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추모여행 in 제주 (1) 너를 생각하다

두 번째 펫로스, 긴 애도의 시작

by 묘언

2025년 10월 초. 보리의 49재 무렵 제주로 향했다. 10년 만의 제주, 아니, 여행이나 휴가 자체가 10년 만이었다.


사람이 그 흔한 휴가 한 번을 못 가고 10년을 산다는 게, 이게 가능하구나 싶어 씁쓸하기도, 허무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전엔 집을 비울 때 친구가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러 와주기도 하고, 또 두 마리가 사이가 좋진 않을지언정 어쨌든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덜 불안한 것도 있어서 어쩌다 한 번쯤 이틀, 사흘 정도는 어디 갔다 오기도 했었는데, 애기가 죽고 보리가 혼자가 되고부터는 오롯이 스스로를 고양이에 묶인 몸이라 여겨 아예 어딜 떠나고 싶은 욕구 자체가 안 생겼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는 동안 이뤄낸 성과라면 상담 공부 입문 10년 만인 올해 한국상담심리학회 1급 자격증을 취득한 것 정도(?)겠지만, 이 자격증이 부귀영화나 명예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요, 이 자체가 삶의 대단한 목표였던 것은 아니니, 성과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휴가 없는 삶을 살면서 가끔은 상상했었다. 훗날 보리마저 떠난 후에는 홀로 제주도에 여행을 가야지, 라고. ‘고양이 때문에 여행 못 가는 사람’이 아닌 상태가 어떤 것일지는 상상만 해도 홀가분하고 그와 동시에 상상만 해도 슬펐는데, 이 홀가분하고 슬픈 여행이 비로소 실현된 것이다. 생각보다 갑자기.





10년 만에 간 제주는 가는 곳마다 외국인 관광객 천지여서 좀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눈앞에 정말로 펼쳐진 코발트색 바다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니 비로소 내 안의 감정에 푹 잠길 수 있게 되면서 불편함도 점차 사그라졌다.

불과 수십 년 전 대학살이 휩쓸고 지나간 이 섬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중국인들과 백인들이 돈을 쓰고 휴가를 즐기는 관광지가 되었다. 풍경은 늘 무심히 ‘덮어쓰기’를 하고, 이전의 것들은 없던 것 같은 일들이 된다.

그처럼 나 또한 이전의 파일들을 덮어쓰기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이별, 상실, 공허, 실패, 헛되기만 했던 노력들, 그런 것들을 죄다 ‘덮어쓰기’ 하고, 이 해변가의 관광객들 마냥 샤랄라한 여름옷을 바람에 나부끼면서 그을린 피부가 되어 오션뷰 노천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시간을 보내는 그런 분에 넘치는 일상을 시침 뚝 떼고 살아낼 수도 있는, 그렇게 살아도 될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여행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다이어리에 손글씨로 일기를 썼다. 보리를 생각하고 애기를 생각했다. 죽음을 생각했다.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해 생각했다.


한 동네에 머물면서 가급적 관광객이 드문 곳만 사부작사부작 골라 다니며 관광이 아닌 ‘바다 멍’과 사색과 휴식에만 치중하는 동안, 이번 여행의 진짜 하이라이트에 다가설 수 있었다.

보리를 추모하는 것. 그 외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렌터카 없이 뚜벅이로 제주를 다닌다는 건, 주어진 시간의 반 이상을 버스 노선 검색과 동선 짜기와 시간 계산에 써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시기상 더위가 조금 물러났으리라는 짐작과는 달리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10월 초의 제주는 긴 팔 긴 바지 차림인 게 당황스러울 정도로 아침부터 무더웠기에 무작정 올레길 따라 걸어 다닐 엄두도 나지 않았다.


보리의 49구재이기도 한 날, 그래서 어디 가서 뭘 하며 보낼지 고민이 됐었다. 근처에 있는 오름을 갈지, 곶자왈 숲을 갈지, 섬 남쪽에 있는 사찰에 갈지, 그러려면 버스 노선 시간은 어찌 되는지 카카오맵과 네이버지도 앱을 번갈아 가며 한참 검색을 하다가 일단 숲 쪽으로 가보자고 버스에 올랐는데, 가는 길에 ‘제주현대미술관+김창열 미술관’이 아예 정류장 이름으로 되어있는 걸 발견하고 이거다 싶어 망설임 없이 하차벨을 눌렀다.


관광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적 드문 호젓한 분위기가 너른 정원 입구에서부터 느껴져 이거다, 잘 왔다 싶었다. 그때 눈에 확 띄었던 게 바로 ‘개와 고양이의 시간’이라는 이름의 전시 포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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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고양이와 강아지에 대한 사랑과 애착의 마음 그 자체를 표현한 국내 작가들의 그림들과 조형물들이, 크지 않으나 정갈하고 공간의 품이 시원스러운 전시장에 아기자기 잘 배치되어 있어, 들어서는 순간 보리에 대한 그리움을 오롯이 머금으며 치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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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의 시간 2025.7.11-10.12, 제주현대미술관 / 노석미, 김다슬, 스튜디오 앤캣, 고동우


특히 ‘Frozen in time’이라는 제목의 그림 두 점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졌다. 쪼그리고 앉아 의자 위의 강아지를 응시하고 있는 슬픈 눈빛의 여자, 그리고 바다가 내다보이는 창가에서 더 이상 발랄하게 뛰놀지 않고 박제된 듯한 2차원의 종잇장 같은 강아지와 그 옆에서 강아지와 똑같이 온몸이 굳어진 채 의자 위에 늘어져 있는 여자의 그림.

작가의 의도가 뭐였는지는 몰라도 그림에서 슬픔과 그리움이, 멈춰버린 시간의 기억이 느껴져 감정이입이 강하게 되었다.


나는 그 그림들 앞에 오래 머물렀다.

슬픔이 차올랐다. 보리의 마지막 시간들이 어른거렸다. 최후의 단말마, 그리고 생명이 끊어진 직후의 말랑말랑한 따뜻한 몸. 내 품 안에 남겨진 죽음과 이별의 감각들이 되살아났다.

너무, 너무, 너무 그리운 내 고양이. 보리가 떠났구나. 나의 아기. 네가 죽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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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2_120109.jpg 개와 고양이의 시간 2025.7.11-10.12 제주현대미술관 / 안소희, Frozen in time, 2025


이걸 보려고 내가 여기 왔구나. 뭔가에 끌리듯이.

여기서 보리의 49재를 보내라고 내가 여기로 보내졌구나.




‘개와 고양이의 시간’ 전시장에는 제주도 유기동물 입양 홍보 코너도 있었다. 관광객과 핫플로 소란스러운 휴양지가 된 제주의 겉모습 속에 사실은 대학살의 끔찍한 현대사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 무심하도록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개를 버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외지인들이 굳이 제주까지 와서 버린 동물들이 제주의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뿐만 아니라 관광지에서 벗어난 마을길을 조금만 걸어가도 금방 만날 수 있는 시골집 마당개들은 길이 1미터도 안 되는 짧은 쇠목줄에 묶인 채 산책이 뭔지 애정이 뭔지 모르고 살다 죽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애완’을 하는 사람들과 ‘애완’이 아니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잔인하다.

인간은 동물에게, 대체적으로 그렇다.


20251002_120600.jpg 개와 고양이의 시간 2025.7.11-10.12 제주현대미술관 / 주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