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아줌마의 달리기 도전 스토리
어느덧 4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아줌마가 달려보기로 결심을 했다. 느닷없이 찾아온 이 달리기 결심은 호수 근처로 이사를 하면서부터이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바로 호숫가 산책길을 마주할 수 있어서,
저녁 무렵이면 자연스레 집을 나섰다.
유유자적 걷기를 하고 있자니, 젊은 학생들이 쌩쌩 앞질러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활기차고 생기있어 보여서 무작정 나도 한번 달려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리고 어설프게 운동복과 운동화를 차려입고 멋쩍게 달려보지만, 금세 숨이 차올라 멈춰서 걷기 시작한다. 휴.. 역시 이 나이에 무리인가?라는 편견과 주변에서는 입을 모아 "그 나이에 달리다가는 무릎 다 나가~ 무리하지 마, 절대! 늙어서 고생한다~" 달리기 힘든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바쁘다. 그렇게 나름 무리하지 않는 선을 긋고, 달리다 걷다를 무한 반복하며 혼자 달리기를 이어가길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크게 실력이 늘어나지도 않은 채 달리는 시간을 뜨문뜨문 이어가고 있었다. 나 이렇게 운동하고 있어라는 자기 위안을 삼으면서 말이다.
자극 점이 생겨 순식간에 파장을 일으킨 건,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친구 때문이었다. 코로나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집안에서만 지내다가 해제되는 다음날 밖으로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갑갑해서 죽을 것 같았던 시간들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한바탕 달리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 그랬다.
그러면서 달리기의 참맛을 알게 되었고, 이 친구는 먼저 달리기 시작한 사람들의 유튜브 동영상과 관련 책을 보면서 실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다소 의기소침한 자세로 출발선에 다시 서보기로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중 나오는 부분이다.
"계속해서 달리는 사이에 달리는 것을 몸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거리도 조금씩 늘어갔다. 폼 같은 것도 갖춰지고 호흡의 리듬도 안정되고 맥박도 차분해져 갔다. 스피드나 거리는 개의치 않고 되도록 쉬지 않고 매일 달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달린다는 행위가 하루 세끼 식사나 수면이나 집안일이나 쓰는 일과 같이 생활 사이클 속에 흡수되어 갔다. 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습관이 되고, 쑥스러움 같은 것도 엷어져 갔다. 스포츠 전문점에 가서 목적에 맞는 제대로 된 신발과 달리기 편한 옷도 사 왔다. 스톱워치도 구입하고, 달리기 초보자를 위한 책도 사서 읽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러너가 되어간다."
달리는 작가 하루키를 따라 하리라 맘먹고, 일단 꾸준하게 매일매일 달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시간은 새벽 5시, (일전에 아침운동을 하고 출근하기를 작심 3일 만에 포기한 이력이 있어, 한껏 소심한 상태였지만) 달리 다른 대안의 시간이 없었다. 달리는 것도 힘든데, 새벽 기상까지 이중고를 견뎌내야만 했다. 하루키처럼 쉬지 않고 매일 달리는 일이 생활 사이클에 흡수되기까지 꼬박 4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 현관문을 나서기까지 수많은 마음과 싸워 이겨야 했고, 나이트 라이프는 대폭 수정에 들어갔다. 무조건 저녁 10시에는 수면모드로 돌입하기 위해 집안일과 식사 준비를 스피드 하게 마감해야만 했다. 행여 저녁 약속이라도 생기면 심적으로 굉장히 부담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일찍 일어나는 비법 같은 것은 없었다.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는 너무나 순리적인 원칙이 답이었다
달리기가 당연한 습관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건 단연코 "RunDay"앱이었다. 유튜브에서 어느 작가가 열열하게 간증한 앱 사용 후기를 보고 무작정 따라 해 보았다. '30분 달리기 도전'이라는 카테고리에는 8주간의 달리기 훈련 프로그램이 있다. 초보 러너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준비 걷기 5분, (천천히 달리기 1분+천천히 걷기 2분)*4회+천천히 달리기 1분, 마무리 걷기 5분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5주 정도 성실하게 따라 하니 놀랍게도 달리는 거리와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를 악물고 불안정한 호흡과 심장이 파열될듯한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8주를 다 채우지 않고서 겁 없이 도전한 2.51km를(집 앞 호수 한 바퀴) 무사히 완주하면서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이했다(이 첫 완주의 감격은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통속적인 말이 진리임을 몸으로 각인한 시간이었다)
더 잘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 앞에 장비빨에 대한 욕심이 스멀스멀 치고 올라왔다. 애플 워치(가민과 치열한 경쟁을 했지만 디자인의 승리로 애플 워치를 선택했다), 운동화, 러닝웨어, 웨이스트 파우치, 모자, 양말까지 제법 러너 같은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하면서, 실력도 가파르게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뭔가 도전한 목표치를 이루고 나면 스포츠 매장에 어슬렁거렸고, 차츰 달리기에 관련된 제품들이 관심사가 되면서 위시리스트에 담겼다. 이런 순간도 소소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더디게 흘러가던 2년의 시간을 묻고, 다시 출발선에 선지 3개월 만에 하프 거리를 완주했다. 인간 승리였다.
그것도 새벽 4시에 일어나 홀로 달리기 시작해서, 2시간 24분을 쉬지 않고 달렸다. 눈물이 났다. 감격과 고통이 교차하면서 믿기지 않았다. 평일 새벽에는 3km를 달렸고, 주말에는 7km~17km 장거리 훈련을 꾸준히 한 결과였다. 모든 일의 이치가 그렇겠지만, 노력한 시간의 합만큼 정직하게 나타나 주었다.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근육에 새겨진 고통의 시간만큼 정확하게 피드백되는 결과치에 짜릿한 성취감이 있었다. 한계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의식이 생겨나고, 무엇보다 세상에못 할 게 없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요즘 같은 폭염 속에서도 달리기의 감각을 느슨하게 할 수 없다는 강박에 매일 새벽 달리러 나간다. 대신 새벽 6시 이전에는 무조건 달리기를 마무리한다는 새로운 루틴으로, 조금 더 기상 시간을 당겼다. 7월부터는 달리는 거리를 5km로 늘렸고, 속도감도 더 빨라졌다. 새벽 달리기로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로 시작하니, 매일매일 생기 있는 하루를 선물 받는 기분이다. 또한 고생한 나를 위해 직접 요리한 음식과 포상맥주를 마주하는 순간은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찰나이다. 탄탄한 몸과 체력을 위해 내 몸을 챙기는 음식 습관도 추가된 일상의 변화이다
벌써부터 겨울의 추위가 걱정이다.
풀코스 마라톤 완주 기쁨을 함께하는 그날까지 달리기 훈련은 계속될 것이다