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그램

나희덕

by KAKTUS

제조 시 무게 300그램

건조 시 무게 192그램


그는 108그램의 수분 또는

번뇌를 일찌감치 날려버리고

이토록 간결하고 견고한 형식에 도달했다


도무지 뉘우침 없는 표정으로


빨아야 할 것들에 대해

무엇으로도 빨수 없는 것들에 대해

지방산, 수산화나트륨, 계면활성제에 대해

치대고 치대는 것만이 허락된 운명에 대해

푸석한 얼굴로 닳아갈 날들에 대해


192그램의 세탁비누는 아무 말이 없다


자신은 직육면체의 푸른 기름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그런 표정으로


저렇게 마악 깨어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한 대야의 물속에 푸른 영혼을 처음 담그던 때가


매거진의 이전글영원한 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