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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Dec 20. 2018

향기를 남기고 떠난 그녀

세 살 둘째 딸. 쉬는 곧잘 변기에 하는데 응아는 아직도 바지에 실수를 한다. 이 문장을 읽자마자 여러분들은 글 제목이 뭘 뜻하는지 짐작하시리라...

셋째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다. 첫째와 둘째가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은 후 열심히 베란다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갓난쟁이에게 수유를 하며 안방 창문을 통해 베란다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또 저러다 싸우는 건 아닐까....  또 저러다 한 명 우는 거 아냐?... 제발 이 수유가 끝날 때까지만 아무 일 없어라!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첫째는 이리저리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데 둘째가 심상찮다. 활동반경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오빠가 노는 것을 보며 웃지만 활짝 웃지는 못한다. 어딘가에 신경이 쓰이는 표정. 앉지도 걷지고 서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 그래... 저건 바지에 응아를 했다는 신호다. 확실하다. 방금 기저귀를 벗겼는데... 언제 어느 때 바지에 응아 할 수 있는 우리 딸의 잠재력을 깜빡한 엄마의 실수. 어쩌겠어. 침착하자.

그때 들려오는 첫째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

"엄마, 달님이 쉬해!"

두둥, 두둥, 두둥.... 믿고 싶지 않은 그 말. 촉촉이 젖어가는 바지, 발 밑으로 흘러나오는 쉬. 그리고 함께 흘러나오는 짙은 밤색의 그 무엇. 라랄라랄라랄라~ 발랄하게도 내려오는 그들. 캐발랄한 그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비명소리 으아아아악~

나의 비명소리에 놀란 둘째는 엄마~를 외치며 안방에 있는 나에게로 달려온다. 나는 황급히 셋째를 내려놓고 둘째에게로 뛰어간다. "달님아 멈춰 멈춰 멈춰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거기 서! 엄마가 갈게!"

우리 딸이 이렇게나 빨랐던가. 베란다에서 거실을 가로질러 안방 문 앞에 까지 온 그녀. 그녀가 걸어온 선명한 발자취.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전속력으로 그녀를 낚아채서 화장실로 데려갔다. 바지를 내리고 팬티를 내리니,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한 그들이다. 너 어제 응아 하지 않았니? 도대체 얼마나 먹었길 때 또 이렇게 나오냐? 씻어도 씻어도 어디선가 계속 나오는 어마 무시한 그들. 세 돌도 되지 않은 아이의 몸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든 그들의 정체.

둘째의 몸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니, 어디선가 익숙한 향기가 온 집 안에 가득하다. 그래. 베란다와 거실에 선명한 우리 딸의 족적이 있었지. 걸레를 들고 닦고 닦고 닦고. 음.. 이상하다. 그럼에도 또 남아있는 이 향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의 티셔츠 앞에 검 갈색의 그녀의 흔적. 하아... 안방에 가서 얼른 옷을 갈아입는데, 둘째 딸이 엄마의 표정이 심상찮은 것을 감지하고 부끄럽고 조심스럽게 애교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힐끔힐끔 엄마를 쳐다보며 한 말

"엄마 사랑해"

왠지 가슴이 뭉클. 엄마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구나 우리 딸! 하는 찰나에 또 어디선가 풍겨오는 강력한 향기! 도대체 이건 또 어디서 나는 거야! 딸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딸의 발뒤꿈치에 수줍게 붙어있는 그들. 그리고 안방을 가로질러 있는 새로운 족적들. 아... 내가 딸 발바닥을 씻기지 않았구나. 아.. 아... 아... 아....

다시 딸을 씻기고, 안방을 닦고. 이제는 그들의 냄새가 좀 사라진듯하다. 앗! 벌써 8시 반이구나! 어린이집에 갈 준비를 해야지. 아이들 얼른 옷 입히고 가방 챙기고,  근데, 근데, 근데... 희한하네... 왜 그들의 잔향이 나는 걸까? 우리 딸아이의 잠재력이 이렇게나 강력했던 것일까? 내가 놓친 부분은 도대체 어디일까?

딸의 온몸을 쳐다봐도 집안 곳곳을 봐도 그들은 자취를 감추었는데 나를 따라다니는 이 강력하고 찝찝한 냄새의 출처는 도대체 어디인가?

아이들을 어린이집 차량에 태워주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신발장에 있는 거울을 우연히 보았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 냄....?????

내 머리카락에 붙어 있는 한 조각의 그들... 언제, 어느새 내 머리카락에 잠입했던 것일까... 적은 내부에 있다.

그녀는 강력한 향기를 남기고 떠났다. 어린이집으로.



오늘의 교훈...  


등잔 밑이 어둡다.

당신 자녀의 잠재력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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