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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Feb 12. 2024

세작, 남은 1%를 기대하며

정말 재밌는데, 1%가 남았다. 그 1%가 채워지길 바라며 이 드라마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세작, 매혹된 자들>이 추석연휴 동안 9회를 넘어가고 있다. 드라마의 재미는 조정석과 신세경 덕에 반이 채워질 것이고, 조연들과의 캐미 특히 상화의 귀여운 우직함을 보는 즐거움에 나머지 49%가 채워진다. 그리고 나머지 1%가 남았다. 화룡점정,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용은 날아갈 수 없다. 그저 1%이지만, 이 드라마가 날기 위한 필수요건이 아닐까?


'입신'의 경지에 오른 '이인(조정석)'은 아무래도 그 옛날 '주공 단旦'의 행보를 따를 것 같다. 형 인조의 죽음을 계획한 이들, 설령 그것이 외숙부와 어머니라 하더라도, 그 죄를 만천하에 드러낸 뒤 문성대군에게 선위하며, 자신의 외롭고 긴 바둑을 마치지 않을까 상상한다. 그가 후사를 보지 않는 이유는 그래야 설득력이 있다. 외척의 세가 정국을 좌우했던 조선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인의 섭정은 불가능한 구도였을 테다. 결국 이인은 문성대군이 성군의 자질을 발현하기까지, 형을 죽인 폐륜왕이란 오해를 견디며 '잔인한 왕'을 연기할 것이다. 주공 단이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를 것이란 모함을 견디었듯이 말이다. 이인은 인조의 고명顧命을 그리 완성할 것이라 추측해 본다.

 불의한 방식으로 왕에 오른 '이인'을 끌어내리기 위해, 더없이 소중했던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배신'에 복수하기 위해 강희수는 남장여인 '몽우'로 돌아왔다. 왕과 독대하여 바둑을 두는 자, 기대령이 되었다. 바둑은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바둑을 마치면 복기를 한다. 복잡하고 긴 대국의 그 많은 수를 어떻게 다 기억하고 복기할 수 있는지 놀랄 테지만, 그건 한 수 한수마다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을 혼신을 다해 살피고 두는 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로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맞수 강몽우와 이인은 바둑을 두며 말없는 말을 주고받았을 거다. 그 안에서 서로의 마음을 탐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애써 추측할 수 있는 두 사람의 관계는 '금란지교金蘭之交'와 '백아절현伯牙絶絃' 정도일까? 그런데!

 8화에서, 남장여인으로써 기대령에 오른 희수는 이인에게 '여인'의 정체를 들키고 말았다. 이때 몽우가 내기바둑의 소원 찬스로 사용한 것은 입맞춤... 이 무슨 어이없는 한 수라니..  드라마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스토리 라인이 숨겨져 있는 것인가? 이 뜬금없는 전개라니. 이인은 무엇 때문에 희수, 아니 몽우에게 이리 끌렸던 것일까, 신세경이라서? 그렇지, 나 같아도..... (아니, 잠깐 정신 차리자. 휴!)

 희수야 그렇다 치자. 그럴 수 있지. 오래전부터 연모했던 이었으니, 어디 말처럼 마음을 끊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던가. 여인임을 들킨 마당에 '내기바둑 찬스'를 쓰는 것도 고수의 처신일터!

 다만 이인에게는 몽우를 끊어낼 수 없는 감정, 사랑으로 변모할 감정선이 너무 생략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시청자는 당연히 그가 남자이고 그녀가 여자임을 전지적 시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니 이런 생략쯤이야 너그러이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빠른 전개로 진작에 여자임을 들통나길 바랐을 이도 있었을지도. 다만, 이인의 내러티브에서는 몽우를 그리워하며 괴로워하는 장면이 잠깐의 회상씬 정도로 퉁치고 넘어갔으니, 같은 주인공임에도 감정을 박탈당한 기분이 들 거란 생각이 든다. 어찌했든 재미의 99%를 꽉 채워주는 이들의 배신과 사랑, 정적과 연인의 감정이 묘하게 뒤틀린 구도는 나무랄 때 없이 흥미롭다. 이제 남은 회차에서 1%만 더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인이 왕이 되어야만 했던 당위성 1%>

 드라마의 첫 화는 이인이 전장에서 살아남은 한 소년에게, 내리는 비를 가리도록, 갓을 씌워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 병사가 그 갓을 빼앗아 진흙바닥에 던지며 돌아설 때, 그는 정치란 어떠해야 하는지, 저무는 명과 떠오르는 청 사이에서 조선의 실리적 외교는 무엇인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권력자들의 욕망에 끌려 나와 허무한 죽음을 맞는 수많은 백성들을 보며, 통치자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를 고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몽우를 만난 뒤로 정치가로서의 이인이, 왕으로서의 이인이 모두 사라졌다. 궁궐 속 그들만의 권모술수는 어찌 보면 지금의 여의도와 판박이 일지도 모르겠다. 백성은 사라지고, 몽우와 주상, 그리고 대비전의 대립만 부각되고 있다.

