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위 Mar 11. 2024

남, 편

  다시 각자 바빠졌다. 출근 시간이 달라서 아침에는 얼굴을 보지 못하고, 퇴근 시간도 달라서 저녁에도 별로 얼굴을 보지 못한다. 주중은 별일 없이 흘러가다가 주말이 되면 오랜만에 종일 함께할 수 있어서 반갑기도 하지만 또 그래서 싸우는 날도 많다. 작년에는 1교시 수업이 없는 날 오전에는 육아시간을 썼는데, 참 슬프게도 육아시간을 쓴 날 아침에는 자주, 남편과 싸웠다. 평일의 고요와 평화는 우리가 아침, 저녁을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새삼 서글펐다. 이제 육아시간도 끝나고 남편은 1년 중 가장 바쁜 3월을 보내고 있다. 나도 그도 바쁘다. 바쁘니 얼굴 볼 일이 없고, 바쁘니 또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외모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당시 나의 이상형은 키가 작은 남자였는데, 남편은 그에 부합하게 키가 작고 편안한 인상의 얼굴이었다. 영화과 휴학생이었던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회사원인 남편을 문지문화원 시나리오 수업 강좌에서 만났다. 시나리오는 짧게 쓰고 뒤풀이는 길게 하는 그 수업에서 우리는 어쩌다가 (정확히 어쩌다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게 되었고 또 어쩌다가 (역시 그 이유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연애를 하게 되었다. 만난지 8개월 되던 즈음 결혼을 했고, 어느덧 10년이 넘게 함께 살고 있다.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나보다 먼저 결혼한 한 선배가 말했다. 일단 5년만 살아보라고. 살아보고 나서 더 살지 말지 결정해도 된다고. 그 선배는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부부라 그게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결혼한 지 1년 조금 넘게 지났을 때 예상치 못하게 나무가 우리에게 오게 되었고, 5년 단위로 결혼생활을 돌아보는 삶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어쩌다 보니 그때가 결혼 5년째라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5년이 흘렀고, 또 10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음미할 여유가 없었을 때 10년이 지나갔다. 나무는 중학생이 되었고, 튼튼이는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된다. 나무가 태어나던 날, 튼튼이가 태어나던 날, 남편이 함께했던 순간이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순간에는 우리가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같은 길을 가고 있지만 늘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고, 가끔씩은 되돌아 가기도 하고 또 옆길로 잠깐씩 새기도 하는 것. 그것이 남편과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연애를 시작한 초기에는 나와 비슷한 점이 너무나 많아서 번번이 나를 놀라게 했던 그가 요즘에는 나와 비슷한 점이 이렇게도 없을 수 있나 싶어서 나를 놀라게 한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한 사람과 살고 있지만, 어쩌면 그때의 그와 나, 지금의 그와 나는 모두 다 다른 개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와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 그 시간이 오랫동안 쌓여간다는 것은 참 묘한 일인 것 같다. 우리가 ‘우리’로 격하게 공감하는 순간들이 있고, 또 우리가 ‘남’이 되어 힘들어 하는 순간도 있다.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우리의 관계는 매번 다른 모양으로 변한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와는 달라지겠지. 그 과정에서 그와 함께 잘 늙어가고 싶다. 이제는 조금 덜 싸우고, 조금 더 서로의 말에 경청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개학을 하고 나니 주말이 절실히 기다려진다. 주말에도 평화가 함께 하기를.      

작가의 이전글 여름의 기억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