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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Aug 12. 2021

나는 가난에 길들여진 것일까?

20억짜리 단지를 다녀온 가난뱅이는...


 날마다 부동산 뉴스에 나오는 동네에서 수업 문의가 들어왔다.  동네는 오래된 집들을  밀어버리고 어마어마하게  아파트 단지가 새로 생겼다. 사실  많은 아파트들이 생기기 전에  땅에 뭐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땅에 살던 사람이 가더라도 기억조차 못하리라. 그만큼  동네는 번쩍번쩍하게 환골탈태를 했고 덕분에 나날이 뛰어오른 몸값으로 날마다 부동산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닦여진 도로, 깔끔하고 멋들어진 조경,   벤치마저 내가  멋지지 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하늘을 뚫을  네모 반듯한 아파트들. 수천수만 개의 네모가 겹겹이 쌓여있는 비싼 동네다.

 수업에 들어온,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강아지를 좋아한단다. 그런데 키울 수는 없단다. 아파트 단지 전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단다. 그래서 작년까지 살던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단다. 진짜  아파트의 규정인지, 아이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을 말리고 싶은 어머니의 하얗지 못한 하얀 거짓말인지  길이 없다.

 하지만  말을 들으니  그래도 택배기사도  들어오게 한다는  단지의 깔끔하고 멋진 조경이 하나도 멋지지 않게 보이는  왜일까? 멋지긴커녕 삭막하기 그지없는, 생명의 냄새가 사라진, 커다랗게 적막한 성냥갑 무덤처럼 느껴진다. 대체  사람들은 그런 곳에서 못살아서 그렇게 안달일까? 평생 살아보지도 못했고 살아볼 길도 없으니  이유 역시  길이 없다.  


 수업이 끝난 후 버스를 타고 삭막하게 예쁜 동네를 벗어나 다시 주택단지가 있는 우리 동네에 들어선다. 지저분한 도로, 낡은 간판, 여기저기 초록 무더기를 이루고 있는 화초들. 익숙한 풍경, 익숙한 냄새다. 내가 평생을 살아온 곳이다. 이 가난의 냄새, 생명의 기운, 소곤소곤 사람 사는 소리가 좋다. 나는 이렇게나 촌스러운 사람이라니! 역시나 부자가 되긴 글렀다. 나는 가난에 길들여진 것일까?


아주 예전에는 슈퍼였나보다. 사라진 슈퍼의 간판도 떼지 않아 과거의 흔적을 소곤소곤 이야기 해주는 촌스런 이 동네가 좋다. 아이고 촌스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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