 바둑 돌은 사람이요. 바둑판은 세상이라면, 흑돌과 백돌이 남녀의 이야기로만 채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위와 아래, 큰 것과 작은 것, 지배자와 피지배자, 백가지 사람들(百姓) 이야기로 채워져야 하지 않을까? 이인이 권력으로 지켜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첫 화에서 고심하던 이인이 9화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용포를 두를 적에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뒷모습에서 카리스마적 왕을 묘사하는 듯 하지만, 어디에서 성군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즉 왜 그가 왕이 되었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없다. 외숙부인 영부사와의 갈등은 통치이념에 대한 대결이 배제되어 있으니,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인이 왕이 된 조선은 그저 평화로워 보일 뿐이다. 한없이 평화롭기에 같은 편끼리도 사소한 걸로 트집을 잡아 돌아서는 소인배들 같아 보인다. 적이 외부에서 침범할 때에는 내부의 갈등은 가라앉기 마련이다. 대립과 갈등의 방향이 바뀌면 적도 동류가 될 수 있으니, 부디 첫 화에서처럼 청이 그 악역을 맡아주면 고맙겠다.

 이인의 스승, 강항순(손현주 분)은 그의 딸 희수에게 이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천하를 호령하고 휘어잡을만한 재주와 위세를 지닌 분이시다. 그래서 위태롭고 위험하다. 또한 안타깝고 안쓰럽다. 지존의 자리엔 오를 수 없는데 지존의 숙명을 타고났어. 대군께선 뜻이 없으셔도 역심을 품은 자들이 부나방처럼 달려들 것이다.”

 지금껏 궁궐 속 권모술수로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이제 천하를 호령하고 휘어잡을 재주로 청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정치를, 전쟁의 화마에서 간신히 다시 자라나는 민초들을 위한 정치를 보여주면 어떨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문성대군이 이인을 아버지 삼아 성군의 자질을 배워나가면 어떨까? 그 사이 왕이 되지 못하지만 왕을 자신들의 손위에 올려놓길 바라는 이들이 쉼 없이 틈만 나면 흔들 것이니.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한 이인에게 때마다 희수가 혜안을 준다면 어떨까? 모든 걸 이룬 뒤에서 용포를 벗어던지고 용상에서 내려올 용기마저 줄 수 있다면 어떨까? 권력의 끝자락에 서서도 미혹에 흔들리지 않고 내려올 수 있어야 이인이 왕이 되어야만 했던 당위성이 힘을 얻을 것이고, 배신과 의혹이 위태롭게 채워져 있던 몽우와 이인 사이는 믿음과 사랑으로 채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몽우가 계획한 반정은 아름답게 막을 내릴 것이다.



<버려진 돌 하나가 없도록 하는 1%>

 스토리를 짠다는 것은 바둑과 무척 닮았다. 도입부에는 포석을 두고, 전개에는 관계가 얽히고 수싸움을 하고 종반에는 끝내기를 하듯 얽힌 갈등을 해소한다. 공격과 방어에서 누구도 섭섭지 않은 공식 같은 바둑을 정석이라 한다. (조정석도 정석인데..) 단 그리 정석만 두면 재미가 없으니, 비튼다. 음모와 술수가 재미를 더한다. 그런데 이런 비튼 수가 번잡해지면 바둑은 지저분해진다.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지저분해진 관계도가 모두 당위성을 갖도록 하려면, 그 치밀함을 감당해야 할 작가의 어깨가 강인 해야 할 텐데... 세작의 전개는 지나치게 권모술수에만 치중하고 있고 바둑은 지저분해지고 있다.


 2013 KB바둑리그 5라운드(6월 29일)에서 '장생'이 나왔다. 한국바둑 역사상 처음이었다. '장생'은 같은 수순이 반복되며 어느 양쪽이 양보하지 않는 한 끝나지 않으므로, 무승부다. 천년에 한번 나온다고 해서 바둑의 우담바라라고도 불린다. 청의 사신이 내기 조건을 걸 때, 이미 '장생'이 나오겠구나 예상했다. 그리고 몽우는 말한다. "운이 좋았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를 연상케 한다. 우리의 삶은 우연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면을 보면 필연적이다. 이야기이니 조금 더 필연성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이인의 서사를 생략하기보다는... 영부사의 분노에서 '혈육'을 강조하기보다는...


 남은 1%를 기대하고 있다. 복잡하게 놓인 돌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질 때 두고두고 이 드라마는 복기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버려진 대사 없이, 버려진 인물 한 명 없이 잘 갈무리할 수 있는 끝내기가 되었으면 한다.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곤궁에 처한 돌도 살릴 방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5화 기대령 시험에서 몽우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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