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제도만큼 구성원들에게 민감하고 또 오해를 받는 영역이 또 있을까요? 사회적으로도 공정성에 대한 담론이 지속되고 조직 내 공정성에 대한 논의는 계속해서 뜨겁습니다. 우리나라 조직들의 급여제도는 근속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연공급이 지배적입니다. 2022년 기준 100인 이상 사업체 기준 절반에 가까운 55.5%가 호봉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글로벌로 살펴보았을 때도 가장 높은 비율인데요. 최근 이러한 연공급 성격의 급여체계가 환경과의 적합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에 의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 중심으로의 급여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어왔는데요. 실질적인 변화로 이러진 경우는 드뭅니다. 오늘은 그 대안인 기본급을 결정하는 틀로서 밴드제와 밴드제를 운영하는 원리를 다뤄보겠습니다.
(급여제도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개념의 오해) 급여제도를 설명하는 여러 개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들을 정확히 쓰지 않으면 때때로 현상을 설명하는데 유용하기 보다는 같은 개념을 다르게 사용하고 이해하게 되면서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연봉제와 직무급제 같은 개념이 그렇습니다. 연봉제는 단순히 기본급을 결정하는 주기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마치 연봉제라고 하면 스포츠 선수처럼 굉장히 탄력적으로 기본급을 결정하는 제도로 통용됩니다. 그러다보니 호봉제의 반대개념으로 연봉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정확하게는 기본급을 결정하는 틀로서 호봉제와 밴드제가 있습니다. 직무급제의 경우 대표적으로 ‘연공급제에서 직무급제로 전환해야 한다’ 라고 이야기되고 있지만 직무의 가치가 급여결정에 전혀 고려되지 않은 제도는 없기 때문에 이 역시 정확한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실제 기본급을 결정할 때는 직무만이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 기대성과의 크기를 고려하기 위해 일의 크기(직급), 성과창출 수준, 직무의 시장가치,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되므로 직무급제라는 표현은 오히려 급여제도의 정확한 이해를 방해합니다.
(급여제도의 목적은 급여차등화를 통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공정성 확보) 모든 급여제도는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여기서 공정성이란 ‘성과의 크기 즉 기여도에 따라 합당한 보상이 이뤄지는가?’ 를 말합니다. 최근 공정성에 대한 이슈가 제기되는 호봉제 역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오래 일을 하다보면 숙련도가 높아지고 조직의 미션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조직 내 네트워크를 풍부하게 형성하여 더 높은 성과를 창출할 것이라고 기대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구성원들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시스템을 운영해주길 바랐던 것이죠. 호봉제는 호봉테이블에 의해 기본급이 결정되는 개념으로 특히 우리나라에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글로벌로 살펴보았을 때도 한국은 여전히 호봉제를 가장 많이 운영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앞서 호봉제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은 연봉제가 아니라 기본급을 결정하는 틀을 기준으로 밴드제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다음은 호봉제와 밴드제를 비교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호봉제, 밴드제는 기본급을 결정하는 틀을 설명하는 개념) 호봉제가 최근 비판받는 이유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기’ 때문입니다. 창출해야 하는 성과의 특성이 ‘해왔던 것을 잘 하는 것’에서 ‘문제해결’로 변화해가면서 호봉제가 공정성을 확보하는데 여전히 유효한가? 라는 질문 앞에 놓이게 된 것이죠. 밴드제는 이런 측면에서 호봉제와 달리 좀 더 유연하게 기대성과를 급여결정에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유용합니다. 밴드제는 직급별로 상한액과 하한액을 정하고 그 범위(range)안에서 기대되는 성과의 크기에 따라 누적적으로 인상률을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밴드제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직급개념을 직무등급(Job grade) 즉 ‘일의크기’ 개념으로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전히 많은 회사들이 직급과 직책개념을 이원화하여 직급개념을 신분이나 호칭, 서열처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페이밴드, 페이매트릭스 운영 원리) 우선은 현재 내가 받고 있는 기본급을 그대로 슬라이딩(수평이동)해서 페이밴드 내에 위치시킵니다. 그리고 해당 기본급이 페이밴드에 어느 구역에 있는지와 성과창출 수준(성과평가 등급)을 고려하여 페이 매트릭스에 의한 인상률 초안을 결정합니다. 이때 성과창출 수준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인상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해당 직급 페이밴드에서 높은 수준(예: 최상단인 1구역)에서 기본급이 결정되어 있다면 기대되는 성과가 크다는 것이 이미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므로 S를 받아도 평균인상률만큼 상승될 수도 있습니다.
(공정성과 안정성은 모두 추구되어야 하는 가치) 많은 조직들이 페이밴드를 도입하면서 직급의 변화에 따라 즉각적인 급여변화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존에 직급수당, 직책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제도를 운영해왔던 관행이 남아 있다보니 즉각적인 변화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직급의 상승이 ‘선발’이 아닌 ‘보상’이라는 관점으로 구성원들에게 이해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고, 여전히 급여가 동기부여의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게 됩니다. 이는 직급변화에 대한 구성원들의 민감성이 더 커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직급 변화에 대한 구성원의 민감성이 커지게 되면 직급 인플레이션 현상과 같이 합리적인 직무관리가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HR이나 경영자의 더 많은 개입으로 이어져 인사관리 운영주체로서의 조직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데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리워크팀은 직급변화(상승 또는 하락)가 있더라도 기본급은 우선 슬라이딩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직급상승(승진)이 된 경우 다음해 기본급 결정시 새로운 페이밴드에서 아래 구간에 있게 되면서 인상률에서 merit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직급하락의 경우엔 de-merit이 있어서 인상률이 다소 억제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운영을 하게 되면 흔히 직급변화에 따른 급여의 삭감은 이뤄지지 않게 됩니다. 직급 변화에 따라 기본급이 즉각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급여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승진과 기본급의 관계) 기본급은 ‘개인’에게 기대되는 성과의 크기에 따라 수준을 결정하게 되는 속인적인 성격의 보상항목입니다. 기본급이 기대성과의 크기에 따라 정해지는 급여항목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이렇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기본급 = f(기대성과) = f(성과창출 잠재력) = f(직급 X 예상 성과창출 수준 등) 즉 개념적으로 직급이 올라가면 예상되는 성과창출 수준은 떨어지며, 직급이 내려가면 예상 성과창출 수준은 올라가게 됩니다. 따라서 직급변화에 따라 개인의 성과창출 잠재력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이로 인한 기본급의 즉각적인 변동은 타당하지 않고, 다음해 기본급 조정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반면에 기본급이 아닌 인센티브의 경우에는 새로운 직급을 기준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자면 기대성과를 기본급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호봉테이블에 의한 기본급 결정보다 페이밴드와 페이매트릭스에 의한 기본급결정이 더 효과적입니다. 이때 직급의 변화에 따라 기본급의 즉각적인 변화가 나타나게끔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직급변화에 구성원들의 민감성이 커지게 되고 합리적인 직무관리를 방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본급이 성과창출 잠재력을 고려한다는 측면에서도 즉각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급여제도의 변화관리에 있어서 공정성을 확보하고 급여비전을 제시하는 것과 구성원의 급여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이분법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페이밴드와 페이매트릭스 운영을 통해서 두 가지 가치가 모두 공존하게끔 운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