텐데 근데 정말 그분들이, 제 생각에 진짜 의중은 절대 모르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런 콘텐츠를 제작하고 계속 이렇게 업으로 하시는 분들을 이게 안 되는 경우도 알기 때문에 그걸 굉장히 잘 만드신다고 생각하거든요. 노력만으로 안 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노력을 하라고 오히려 더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바꿀 수 없는 구조는 있어요. 이미 사회적 불평등, 상대적 빈곤 지수도 미국이랑 같이 올해, 8위를 기록했다고 해요. 미국이랑 같은 수준으로 상대적 빈곤이 진행이 됐다고 얘기를 하고 그런데 구조를 바꿀 수는 없으니까. 인플루언서들도 사실은 그래서 그 앞에서 뭐라도 할 수 있는 거는 어떤 개인에 대한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걸 그분들이 안다고 생각해요. 

    

오후 : 지난번에 류대성 작가님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공동체의 문제에 있어서는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분명히 사회적인 구조가 있기 때문에 이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문제로 들어가면 사실 정치 문제로 갈 수밖에 없다, 또 이건 사실 힘들잖아요. 오랫동안 고민하고 토론해야 될 문제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 고민을 끌고 가기 위한 (문제해결을 위한) 체력도 필요하다는 얘길 나눴어요. 하지만 이제 이야기 방금 하셨던 것처럼 한 개개인으로 봤을 때는 그래서 이제 그런 인플루언서들이 노력을 강조한다!      

정무 : 알고 있지만 할 수 있는 게 그거 밖엔 없습니다. 하지만 대중 앞에서 이걸 얘기할 순 없겠죠. 왜냐하면 정말 당장 생업이 어렵고 저조차도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마존에서 어느 정도 판매가 생기지 않았을 때는 삶은 계란만 먹었어요. 그런 시간도 있었어요. 그렇게 되니까 진짜... '공론화에 참여한다?' 혹은 앙가주망 engagement(참여), 이렇게 사회 참여를 해서 사회구조에 대해 논의를 한다? 안 될 것 같아요.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래서 근로시간은 더 늘어나고 일하지 않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더 양질의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드니까 "양질의 생각을 할 시간이 줄어든다" 점점 이 굴레에 빠지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든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어떤 방법이,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노력이라는 걸... 안타까운 현실 말하면서도 좀 씁쓸해요.


오후 : 오늘 소설의 내용이 아무래도 안타까운 내용들이 되게 많아요. 현실의 문제니까 저의 분야도 그렇게 편한 곳이 아니에요. 상당히 경쟁이 심하고 늘 평가를 받는 분야입니다. 선배들, 동료들의 이야기를 사실 들어보면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싶을 정도로 그 성과에 대한 평가, 실수에 대한 관용이 없는 참 이렇게 냉정한 사회가 있나 싶을 정도의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한편 생각하면 또 그 경쟁에서 이겨낸 사람들 입장에서는 또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이건 어떻게 좀 바라봐야 될지? 문득 생각이 나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준비된 질문은 아닌데...     

정무 : 저도 굉장히 흥미롭게 들었는데요. 그분들 입장에선 나는 진짜 힘들게 노력해서 이 결과를 얻었는데 이걸 부당한 방법으로 얻었다고 결과를 부정해 버리는 게 삶 자체가 부정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한 고등학생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의대 준비반을 갔다고 생각을 해보다면, 그 학생의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와서 "그거 노력이 진짜 노력인 거 같아?" 아니면 계속 이렇게 그 결과를 부정하고 부정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자기의 삶 전체가 부정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넌 조건이 좋았지 않았냐! 부모님이 좋지 않았냐 학원, 과외를 받을 수 있지 않았냐? 그 사람의 실제 개인의 노력은 무시당하는 그런 경우도 참 많다! 그것조차도 스크린에서처럼 남을 재단하는 거죠. 그분들 입장에선 차별당한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오후 : 입장이 다르니까 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아까 그 세 명의 친구 중에 (인영) 무기력이 있었잖아요. 무기력이 입장에 서있는 사람은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또는 형편이 좋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런 걸 좀 미리 알았다면 이런 입시제도라든가 이런 정보, 지원이 있었다면 이런 생각도 분명하실 거란 말이에요.      

오후 : 영백 같은 경우는 반면에 그게 너무 자연스럽고 그렇다고 해도 자기는 노력을 해야 되고 공부를 해야 되는 그런 자신의 노력이 있었는데 이런 게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 테고, 그런 이야기를 많이 친구 했다면

정무 : 심지어 영백이는 월세 보증금을 내줄 부모님이 계셨죠. 그런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서로 바라보는 게 달라서 또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그래서 저는 어떤 걸 느끼냐면 여기에 숨은 질문이 있다는 생각을 해요, 서로한테 '네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

그 질문은 항상 많은 사람이 서로에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다음 질문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저조차도 마찬가지고 '나는 다른 사람들한테 뭘 해줬을까'란 질문을 한 번 더 한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사실 저는 이게 어떻게 연결이 되냐면 '너는 더 좋은 형편에 타고나서' '더 좋은 인프라를 갖춰서 더 좋은 조건을 얻었어' '따라서 너는 자격이 없어' 이렇게 연결이 되는 거죠. 반대로 생각해 보면 '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지 않았어' '(상황을 탓하고) 그래서 너는 결과가 안 좋아' '그래서 너는 나를 탓할 자격이 없어' 이렇게 연결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서로한테 뺏겼다는 느낌을 받는 거 같아요. 그런데 저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건강한 채무감'이란 게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오후 : 건강한 채무감?

정무 : 예를 들어, 오늘 PD님이 저한테 커피를 사주셨어요. PD님께는 어쩌면 작은 걸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걸 받았을 때 이게 크게 느껴지고 뭔가 제가 뭔가 다시 돌려 드려야 될 것 같은 채무감이 들 때, 건강한 관계가 형성 유지가 되는 거 같거든요.      

오후 : 대가 없는 배려임에도 불구하고 목적 없는 배려임에도 불구하고 채무인데 나쁜 의미에서 채무가 아니라?

정무 : ‘건강한 채무’라는 워딩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 질문들을 계속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나는 저 사람한테 뭘 해줬지"라는 질문을 하루에 한 번씩 해보기      

오후 : 상대방에 대해서 책임을 전가하거나 상대방이 노력한 거에 대해서 폄하하거나 또 그게 결국에는 나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들을 주변으로 돌리는 것 때문에 생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 그걸 돼 바꿔서 ‘건강한 채무’라는 표현을 하신 것 같아요. 건강은 관계죠. 상대방을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고 존중해 주는      

정무 : 서로가 건강한 채무감을 갖고 있다면 좋은 주고받음이 되먹힘이 될 테니까요. 그게 '관계의 지속'이라고도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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