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짜리 단지를 다녀온 가난뱅이는...
날마다 부동산 뉴스에 나오는 동네에서 수업 문의가 들어왔다. 그 동네는 오래된 집들을 싹 밀어버리고 어마어마하게 큰 아파트 단지가 새로 생겼다. 사실 그 많은 아파트들이 생기기 전에 그 땅에 뭐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그 땅에 살던 사람이 가더라도 기억조차 못하리라. 그만큼 그 동네는 번쩍번쩍하게 환골탈태를 했고 덕분에 나날이 뛰어오른 몸값으로 날마다 부동산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잘 닦여진 도로, 깔끔하고 멋들어진 조경, 텅 빈 벤치마저 내가 쫌 멋지지 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하늘을 뚫을 듯 네모 반듯한 아파트들. 수천수만 개의 네모가 겹겹이 쌓여있는 비싼 동네다.
수업에 들어온,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강아지를 좋아한단다. 그런데 키울 수는 없단다. 아파트 단지 전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단다. 그래서 작년까지 살던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단다. 진짜 그 아파트의 규정인지, 아이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을 말리고 싶은 어머니의 하얗지 못한 하얀 거짓말인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안 그래도 택배기사도 못 들어오게 한다는 그 단지의 깔끔하고 멋진 조경이 하나도 멋지지 않게 보이는 건 왜일까? 멋지긴커녕 삭막하기 그지없는, 생명의 냄새가 사라진, 커다랗게 적막한 성냥갑 무덤처럼 느껴진다. 대체 왜 사람들은 그런 곳에서 못살아서 그렇게 안달일까? 평생 살아보지도 못했고 살아볼 길도 없으니 그 이유 역시 알 길이 없다.
수업이 끝난 후 버스를 타고 삭막하게 예쁜 동네를 벗어나 다시 주택단지가 있는 우리 동네에 들어선다. 지저분한 도로, 낡은 간판, 여기저기 초록 무더기를 이루고 있는 화초들. 익숙한 풍경, 익숙한 냄새다. 내가 평생을 살아온 곳이다. 이 가난의 냄새, 생명의 기운, 소곤소곤 사람 사는 소리가 좋다. 나는 이렇게나 촌스러운 사람이라니! 역시나 부자가 되긴 글렀다. 나는 가난에 길들여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