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일의 B컷 #019
상사: 00 씨가 지금까지 여기서 도대체 한 게 뭐가 있나요?
나: 음… 저는 지금까지 이러이러한 일을 해왔고, 몇 가지 사안들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상사: 하하하,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말씀하셨던 일들은 모두 다 제가 만들어 준 거 아닌가요?
나: ….
상사: 순수하게 00 씨 본인이 스스로 기획해서 만들어 낸 것들이 뭐가 있는 건지 묻는 겁니다.
나: 네, 말씀을 들어보니 지금까지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네요.
상사: 너무 서운하게 듣지 마세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이니까요. 우리 더 힘내 봅시다.
나: …. 예, 알겠습니다.
10여 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만큼 적잖이 내상을 입거나 맛이 간 적도 있었다.
번아웃에 빠져보기도 했고,
개인적 욕심에 신중치 못한 퇴사를 했다 안 좋은 결과를 얻은 적도 있었고,
실제 일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드러누운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맛이 간 적은 또 처음이었다.
그분은 내가 지금껏 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잘할 수 있으려면 이런 식으로 쪼아야(?) 더 잘 될 거라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그 순간 나는 ‘지금껏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무능한 직원’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 같았고, 실적은 더욱더 아래로 내려가기 바빴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른 뒤 그때 그 순간을 떠올려보며 ‘확증적 편향’의 무서움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유능한(또는 보다 더 유능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직원을 무능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상사의 의구심이다. “저 사람은 무능하고 불필요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의심의 싹은 무섭게 자라나기 시작하고 이를 더 강화하기 위해 더욱더 상대의 부정적인 부분에 집착한다. 이를 느낀 직원들은 점점 의욕을 잃게 되고 상사의 의심은 확신이 된다. 결국 그는 진짜로 ‘무능한’ 직원이 되어 조직을 겉돌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더 나은 성과를 얻기 위해 부하 직원을 질책하는 것도, 자극하는 것도 조직 내에선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본인의 생각이나 스타일과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의심부터 하는 덫에 빠진다면, 결국 본인도 무능한 직원들에 둘러싸인 무능한 상사로 전락할 수 있음을 한 번쯤 기억했으면 한다.
#장규일의B컷 #부하직원을무능하게만드는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