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온라인 강좌를 녹화하고 왔습니다.
예상하지도 못한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한달 동안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준비를 하며, 아이들 셋이 깁스를 하고, 남편은 해외출장을 가고, 아이들은 돌아가며 감기에 걸리고.... 강의안을 다 만들고나서는 저작권 문제가 발생해서, 새롭게 다 강의안을 만들어야했지요. 생각지도 못한 고난의 연속이었어요. 내가 강좌 준비를 하는 게 맞나 싶고, 녹화날이 다가오면 올 수록 머리는 새하얘지고, 아팠으면 좋겠고, 녹화하는 길에 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의하러 가는 날, 텀블러에 담았던 물이 새어, 가방 안이 다 젖고, 비싼 에어팟은 분실했어요. 내가 저주에 걸렸나? 싶더라고요.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5시간 가량 강의 녹화를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많은 어려움 속에도 무사히 마친 내 자신이 대견했어요. 결과가 어찌됐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기때문에 후련했고,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이 날은 또 엄마의 생일이기도 했기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죠.
강좌 녹화를 잘 끝냈고, 엄마에게 생신 축하한다....라고 말하기도 전에 엄마는 제게
"니가 강의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이 불쌍하다. 환경이 엉망이잖아. 환경이."
"무슨 환경이 엉망이라고? 내가 아이들을 엉망으로 키우고 있다는 말이야?"
"아니... 니가 강의 준비하는 동안 집안꼴이 엉망이었을거 아냐. 그 생각만하면 아이들이 불쌍해."
나는 그냥 전화를 끊아버렸어요. 그리고 온몸에 힘이 풀리고, 40년동안 쌓아둔 분노가 온몸을 휘감았어요.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었어요.
"엄마,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내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면서 어떻게 그래? 그리고 내가 이 강의를 준비한다고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면서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어떻게!! 우리집에 와 봤어? 우리 집이 엉망인지 봤어? 그리고 환경이 엉망이어서 우리 아이들이 걱정이 된다면서 도와준적 있어? 엄마는 집이 깨끗한게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도, 나는 엄마가 집을 아무리 깨끗하게 해도, 좋은 환경이었다고 한번도 생각한 적 없어! 엄마는 항상 이런 식이지. 도와주는 것 없이, 잘못된 것만 지적하고 화내고. 엄마가 진정으로 나를 우선시 해준 적이 있어? 엄마는 항상 엄마 문제로 바쁘게 살아왔잖아. 항상 날 외롭게 만들었잖아. 우리집이 엉망이어도, 엄마는 내게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 엄마 삶을 내게 투영하지마! 엄마가 만들어준 환경이 내게 최악이었어. 그런 엄마 밑에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
머릿 속에 온갖 말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치유가 됐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엄마와의 아픈 기억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어요. 억울함과 분노, 절망, 외로움이 온몸을 휘감았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어찌나 멀고 힘든지. 왠지 집에 들어가기 싫어, 편의점에 앉아서 삼각김밥을 먹는데, 눈물이 났어요.
심리학을 공부하고, 사람들을 치유하는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내 안에는 엄마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 마음을 제가 꼭 안아줬어요.
"누가 뭐래도, 그게 너의 엄마여도.... 너는 잘하고 있고,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아이들에게도 너의 삶에게도 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는 걸 알고 있어. 우리 모두가 그렇듯, 엄마도 엄마의 열등감이라는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어.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너에게 상처줘서는 안되지. 니가 힘들고, 슬프고, 아프다는거 나는 알아. 고생했어. 한달동안 니가 노력한 거, 나는 알아. 나는 알아. 나는 알아. 고생했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것 축하해. 고맙다. 너의 삶을 잘 살아줘서."
온라인 강좌 녹화를 하며, 나의 무능함이 세상에 들키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을 마주했고, 엄마의 말로 나의 존재를 무시당하는 듯한 아픔을 통해, 자기양육(self-parenting)의 의미를 다시 돌아봤어요. 그리고 제 삶을 돌아봤어요.
아들러는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는 그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다."
라고 말했답니다.
어릴적부터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칭찬, 비난, 기대, 평가 속에서 우리 대부분의 안에는 자기비난, 자기검열의 목소리가 큽니다. 나의 장점보다는 나의 단점이 너무 많이 보이고,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확인받아야 안심이 되지요.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기보다, 타인의 기준에 의해 갇혀 살고 있어요. 저 또한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음을 여실히 느꼈어요. 이 두 가지 경험이, 타인의 기준에 갇힌 삶이 아니라, 나만의 깊고 풍요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마주해야하는 관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핸드폰으로 들린 엄마의 목소리가 떠오를 때마다 저의 심장을 찌르는듯한 고통을 느낍니다. 타인에 대한 원망은 곧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의 또 다른 모습임을 알기에, 그저 조용히 저의 심장에 두 손을 얹어 사랑과 믿음과 용기를 보냅니다.
"니가 바란 모습과는 달랐지만
엄마도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너에게 주었어.
이제 너는, 너가 바라는 사랑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어.
이제 너의 삶을 살 수 있는 때가 되었어.
너의 삶으로 훨훨 날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