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커피의 진실
커피에 대한 나의 편견
난 커피를 좋아한다. 특히 뒤끝없이 깔끔하면서도 개운한 아메리카노가 좋다. 하지만 아주 가끔 커피믹스가 그리울 때가 있다. 비가 오는날 도서관 앞에서, 아니면 겨울바다 앞에서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볼 때 그러하다. 믹스커피의 달달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은 오랜 추억의 한 페이지를 둘추게 하는 매력이 있다.
두물머리는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이다. 그 만큼 다른 여행지보다 많이 갔던 곳이다. 사계절 두물머리는 늘 좋다. 봄이면 일출의 붉음 속에 잔잔한 강물의 고요함이 매력이고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에 출렁이는 열수(洌水, 한강의 옛 이름)의 출렁임이 좋은 곳이다. 가을이 제일 멋있는데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바라보면 “천상의 세계가 여기구나” 할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다. 겨울은 강끝에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강물과 뭍 사이의 경계가 애매해 하얀 천국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물안개가 유명한 가을이면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해도 안뜬 이른 새벽이지만 강변을 따라 삼각대를 펼쳐 장사진을 치는 풍경은 두물머리의 물안개 보다 더 진풍경이다. 나도 그들 속에 있었다. 하지만 두물머리의 멋진 물안개는 쉽게 보여지는 풍경이 아니다. 온도와 기온, 바람의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나름 기상청에 들어가 온도를 확인하고 머리을 굴려 물안개가 피어오를 가능성이 높은 날을 찾아가지만 양수리의 날씨는 불과 몇 킬로 떨어진 집과는 전혀 다른 날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숨을 짓고 돌아 설 때가 많았다.
몇 해였는지는 기억은 안 난다. 4대강 사업으로 두물머리가 변하기 전이였던 걸로 기억된다. 지금처럼 두물머리가 공원화 되기 전이다. 10월 말부터 12월초까지 두물머리는 물안개의 계절이라 일주일에 한 두 번 씩 찾아가곤 했다. 사진에 미친 것이다. 안보면 그만이고 올해 못 찍으면 내년에 찍으면 될 것을 굳이 이른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에 가서 꼭 물안개 피어오르는 모습를 찍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수룩한 일이다. 더욱이 들어가는 초입은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로 팔을 벌려 얼싸안고 환영해주듯 노란빛깔의 터널이 장관이었다. 두물머리 강가에는 매점도 없었다. 할머니 한 분이 한편에 가건물로 커피와 주전부리 몇 개를 팔고 계신게 다였다. 한창 사진을 찍고 돌아서면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묵묵히 사람들의 풍경만 바라보곤 하셨다. 사진을 찍고 나면 몸에 한기가 느껴진다.
“할머니 커피 한잔 주세요”
하면 할머니는 큰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가득 부어 맥심 커피믹스를 2개 넣어 주셨다.
추운 날 언 몸을 녹이며 뜨거운 커피 한잔을 먹으면 두물머리의 서운함이 사라졌던 기억이 새롭다.
“할머니는 두물머리 풍경을 매일 볼 수 있으시니 좋으시겠어요”
“내가 하루도 안 빠지고 이곳을 와보지만 일 년에 멋진 풍경을 보는건 나도 몇 번 안 돼”
“할머니는 언제부터 나와 계세여?”
“난 5시면 나오지 그 시간에 나오는 사람들도 많아”
할머니는 무척 태연하게 말했다. 뻔한 걸 왜 묻냐는 식이였다.
“할머니 제가 부탁 하나 드려도 되요?”
“제가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여기 날씨 어때요? 하면 날씨 알려주실 수 있을세요?”
“귀찮게 여러 번 전화하지는 않을게요“
“괜찮아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마”
할머니의 말대로 이른 새벽 기상청 예보에 따라 물안개가 가장 멋진 거 같은 날 베란다로 나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할머니 날씨 어때요?
“오늘은 꽝이야! 바람이 많이 불어서 물안개가 다 날아가”
“네! 할머니 다음에 들릴게요”
하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늦잠을 자곤 했다.
어떤날은
“할머니 오늘은 날이 좋나요?”
“빨리 와 지금 물안개가 엄청 예쁘게 올라왔는데 사람도 별로 없네”
그러면 씻지도 않고 부리나케 차를 몰아 30분 만에 두물머리를 갔던 기억이 난다.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정말 멋있다. 하얗게 꼬아놓은 꽈배기 같은 실타래가 강에 한가득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거기에 금상첨화로 물새가 날아오르고 일출이 시작되어 세상이 금빛으로 변하면 물안개는 더 운치를 더해준다. 새벽녘 고기를 낚는 어부배가 지나갈 때면 모두 다
“오늘은 대박이다”
를 외치며 연신 셔터를 눌러 된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이리저리 토끼가 산속을 헤매듯 시린 손도 잊어먹고 실컷 사진을 찍으면 할머니가 뒤에서 웃으시면서
“많이 찍었어?”
“다 할머니 덕이죠”
하곤 할머니가 타 주시던 맥심 커피믹스를 맛있게 먹던 기억이 새롭다.
잠든기억속 커피
몇 년 후 4대강 사업이후 두물머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카페와 음식점도 많이 들어섰다. 다만 울창하던 은행나무와 할머니가 안 나오신다는 게 더 큰 서글픔이었다. 은행나무는 공원사업으로 인해 다 잘리고 할머니는 땅주인이 장사를 한다고 그 자리에 가계를 새로 오픈해서 안 나오신다고 했다. 나도 몇 번 더 두물머리를 가곤했지만 그때의 두물머리 추억이 없어지니 자연 발걸음이 소원해지지 시작했다. 서울로 이사오고 나서는 두물머리는 먼 출사지가 되었고 가끔 예전에 찍은 사진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공원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고 낮에 더웠다가 아침에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하면 난 습관처럼 기상청 앱을 들어가 본다. 내일이면 두물머리의 물안개가 멋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며 물안개 자욱한 두물머리의 노란은행나무 터널을 지나가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더 진하게 기억된다. 그런 날이면 난 맥심커피믹스 먹는다.
달달하면서도 구수한 두물머리 할머니와 추억을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