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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Aug 13. 2022

박순애, 아니! 어른들에게 선언한다



 '염장 지르다.'

우리말인지, 한자어인지, 어디에서 온 말인지는 어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어감만은 확실하게 와닿는 말입니다. 만약 한자어라면 뜨거운 갯벌에서 나는 독한 기운을 이르는 '염장炎瘴'과 '불을 붙이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지르다'가 합해진 말일 테니, '염장 지르다'는 말의 뜻은 '맘 속에 뜨겁고 독한 기운을 끼치다.' 정도의 뜻이 될 것입니다(국립국어원 자료 참조). 속담으로 보면, '불난 집에 기름 붓기'에 해당되겠지요.


 부모들의 가슴에 염장을 질렀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박순애 씨는 모든 논란은 나의 불찰이라 밝히며 취임한 지 한 달여 만에 사퇴했습니다. 들리는 바로는 7개 권역 대학 총장협의회 연합 간담회, 이름은 참 긴 이 자리에서 자신은 일처리가 남들보다 빨라 내년 3월이면 물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합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뭐든 빨리 처리한다는 말은 혹 '독단獨斷'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는지, '불통不通'이 아니었는지 묻게 됩니다.


이 모든 결정에서 그 정책의 결과를 고스란히 받게 될 당사자인 아이들에 대한 고심은 없었습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몇 개월의 나이 차는 신체발달과 학습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은 아이를 키워본 부모들은 대다수가 경험적으로 아는 사실. 그래서 혹 우리 아이가 생일이 늦어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진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민중은 개돼지" -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정치인들의 망언이야, 실수이든 어떤 의도를 가진 정치적 발언이든 익히 익숙합니다. 그럼에도 유독 교육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이런 망언에 더더욱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저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만드는 교육정책에 우리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이런 걱정 때문이 아닐까요.

'백년대계百年大計'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으래 나오는 말입니다. 10년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심는다는 말도 있지요. 인재를 양성하는 일의 중요성을 비유하는 말인데, 그 좋은 의미에 이제는 이런 의문을 갖게 합니다.

'이 백년대계에 정작 아이들의 행복이 빠져있다면?'


"만 5세 유아들에게 갑자기 학교 책상에 앉아 공부하라고 한다면 이 아이들이 느낄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될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만 5세 초등 입학 정책은 국가 차원의 아동학대이다." 이번 사태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교실이 아닌 교육청 앞 시위 자리에 선 일선 교사의 말입니다. 그가 진보성향의 교원 단체에 소속되어 있기에 더욱 비난의 목소리가 높은 것이라 지적할 수 있으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이번 '5세 아동 초등학교 입학' 문제는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등을 돌리는 것 같습니다. 이젠 전 장관이 되겠네요.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은 이 모든 결정이 자신의 독단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정부든 어느 조직사회든 한 부서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 독단으로 처리할 수 있는 매우 적습니다. 결재시스템이 있고, 토론과 의견수렴의 과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는 했으나 그 모양새가 볼썽사납습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춘다.' 마파람은 뱃사람들의 은어로 남풍南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파람이 부는 날은 비가 자주 내렸다고 하죠. 즉 이 말은 평상시엔 두 눈을 밖으로 내놓고 돌아다니던 게가 마파람에 비가 올까 두려워 눈을 감추고 숨어버리는데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마도 대중의 항의와 교육계의 반응은 마파람 정도로 비유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의 사퇴 이후에도 불통에 대해, 독단에 대해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아져가고 있으니 말이죠.


이미 커버린 어른은 다시 눈높이를 낮추기 어렵습니다. 이미 세상의 풍파를 맞아본 어른들은 아이들이 맞게 될 경쟁과 소외의 세상을 걱정합니다. 선행학습을 시키고 싶고, 다른 아이들과 조금은 더 경쟁에서 우위를 갖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부모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경쟁이 변할 수 없는 상극 세상의 법칙이라면 백년대계에는 아이들의 실력을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잃지 않도록,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즐거워하는지 충분히 느끼고 경험하게 해주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긴 인생에 비하면 그 짧은 취학 전 시간은 오롯이 부모와 세상으로부터 보호받으며 마음껏 놀고 마음껏 웃도록, 아이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가 아니겠는가-


이미 커버린 어른들은  이상 아이들의 눈높이에는 맞추진 못하겠지만,  수만 있다면 부조리하고 부당한 시스템없애주는 것이 어른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하는

오후의 B급 평론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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