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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바흐의 첫날

4월 19일(1768), CPE 바흐가 함부르크에서 취임식을 갖다

by agatha

254년 전 오늘

1768년 4월 19일,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C. P. E. Bach)가 함부르크 시의 음악 감독 겸 주요 교회 칸토르로 취임식을 가졌습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둘째 아들인 C. P. E. 바흐에겐 '베를린의 바흐'라는 별명과 함께 '함부르크의 바흐'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이 두 도시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며 큰 명성을 쌓았기 때문인데요.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에서 30여 년을 프리드리히 2세의 쳄발리스트로 봉직하는 동시에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지식인들과 어울리며 베를린의 시민 문화를 이끌어가는 음악가로서 일한 C. P. E. 바흐는 베를린의 음악가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중 1767년 이직을 결심합니다. 그의 나이 쉰셋이었죠.

마침 그의 대부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이 여든여섯의 나이로 타계하면서 함부르크의 교회음악 감독 자리가 공석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C. P. E. 바흐뿐 아니라, 그의 이복동생인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를 비롯해

다른 여러 음악가들이 원하는 자리였는데요, 치열한 경쟁 끝에 에마누엘 바흐의 차지가 됐죠.


그런데요 바흐가 함부르크로 가겠다고 하자,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좀처럼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막상 자신의 직속 음악가가 크게 인정을 받아 다른 대도시로 떠난다고 하니 놓아주기가 아쉬웠던 것이죠. 하지만 반복되는 청원 끝에 C. P. E. 바흐는 이직 허가를 받아냈고요. 1768년 4월 19일 함부르크에서 당당히 취임식을 갖게 됩니다.


전통에 따라 C. P. E. 바흐는 라틴어로 취임 연설을 했고요. 텔레만의 손자인 게오르크 미하엘 텔레만이 헌정 칸타타를 연주하며 자리를 빛냈다고 합니다. 그에겐 '함부르크의 바흐'로서 새로운 날이 펼쳐지는 첫날이었죠(C. P. E. 바흐는 1788년 일흔넷의 나이로 생을 마칠 때까지 '함부르크의 바흐‘로 20년을 살게 됩니다).


오늘 음악은 C. P. E. 바흐가 함부르크 시절에 작곡한 심포니를 준비했습니다.

https://youtu.be/bVhV-Qwlc5Y

C., P. E. 바흐의 심포니 D장조 Wq 183/1 전 악장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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